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 MIT 경제학 박사, 빌 클린턴 행정부 국가 경제위원회 위원장, 2001 노벨 경제학상 수상, ‘세계화와 그 불만의 재고: 트럼프 시대의 반세계화’ 저자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
MIT 경제학 박사, 빌 클린턴 행정부 국가 경제위원회 위원장, 2001 노벨 경제학상 수상, ‘세계화와 그 불만의 재고: 트럼프 시대의 반세계화’ 저자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며 일부 학자들은 미국과 세계 경제가 ‘구조적 장기침체’에 빠졌다고 주장했다. 대공황 때 생겼던 이 개념을 특히 위기 상황 극복에 책임이 있던 정책 입안자들(위기 이전 경제 파탄에 일조한 이들)이 다시 끌고 나왔다. 빠르고 견고한 경제 회복세 달성에 실패했던 이유를 설명할 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제가 약세를 보일수록 이 주장은 힘을 얻었다.

지난 1년간 일어난 일들도 (결코 그럴듯해보이지 않는) 여기에 힘을 실어줬다. GDP(국내총생산)의 3% 수준에 불과하던 재정 적자 규모가 6%까지 증가했다. 비록 퇴보적인 세법과 초당적 지출 증대 결의 때문이지만 경제성장률은 4%대까지 올랐고 실업률은 18년 만에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 때문에 금리 상승기에도 충분한 재정적 지원을 통해 완전 고용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오바마 정부는 2009년 큰 실수를 범했다. 규모가 더 크면서도 장기적인 데다 유연하면서도 구조적으로도 잘 짜인 재정 부양책을 추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랬다면 경제는 더 강하게 반등했을 것이고 구조적 장기침체 개념도 재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론 오바마 정부 시기의 ‘회복기’ 3년간 상위 1%만이 소득 상승을 경험했다.

당시 우리 경제학자 중 일부는 경기 침체가 생각보다 심각하고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그래서 오바마 정부가 제안했던 것보다 더 강력하면서도 다른 어떤 조치가 필요하다고도 주장했다.

경제는 생각보다 더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금융위기 여파는 처참했으며 총수요가 약화됐다.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의 전환기였던 시장 경제는 변화를 견디지 못했다.

필요했던 것은 대규모 은행 구조조정 이상의 조치, 즉 금융 시스템의 근본적인 개혁이었다. 2010년 도드-프랭크법이 도입됐지만 충분치 않았다. 은행들이 해야 할 일, 예컨대 소규모․중소 기업들에 대출해주는 등의 일에 집중하도록 강제하지 못했던 것이다.

정부 지출 규모도 더 확대했어야 했다. 노동자 협상력 약화와 대기업의 시장 지배력 강화, 기업·금융회사들의 남용 문제 해결을 위해 더욱 적극적인 재분배․사전 분배 프로그램도 필요했다. 이런 정책을 통해 쇠퇴한 제조업 분야를 도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은행 대신 힘없는 가계가 집을 잃는 상황이 발생했다. 경제적 실패가 가져온 정치적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부당한 대우를 받은 사람들이 선동당했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작년 12월과 올해 1월에 있었던 대규모 감세 등 재정 부양책이 10년 전 실업률이 최고 수준이었을 때 시행됐다면 더 큰 효과를 발휘했을 것이다. ‘구조적 장기침체’ 때문에 회복세가 약했던 것이 아니다. 정부 정책의 부적절성이 문제였다. 여기서 떠오르는 중요한 문제. 앞으로도 높은 성장률이 유지될까. 물론 기술 변화 속도에 달린 것은 사실이다. 이를 위해 R&D(연구·개발) 투자, 특히 기초 연구 투자가 중요한데, 그런 의미에서 최근 트럼프의 예산 삭감은 불길하다.

불확실성은 또 있다. 1인당 성장률이 지난 50년간 크게 변화한 것이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10년간 2~3%를 기록하던 지표는 지난 10년간 0.7%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2008년 위기를 통해 얻은 수많은 교훈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장애물은 경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에 있다는 점’이다. ‘구조적 장기침체’는 실패한 경제 정책에 대한 변명일 뿐이다. 트럼프와 공화당이 득세하는 지금, 이기심과 근시안적 태도가 극복되지 않는 한 다수를 위한 경제는 불가능한 꿈으로 남을 것이다. GDP가 증가해도 국민소득은 정체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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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적 장기침체(Secular Stagnation) 세계 경제가 만성적 수요 부족과 투자 감소, 과소 고용에 따라 구조적·장기적으로 침체를 겪을 수밖에 없다는 이론. 앨빈 한센 하버드대 교수가 1938년 처음 사용하고 2014년 서머스 전 재무부 장관이 다시 들고 나왔다. 이들은 재정 정책 확대를 통해 이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