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들의 회의는 희한하다. 회의 시작 시간은 엄격하게 지키지만, 종료 시간은 전혀 지켜지지 않는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에서 20년 가까이 일한 한 일본인 컨설턴트의 책에서 이런 구절을 본 적이 있다. 일본인이 시간을 잘 지키기로 유명하지만, 회의 시간이 고무줄처럼 늘어지기 일쑤라고 지적했다. 그는 생산성을 높이는 첫 단계로 각종 회의로 낭비되는 시간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꼭 필요한 회의도 30분, 1시간 등으로 시간을 정해놓고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한 20~30분 회의하면 되겠죠” “일단 모여 봅시다”라는 식으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생산성 향상은 이런 구멍까지 다 막아야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생산성 향상은 모든 기업의 본질적인 고민이다. 개선이라고 하든, 혁신이라는 단어를 붙이든 결국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야근 왕국’으로 불리는 한국의 최대 고민거리도 바로 생산성이다. 우리나라의 노동생산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용 감소의 반대급부로 생산성 증가

얼마 전 깜짝 놀랄 만한 뉴스가 있었다. 한국생산성본부(KPC)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7년 제조업 노동생산성지수가 108.3으로 전년 대비 5.8% 상승했다고 한다. 2010년(7.2%) 이후 7년 만의 최대 폭이다. 의료·정밀·광학기기(23.1%), 전자부품·컴퓨터·영상·음향·통신장비(12.0%) 등에서 크게 높아졌다.

그런데 이런 숫자들을 한꺼풀 벗겨보면 완전히 달라진다. 희소식이 아니라 우울한 소식이다. 구조조정으로 고용이 줄어들면서 엉뚱하게 생산성이 치솟은 것이다. 지난해 노동투입은 1.4% 감소한 반면, 부가가치는 4.4% 증가했다. 일손이 줄어 생산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불황형 생산성 증가인 셈이다. 특히, 조선업이 포함된 기타운송장비 분야의 경우 현대중공업 등 대형 3사의 허리띠 졸라매기, 중견 조선사 법정관리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으로 노동투입이 23.4%나 급격하게 감소하면서 실질적으로는 부가가치가 8.2% 하락했는데도, 노동생산성이 19.8% 개선된 것으로 집계됐다. 구조조정에 따른 인력 감축 덕분에 생산성이 높아졌다는 말이다. 노동투입이 큰 서비스업의 경우 노동생산성이 오히려 뒷걸음질쳤다. 구조적인 노동생산성 향상은 여전히 먼 나라 이야기라는 뜻이다. 대표적인 서비스업종인 숙박·음식점업은 늘어난 인건비를 매출과 부가가치가 따라잡지 못하면서 노동생산성이 3.9% 하락했다.

게다가 여전히 선진국이나 경쟁국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수준을 못 벗어났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시간당 노동생산은 34.3달러로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아일랜드(88달러), 룩셈부르크(80.4달러), 노르웨이(80.4달러)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경제 규모가 엇비슷한 스페인(47.8달러)과 비교해도 크게 떨어진다. 이런데도 주요 제조업 국가로 버틸 수 있는 건 야근·잔업이 만성화되면서 근무시간이 세계 최장 수준이라서다. 덜 효율적으로 오래 일한다는 뜻이다. 별로 똑똑하지 못한 방법이다. 2016년의 경우 우리나라 1인당 연평균 노동시간은 2069시간이었다. OECD 회원국 평균(1764시간)보다 무려 305시간이나 더 많다. 휴일 등을 제외하면 매일 최소 1시간 이상씩 한국인이 더 일하고 있다는 뜻이다.

정부가 세계 최장 근로시간을 줄여서 ‘저녁이 있는 삶’을 만들겠다고 한다. 7월부터 근로시간 단축을 시행키로 했다. 야근·잔업 못하게 한다는 것인데 껍데기만 보고 있다. 본질은 노동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기업들은 추가 고용으로 인한 인건비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근로자들은 야근비·수당 줄어드는 걸 견뎌야 한다. 동티가 안 날 수가 없다. 탄력근로 등을 활용할 수 있게 해줘야 하는데 정부는 여전히 저녁 타령뿐이다.

이진석 조선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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