도쿄 산야 지구를 대표하는 이로하 상점가는 지난 2월부터 환경 개선 작업에 들어갔다. 사진 구글 스트리트뷰 캡처
도쿄 산야 지구를 대표하는 이로하 상점가는 지난 2월부터 환경 개선 작업에 들어갔다. 사진 구글 스트리트뷰 캡처

새파란 비닐시트를 덮은 노숙자들의 발끝에 술병이 차인다. 상가의 녹슨 셔터는 다시 열릴 기약이 없다. 일본 도쿄 다이토구(區)의 빈민촌, 산야(山谷) 지구는 지도에도 없는 곳이다. 현지인들도 접근을 꺼리는 이곳은 오사카 아이린(愛隣) 지구, 요코하마 고토부키(壽) 지구와 함께 일본의 3대 슬럼가로 불린다.

산야는 도쿄 에도가와구 미나미센주(南千住)역에서 걸어서 10분 거리다. 미나미센주역 부근은 지난 수년간 일본에서 가장 빠르게 모습을 바꾼 지역 중 하나다. 2005년 도쿄와 이바라키를 잇는 쓰쿠바 익스프레스 노선이 개통됐다. 재개발 열풍으로 고층 빌딩과 고급 아파트가 빼곡히 들어섰다.

깔끔한 대로변에서 불과 몇 걸음이다. 에도시대 사형수들과 유곽으로 팔려가는 여인들이 울며 건넜다는 ‘눈물교(泪橋·나미다바시)’를 지나면 거리는 모습을 바꾼다. 세계적인 대도시 도쿄의 일부라기엔 이질감이 가득한 살풍경이다. 빌딩 너머 보이는 웅장한 스카이트리(높이 634m, 세계 최고 전파탑으로 2012년 완공)의 그림자가 유독 짙게 느껴진다.

부랑아 출신 복서의 거친 일대기를 그린 만화 ‘내일의 죠(한국명 허리케인 죠)’의 주인공 야부키 죠가 자란 빈민촌이 바로 이곳이다. 포크송 가수 오카바야시 노부야스는 산야 사람들의 애환을 노래했다.

“오늘 일도 힘겨웠다/ 이제는 소주를 들이켤 뿐/ 어차피 산야의 쪽방살이/ 다른 할 일도 없지 않은가….”(산야 블루스·1969년)


처형장과 유곽 사이, 가장 어둡던 거리

일본인들은 산야를 도야(ドヤ) 거리라고 칭한다. 일본어로 숙박시설을 뜻하는 야도(宿)처럼 번듯한 시설은 아닌지라, 이를 비꼬는 의미로 뒤집어 부르는 것이다. 일정한 거주지가 없는 일용직 노동자나 생활보호 대상자들이 이곳 주민이다. 1500엔(약 1만5000원)이면 허름한 쪽방에서 하루 밤이슬을 피할 수 있다. 이마저도 여의치 않는 노숙자들은 공원에서 밤을 보낸다. 200엔짜리 도시락과 한 잔 100엔의 소주로 주린 배를 채운다. 새벽엔 거리에서 주워 온 물건을 내다 파는 ‘도둑 시장’이 열렸다가 아침 해와 함께 모습을 감춘다.

산야는 에도시대 여행자들을 위한 싸구려 여인숙으로 유명했다. 처형장과 유곽이 지척인 산야는 땅값이 쌌다. 패전 후 이재민들의 피난시설도 이곳에 차렸다. 버려진 간이 숙박시설이 일용직 노동자의 보금자리가 됐다. 노동자들은 일본 고도 성장기의 건설 현장에서 받은 품삯으로 하루를 살아냈다. 도쿄올림픽으로 건설 경기가 정점에 이른 1964년, 산야의 숙박시설은 220여 곳까지 늘었다. 당시 약 1만5000명의 노동자들이 살았다.

이곳은 존재하되 알려져서는 안 될 곳이었다. 1966년에는 주거표시 제도로 ‘산야’라는 지명이 지도에서 지워졌다. 1980년대부터는 경찰들도 손을 놓은 이곳에 야쿠자들이 암약했다. 1996년 도쿄 당국은 노숙자들이 일정한 거주지를 마련하기 전까지 산야에 머물게 하는 일명 ‘산야 규칙’을 만들고 생활보호 대상자들을 몰아 넣었다.

한 번 산야에 들어온 이들이 다시 세상 빛을 보는 일은 드물었다. 큰 빚을 지거나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생활보호 대상자들은 ‘자발적 실종자’가 돼 이곳으로 흘러들어왔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수습 현장에는 산야의 노동자들이 투입됐다. 이름도, 주소도 묻지 않아도 되는 이들이었다. 이들의 실상은 프랑스인 저널리스트 레나 모제가 잠입 취재로 쓴 ‘인간 증발-사라진 일본인들을 찾아서(원제 Les evapores du Japon·2014년)’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도쿄의 오랜 치부였던 산야가 최근 모습을 바꾸고 있다. 값싼 숙박비와 편리한 교통환경에 매료돼 이곳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늘어나면서다. 산야는 도쿄의 대표 명소인 아사쿠사와 가깝다. 인근 미나미센주역은 긴자·우에노·아키하바라 등 주요 관광지로 이동이 편리하다. ‘예전만큼 위험하지 않다’는 입소문에 출장비를 아끼려는 비즈니스맨,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학생들이 산야를 찾기 시작했다. 저렴한 월세에 이끌려 이주해 오는 젊은 세대가 거리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도쿄 산야 지구 일대 지도.
도쿄 산야 지구 일대 지도.

산야에서 밀려나는 일용직 노동자들

노후한 간이 숙소는 현대식 시설을 갖춘 중저가 호텔과 게스트하우스로 바뀌고 있다. 이곳의 상징이었던 이로하 상점가는 올 2월 말 철거 공사를 마무리하고 환경 개선 작업에 들어갔다. 만화 ‘고독한 미식가’에 등장한 400엔짜리 돼지고기 정식을 파는 식당 ‘기누가와’도 지난해 10월 폐점했다. 최근에는 사라져 가는 도쿄 마지막 슬럼가의 모습을 담기 위한 사진 작가들이 산야를 찾는다.

나름의 명소도 있다. 산야에는 ‘도쿄 4대 커피’로 평가받는 카페 ‘바하’가 있다. “이곳 토박이들은 커피 한 잔을 시간을 들여 아껴 가며 소중히 맛본다”는 게 점장의 말이다. 한 시민단체는 산야 입구에 현지 주민과 외국인 관광객들이 교류하는 카페를 짓기 위한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 중이다.

일본의 다른 슬럼가도 비슷한 상황이다. 오사카의 아이린 지구 인근에는 일본의 유명 리조트 업체인 호시노리조트가 2022년 개장을 목표로 호텔을 짓고 있다. 요코하마 고토부키 지구에도 게스트하우스가 빠르게 늘고 있다. 한 해 일본을 찾는 관광객 3000만 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숙박시설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슬럼가가 사라지면 머물던 이들은 어떻게 될까. 산야의 일용직 노동자는 고령화로 점차 수가 줄어 이제는 4000명 안팎이다. 이들은 2022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시내 곳곳의 재개발 현장에서 일한다. 재개발이 진행될수록 지낼 곳은 좁아져 간다. 풀 길이 없는 자승자박이다. 산야 노동자들을 지원하는 죠호쿠(城北) 노동복지센터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일용직 노동자들의 터전이 사라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어둠은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산야에서 밀려난 일용직 노동자들은 ‘넷카페’를 전전하기 시작했다. 넷카페는 24시간 PC를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다. 칸막이가 있는 부스의 하룻밤 요금은 1500~2000엔 정도다. 도쿄도가 올 1월 처음으로 발표한 실태 조사에 따르면 도내 ‘넷카페 난민’은 약 4000명, 그중 약 70%가 등록된 주소가 없는 일용직 노동자였다.

오늘도 도쿄의 깨끗한 거리를 걸으며 생각한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머잖아 벚꽃이 핀다.


▒ 이진석
와세다대 커뮤니케이션학 석사, 조선비즈·동아일보 기자, 일본 도쿄 IT 기업 근무, ‘오타쿠 진화론’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