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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연정 스탠퍼드 경영학석사(MBA), 핌코(PIMCO) 미국 회사채 분석 담당 www.inclineim.com

 다양한 인종과 배경을 가진 사람이 함께 모여 사는 샌프란시스코. 이곳에서 지난 5년간 만난 투자 업계 사람 중 절반은 한국에 가본 적이 있었고, 업계 바깥에도 한국에 가본 사람이 적지 않았다. 지난주에는 치과를 갔더니 의사가 제주도 여행에서 본 해녀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한 달 전 메이저리그(미 프로야구) 야구장에서 만난 한 교수는 창원에서 영어 교사로 일하는 아들을 방문했다가 함께 NC 다이노스의 홈경기를 봤다고 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한국을 친숙하게 생각하는데, 여기에는 한국 음식이 많은 기여를 했다. 경영대학원(MBA) 시절 외국인 친구에게 한국 음식이 왜 좋냐고 묻자, 중국 음식보다 건강에 좋고 일본 음식보다 편해서라는 대답을 들은 적이 있다. 주변 친구들이 제일 좋아하는 한식 메뉴는 단연 순두부와 바비큐다. 순두부는 ‘두부=건강식’이라는 인식 덕분에 대표적인 한식 메뉴로 자리 잡았고, 샌프란시스코 시내에 몇 개 되지 않는 고깃집은 주말엔 줄을 서지 않고는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붐빈다. 해물파전이나 잡채도 인기 메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인기 있는 한국 음식을 보면 같은 음식이라도 좋아하는 포인트가 한국과는 다르다. 고깃집을 예로 들면, 외국인 친구들이 좋아하는 한식당은 일단 양이 많고 캐주얼한 분위기와 개인화된 메뉴가 있는 곳들이다. 한국식 바비큐를 내는 가게 중에서는 무제한 고깃집이 인기가 많다. 샌프란시스코의 무제한 고깃집에 처음 갔을 때는 충격을 받기도 했다. 소고기·돼지고기·닭고기를 생고기와 양념고기 구분 없이 마구 뒤섞어서 구워 먹었기 때문이다. 쌈채소는 제대로 챙기지도 않았고, 고기를 먹고 난 뒤에 밥이나 국수로 마무리하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외국인들이 한국식 바비큐에서 원하는 건 섬세한 맛의 차이보다 연기를 피워 가며 고기를 양껏 구워 먹는 재미라는 걸 깨달았다.

2014년에 스탠퍼드 MBA 친구들 40여 명과 함께 열흘 정도 한국을 여행한 적이 있었다. 궁중 한정식집과 강남의 고급 불고기 전문점에 갔는데, 외국인 친구들이 가장 높은 점수를 준 식당은 논현동 골목에 있는 삼겹살집이었다. 멋들어진 궁중 한정식이나 고급 불고기는 이들의 표현에 따르면 ‘고기보다 버섯만 너무 많은’ 식당이었다. 통나무 인테리어에 숯불구이 삼겹살이 이들의 취향에는 더 맞았던 것이다. 해변에서 바비큐를 하고 펍에서 맥주 마시는 걸 즐기는 외국인들에게 지나치게 깔끔하고 정돈된 분위기보다는 왁자지껄하고 캐주얼한 분위기가 더 잘 맞았다.

개인화된 메뉴도 현지화의 중요한 요소다. 한국인들은 주방에서 완벽한 조합으로 음식이 만들어져 나오기를 바라지만 미국인들은 자기 취향에 맞게 재료나 소스를 조절하기를 원한다. 채식주의자를 비롯해 자기만의 식단을 가진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인기 있는 순두부집을 보면 토핑을 소고기·돼지고기·닭고기·해산물 중에 고를 수 있고, 매운 맛의 정도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다.

재료는 같지만 음식을 즐기는 방법은 한국과 다르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예컨대 김은 한국에서는 반찬의 한 종류지만, 미국에서는 감자칩 같은 스낵으로 여겨진다. 잡채도 한국에서는 반찬으로 생각하지만, 미국에서는 한국식 누들의 한 종류로 보고 주식으로 친다.

오래전부터 한식 세계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지만 결국 중요한 건 식당을 찾는 손님이 원하는 걸 제공하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한국 음식의 인기가 높은 편이지만 일본 음식으로 성공한 사례도 적지 않다.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일본계 벤처캐피털리스트인 가지와라 나미코는 최근 일본식 말차숍인 ‘스톤밀(Stonemill) 말차’를 샌프란시스코에 오픈했다. 말차는 새 찻잎을 줄기와 잎맥을 제거하고 찐 후에 맷돌로 갈아 만든 가루녹차를 말한다. 손님이 방문했을 때 말차를 내는 건 일본 특유의 다도 문화 중 하나다. 그녀가 일본에서 지낼 때는 기린맥주의 무알코올 맥주 론칭에 참여했고, 인기 커피 체인인 블루보틀의 도쿄 1호점 오픈식에도 갔다. 지금은 벤처캐피털인 윌(Will)의 소비재 투자 담당 파트너를 맡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인기 커피 브랜드인 블루보틀이 도쿄 진출에 성공했듯이 일본의 말차숍도 실리콘밸리에 무사히 안착하고 있다. 이렇게 국경을 넘나드는 성공이 가능한 비결은 뭘까.

“일본 제품을 미국에 들여오거나, 미국 제품을 일본에 소개한다고 해서 특별히 다른 룰이 있는 것은 아니다. 고객 수요를 정확히 노리는 상품과 마케팅이 중요하다. 외국 음식이나 음료를 상품화할 때 흔히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는 고객을 가르치려 드는 것이다.”

가지와라 파트너의 말은 현지 소비자의 수요를 제대로 파악하고, 이에 맞는 상품을 찾아 들여오는 게 현지화라는 뜻이다. 일본의 말차가 미국에서 인기를 끄는 것은 일본의 다도 문화가 훌륭해서라기보다는 커피의 대용품으로 건강한 카페인 음료를 찾는 미국인들의 수요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커피는 카페인 수치를 급격하게 올렸다가 떨어뜨려서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 반대로 티백으로 우린 홍차는 한 잔에 담긴 카페인 양이 커피보다 적어 각성 효과가 떨어진다. 말차는 커피와 홍차의 중간 지점을 파고들면서 인기를 끈 것이다. 여기에 더해 해외에서 들여온 새롭고 독특한 상품은 새로운 고객군을 만들어내는 효과가 있다. 가지와라 파트너는 “‘우리나라에 이런 좋은 음식 문화가 있으니, 당신도 배워서 즐겨보라’고 설득해서는 안 된다. 사실 고객들은 그저 맛있고 편하고 가격이 좋은 상품을 찾는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기업, 뷰티 스타트업 활약 참고해야

한국 음식을 비롯한 아시아 음식이 미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지만, 화장품 산업은 또 분위기가 다르다. 음식 산업에서 잔뼈가 굵은 가지와라 파트너도 일본 화장품의 미국 시장 진출 가능성에 대해선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는 “미국 소비자들은 미국의 음식 문화가 건강하지 않고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걸 인정하기 때문에 아시아 음식을 찾는 것”이라며 “반면 화장품 시장에서는 굳이 일본 제품을 찾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한국 화장품이 미국에서 성공할 가능성은 없는 걸까. 미미박스 같은 한국 스타트업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미박스는 미국 현지 소비자를 위한 뷰티 정보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 자체 커머스를 중단하고 아마존이나 세포라 같은 미국 현지 전자상거래 플랫폼에 뷰티 제품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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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의 화장품 전문 매장 세포라에서 고객들이 화장품을 고르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한국에서 널리 쓰이는 ‘이중 세안’이나 ‘마스크팩’을 아예 모르는 미국 고객을 겨냥한 전략이다. 온라인숍과 블로그를 통한 실시간 리뷰 서비스를 제공하는 소코글램(Soko Glam), 3D 프린터를 활용한 인조 네일 제작 판매로 인기를 끌고 있는 매니미(ManiMe) 같은 한국 스타트업도 ‘K 뷰티’를 미국에 알리고 있다.

한국 뷰티 스타트업은 아시아 음식이 미국에서 성공한 법칙을 따르고 있다. 고객 자신도 모르는 수요를 발굴하고 개인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런 노력 덕분인지 최근 들어 미국에서 한국 화장품을 접하는 게 어렵지 않은 일이 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유니온스퀘어 옆에 있는 세포라 매장에는 ‘K 뷰티’ 섹션이 있어서 10여 종의 한국 화장품 브랜드 제품이 전시돼 있다. 한국 마스크팩을 매일 사용한다는 미국인 친구도 제법 많아졌다. 써본 사람들은 누구나 한국 화장품의 경쟁력을 인정한다. 샌프란시스코 곳곳에서 마주칠 수 있는 아시아 음식들처럼 언젠가는 한국 화장품도 미국에서 손쉽게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양연정 인클라인 매니지먼트 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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