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용진 카네기멜론대 컴퓨터공학·응용수학,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 파생상품팀 초단타 퀀트 트레이더, ‘인공지능 투자가 퀀트’ 저자
권용진 카네기멜론대 컴퓨터공학·응용수학,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 파생상품팀 초단타 퀀트 트레이더, ‘인공지능 투자가 퀀트’ 저자

 최근에 기술적·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논쟁을 보면 블록체인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정보기술(IT) 업계나 정·재계뿐 아니라 정치, 국제 정세에서도 블록체인이라는 단어가 거론되고 있고, 기술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도 블록체인이라는 말을 어렵지 않게 쓰고 있다.

블록체인을 다룰 때 여러 미디어가 기술적인 특징을 설명하거나 금융 산업에서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블록체인 그리고 암호화폐의 실효성을 이야기할 때 많이 나오는 표현을 정리해보면, ‘탈중앙화’ ‘분산 장부’ ‘암호화폐 실제 사용 사례’ ‘금본위제’ ‘결제 방식’ 등이 있다.

블록체인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해킹이나 투기, 사기, 규제 사각지대 같은 용어를 쓰며 블록체인을 곱지 않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혁신적인 기술과 앞서 있는 블록체인 인프라를 규제 때문에 제대로 쓰지 못하면서 세계적인 경쟁에서 한국이 뒤처지고 있다는 안타까운 시선도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JP모건이 블록체인 기술에 투자했다는 뉴스와 워런 버핏이 암호화폐는 사기라고 했다는 뉴스가 뒤섞여서 전해진다. 왜 같은 용어를 놓고 이렇게 온도 차이가 심한 걸까.

이런 대립의 원인을 제대로 알려면 블록체인의 사상적인 측면을 먼저 알아야 한다. 많은 사람이 블록체인을 ‘인터넷 혁명’이나 ‘스마트폰 혁명’에 빗대서 설명하고 있는데, 이건 단편적인 시각이다.

블록체인은 기술적인 측면만 보면 중간자 없이 거래할 수 있게 해주고, 이를 통해 많은 비용을 절감하고 중앙집권적인 권력 구조를 해체할 수 있게 해준다. 여기서 더 나아가서 블록체인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이는 고전적인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수정 자본주의를 거쳐 신자유주의로 이어진 하나의 거대한 흐름이 끝났다고 선언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블록체인은 기존의 자본주의 시스템을 대체할 새로운 경제 체제를 제안한 것으로 봐야 한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가 어떻게 기능하는지 실제 예를 들어보자. ‘A’라는 택배 회사가 있다고 치자. 이 회사는 많은 택배 물량을 처리하고 대신 배송료를 받는다. A 회사는 트럭과 물류 인프라를 구축하고 배송료 일부를 택배기사 등에게 준다. 나머지는 회사 이윤으로 취한다. 이 이윤의 일부를 회사 소유자인 주주들이 나눠가진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근간인 주식회사가 돌아가는 방식이다.

블록체인은 이 방식 자체에 의문을 제기한다. A 회사의 가치는 택배를 이용하는 사람과 택배기사 그리고 물류 인프라에서 나온다. 회사의 소유자인 주주에게서 나오는 게 아니다. 그런데 A 회사가 주주 이익을 위해서만 움직일 경우 배송료를 지나치게 많이 받을 수 있고, 인프라에 제대로 투자하지 않는 식으로 비용을 아끼려 들 수도 있다. 이렇게 자본주의 시스템은 오작동할 수 있는데, 블록체인은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다.

택배를 비롯한 물류는 블록체인 기술을 빠르게 받아들이는 대표적인 산업이다. 사진 블룸버그
택배를 비롯한 물류는 블록체인 기술을 빠르게 받아들이는 대표적인 산업이다. 사진 블룸버그

“차라리 택배 회사라는 존재를 없애고 모든 사람이 조금씩 돈을 모아서 택배 시스템을 만들면 어떨까?”

이렇게 되면 A 회사는 사라지고 그 자리를 택배 블록체인이 차지하게 된다. 택배를 보내는 사람은 A 회사가 중간에 가져가던 이윤만큼 저렴하게 택배를 보낼 수 있다. 그리고 이 택배 블록체인에서 생기는 이익을 실제로 시스템을 만드는 데 기여한 사람들에게 직접 분배할 수 있다. 이런 분배에 이용하는 게 암호화폐다. 암호화폐는 화폐적 특성과 주식의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이익을 배분받는 동시에 내가 기여한 만큼 가치가 오르게 된다.


블록체인은 새 경제체제 위한 도구

‘분산 장부’나 ‘채굴 시스템’ 등은 결국 블록체인이 보여주는 새로운 경제 체제를 완성하기 위한 기술적인 도구일 뿐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블록체인을 기술 트렌드로 이해하기보다는 기존의 경제 체제를 대체할 수 있을지를 따지고 분석하는 게 더 옳은 접근일 것이다.

비트코인의 창시자로 알려진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가상 인물이 중요한 건 이런 대안 체제를 제안했기 때문이다. 전에 없던 새로운 체제를 제안하는 건 혁명적인 일이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을 통해 개인의 재산권을 인정해주면서 자본주의 체제의 기틀을 제안했다. 애덤 스미스가 처음 제안한 체제가 실제로 가능한지 수많은 사람과 국가가 검증하고 또 검증해서 만들어진 게 지금의 시대다.

‘국부론’이건 ‘자본론’이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수정되고, 이론과 실제의 차이를 좁히는 방향으로 작동했다. 블록체인이 제시한 새로운 체제 또한 현실 세계에 적용해보면서 문제점을 고치고, 더 나은 실행 방식을 찾는 식으로 움직일 것이다. 이를 통해 자본주의처럼 발전할 수도 있고, 사회주의처럼 실제로 실행하기엔 과도하게 이상적인 체제로 판명 날 수도 있다.

이런 큰 맥락을 이해한다면, 블록체인에 대한 규제가 드론이나 스마트폰을 규제하는 것처럼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그저 기술이 발전하면서 생기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 규제가 필요하다는 식의 접근은 너무 단순하다. 이미 블록체인이라는 새로운 경제 체제가 사회 전반에 어떤 충격을 줄지에 대해 여러 기업이 연구하고 있고, 어떤 기업은 기존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체제 이전을 막고 있기도 하다. 국가 차원에서도 이런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고민과 분석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런 노력은 기업, 정부를 넘어 일반인에게도 요구된다. 블록체인이나 암호화폐 같은 단어를 투기적으로만 보지 말고 그 이면에 있는 본질적인 특성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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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산 장부
블록체인의 핵심인 분산원장기술(Distributed Ledger Technology)을 말한다. 원장은 재화나 서비스 거래가 이뤄진 내용을 기록해 놓은 장부를 말한다. 기존에는 거래 주체만 장부를 가질 수 있었지만, 블록체인은 거래에 참가한 모두가 장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권용진 엔트로피 트레이딩그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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