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민연금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국민연금 고갈론, 납부 연령 상향, 연이은 투자 실패로 인한 책임 소지를 찾고 있다. 혹자들은 최고투자책임자(CIO)의 장기간 부재, 급격한 고령화 및 노동인구 감소에 따른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필자는 기본적으로 ‘연금’에 대한 정의와 이에 따른 설계에 대한 고민의 부족이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고 생각한다.
국민연금은 연금과 펀드의 속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 연금이란 노동 가능한 시기에 소득의 일정 부분을 미래를 위해 저축해두고 노동 가능 연령을 넘어선 은퇴시기에 이를 수령하면서 노후를 보장해주는 정책이다. 그리고 그 기간에 펀드로서 은퇴 설계에 따라 다양한 투자를 하면서 노후 자금을 관리해 자금에 대한 수익을 얻거나 가치 감소를 막는 역할도 한다.
이 두 가지 속성을 이해한다면 현재 국민연금 설계가 얼마나 잘못돼 있는지, 그리고 비판해야 할 부분은 어떤 것인지 이해할 수 있다. 지금까지 국민연금은 ‘적게 넣어서 더 많이 받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사실 연금은 노동이 불가능해지는 노후 시점을 위한 보험에 가까운 장치이지 적게 넣어서 무작정 더 많은 돈을 받는 화수분이 아니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초창기 가입자에게 많은 혜택을 주었고, 현재는 연금의 개념을 상실한 형태로 운용되고 있다. 물론 국가 차원에서 고소득층 연금의 일부를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에 사용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는 연금의 부가적 기능일 뿐 본질적인 ‘노후 보장’의 기능을 상실할 정도로 설계됐다면 분명히 정비가 필요하다.
미국의 연금제도를 살펴보면, 크게 사회 보장 연금과 401k연금으로 나뉘어 있다. 사회 보장 연금은 국민연금과 같이 노후에 최소한의 생활비를 보전해주는 연금으로 전체 연금에서 5분의1 정도만 차지한다. 반면 401k연금은 개인이 노동 가능한 시기에 원하는 만큼 불입하면서 관리되는 자산의 운용 방안까지 결정할 수 있는 연금 제도다. 예를 들어 은퇴 설계 자체가 좀 더 공격적이거나 자녀가 많은 경우, 해외 주식이나 성장주에 연금을 투자하고 싶다는 식으로 관리할 수 있다. 반면에 국민연금은 이런 구분 없이 사회 보장적인 요소를 강조하다 보니 노후 대비용 연금까지도 고갈될 위기에 처하면서 연금을 자유롭게 관리할 개인의 자유조차 없는 것이 실상이다.
실제로 노후 설계라는 것은 일반화된 우리의 생각과 달리 굉장히 복잡하고 개개인의 환경에 따라 다르다. 대학 진학을 앞둔 자녀를 둔 부모의 은퇴 계획은 등록금과 생활비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것이고, 환자를 둔 집의 은퇴 설계는 갑작스러운 병원비 지출에 집중돼 있을 것이다. 젊은 나이에 수익을 내면서 더 공격적인 연금 설계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반면에 좀 더 보수적으로 적은 돈을 연금에 꾸준히 불입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개인의 다양한 은퇴 설계를 무시한 채 일정한 금액을 많은 사람에게 나눠 주면서 강제성을 띤 또 하나의 세금이라는 오명과 일괄적이고 비효율적인 지급으로 고갈이라는 위기, 모두 맞게 된 것이다. 연금은 개개인의 문제와 경제적 상황에 따라 노후를 준비하는 개인의 보조 정책이지 국가가 노후를 무작정 보장해주도록 돈을 맡기는 것이 아니다.
또 국민연금의 펀드적 속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펀드는 투자해서 수익을 올리고 이를 통해 운용사와 투자자 모두 수익 배분을 받는 구조다. 거대한 운용 금액을 가진 국민연금 역시 다양한 투자 전략이나 대상에 따라 움직이는데, 이를 단순히 개별 투자 실적이 성공했거나 실패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된다. 최근 언론을 보면 ‘중국 커피빈 투자로 얼마를 날렸다’라던가 ‘시장을 이기는 투자 자체가 몇 번 있었다’ ‘높은 바이오 수익을 눈뜨고 놓쳤다’라는 식의 보도가 많았는데, 물론 투자 실패는 좋지 않은 신호지만 펀드 운용상에서 얼마든지 수익률이 저하되는 시기가 올 수 있다. 오히려 이러한 부분은 투자 전략 자체를 굉장히 제한적이게 만들 수 있고, 이는 수익률 저하와 투자 자산의 다양성 부재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실제로 국민연금 운용 금액에 대한 투자 전략이 제한적이므로 투자 자산 또한 다양성이 떨어지고, 이는 사실상 CIO가 누가 임명되든 이미 운신의 폭이 제한된 상태이기 때문에 비슷한 운용 포트폴리오를 답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펀드 운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충분한 보상이다. 금융 투자는 언제나 리스크를 동반하고 있고, 이 리스크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기댓값이 적은 투자는 하지 않듯이, 운용하는 매니저나 운용사에 돌아오는 보상이 적을 경우 리스크를 안고 수익성이 좋은 투자를 할 이유 또한 사라지게 된다. 현재 국민연금의 운용 매니저들은 공적인 자리로 취급돼 높은 책임에 비해 보상이 적은 편이다. 민간 기업에서 안정적으로 높은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좋은 투자 책임자가 국민연금 운용을 맡을 이유가 없다.
국민연금이기 때문에 당연히 국민의 돈이 모여 있고, 이를 일반 펀드와 똑같이 운용을 한다는 것에 거부감을 표하는 의견도 많다. 그러나 중요한 자금, 공적인 자금이라고 해서 ‘절대로 잃어서는 안 되는 돈이니 운용을 제한해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위험하다.
투명한 투자·운용에 중점 둬야
투명하게 투자되고 운용되는 것에 중점을 둬야지, 리스크 없이 무작정 수익만 내라고 하는 것은 결국 폰지 사기 형태를 부추기는 행태밖에 되지 않는다.
현재 국민연금에 많은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고, 하나하나 살펴보며 고쳐나가야 하는 것 또한 맞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본질을 잃지 않는 것이다. 사회 보장 연금의 역할과 노후 보장 연금의 역할은 분명하게 나눠야 한다. 사회 보장 연금은 노후에 최소한의 생활 보장을 해주는 것으로, 노후 보장 연금은 노동하지 못하는 노후를 대비해 현재의 자산을 운용하는 방식으로 개념을 분리해서 운용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낸 돈보다 적게 받는다든가 연금이 고갈된다는 우려가 없어질 것이다. 또 자신의 연금에 대한 투자·운용 자유도를 높여서 개개인이 자신의 노후 대책에 맞춰서 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민연금도 연금을 투자하고 운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운용하는 사람에 대해 민간 운용사 매니저들과 비슷한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하고 손실이 나는 것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 이해할 수 있어야 진정한 의미의 연금펀드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