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의 180조원 대형 투자 발표는 추락하고 있는 한국 경제에 가뭄 속 단비가 아닐 수 없다. 지난 4개월 동안 전례 없는 마이너스 설비투자 증가율을 지속하고 있는 가운데 나온 발표라 더욱 반갑다. 경제는 모름지기 기업이 투자하고 사람을 고용하면 근로소득이 증가한 가계의 소비도 늘면서 돌아가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 경제는 이 기본적인 이치를 거스르는 기업 옥죄기, 임금 인상 밀어붙이기 등 반기업 친노동 정책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마이너스 설비투자 증가율 지속과 일자리 급감에 따른 고용 참사를 몰고 오면서 경제 위기감이 높아져 왔다.

이처럼 기업 환경이 악화일로인 가운데 삼성은 3년간 180조원, SK 3년간 80조원, 현대차 5년간 23조원, LG 1년간 19조원, 신세계 3년간 6조원 등 무려 310조원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연간 100조원 안팎인데 이는 연간 한국 설비투자 규모인 약 150조원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대형 투자다. 이 투자가 반도체·바이오·인공지능 등 미래 성장 동력 확충에 집중되고 있다.

문제는 이들 분야가 중국이 굴기정책으로 바짝 한국을 추격해 오고 있는 분야라는 점이다.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에 따르면 한국과 중국의 기술 격차가 삼성과 SK가 대형 투자를 하려고 하는 반도체 분야에선 시스템반도체가 0.6년, 반도체공정장비가 1.2년에 불과하다. 바이오는 0.8년, 인공지능은 0.2년이고 현대차그룹이 대규모 투자를 하려고 하는 스마트카는 0.9년, 로봇은 0.7년 등 대부분 불과 수개월 내 중국에 따라잡힐 위험에 노출돼 있다. 설상가상으로 LG그룹이 대형 투자를 하려고 하는 디스플레이와 전기차 배터리는 이미 중국에 따라잡히고 있고 심지어 가전제품·드론·핀테크 등에서는 중국이 앞서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중국의 추격이 맹렬한 가운데 반도체·바이오·인공지능·스마트카 등 미래 성장 동력 산업에 대한 대형 투자는 앞으로 세계 시장을 두고 중국과 일전이 불가피함을 의미한다. 만약 3년간 310조원에 이르는 대형 투자를 하고도 중국에 밀려 세계 시장을 잃게 되는 경우 이 대형 투자가 부실화되면서 한국 경제는 엄청난 위기의 나락으로 추락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문민정부 시절 신경제5개년 정책으로 1994~95년 연평균 총고정자본 형성 증가율은 13.5%로 당시로써는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그러나 1995년부터 시작된 역플라자합의로 엔화가 크게 약세를 보여 원·엔 환율이 1995년 4월 918.5원에서 1997년 2월 704.7원까지 하락했다. 설상가상 1988년부터 6년간 연평균 임금 상승률이 20%를 지속하고, 1987년 설립된 민노총의 강경 노동 투쟁이 이어지면서 한국 수출 제품은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 제품에 비해 가격 경쟁력을 잃었다. 이 때문에 1996~97년 연평균 수출 증가율은 4%대로 추락했다. 결국 기업 부실이 심화되고 금융 부실로 이어지면서 1997년 위기를 초래해 100만 명이 넘는 실업자를 양산하고 말았다.


정부, 과거 이념에 사로잡혀선 안 돼

이번에도 ‘제조 2025’ 등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대국굴기 정책으로 중국의 추격이 만만치 않고 아베노믹스 덕분에 잃어버린 20년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는 일본의 협공 속에서 3년간 310조원에 이르는 대형 투자가 추락하는 한국 경제를 반등시키도록 하려면 규제 혁파, 노동 유연성 제고, 투자·연구개발세액공제 확대와 같은 정부의 전폭적인 화답이 있어야 한다. 원화 가치가 고평가되지 않도록 하는 환율 정책도 중요하다.

문재인 정부가 과거 이념의 도그마에 사로잡혀 이런 화답을 하지 못할 경우에는 대형 투자는 부실화돼 한국 경제가 다시는 일어서기 힘든 나락으로 추락하고 말 것이라는 점을 유념하고 또 유념해야 한다. 한국 경제의 사활이 걸린 마지막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