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설명 지난달 파키스탄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구체적 규모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급한 불을 끄기 위해서는 120억달러(약 13조4000억원) 정도가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키스탄 경제가 파탄 위기에 빠진 것은 중국이 제공한 막대한 차관 때문이다.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 사업 중 하나인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CPEC)’ 건설을 위해 파키스탄이 620억달러 이상의 차관을 들여왔고, 이 돈으로 투자와 건설에 나섰다가 위기가 왔다. 중국은 2013년부터 아프리카 개도국에 차관을 제공해 두 대륙을 하나로 잇는 인프라 프로젝트 등을 지원해왔다. 그 결과 2009년 900억달러 수준이던 중국-아프리카 무역 규모는 매년 1700억달러를 기록할 정도로 증가했고, 중국의 대아프리카 누적 투자액은 지난해 1000억달러를 넘어섰다. 수년 전부터 ‘신흥국발(發) 위기’ 가능성을 꾸준히 제기하고 있는 금융위기 분야의 권위자 라인하트 교수는 이번 칼럼에서 중국과 개도국 간 ‘숨겨진 부채’의 문제점을 경고하고 있다.
카르멘 라인하트(Carmen M. Reinhart) 하버드대 교수, 미국 컬럼비아대 경제학 박사, 베어스턴스 투자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 피터슨연구소 선임연구원
카르멘 라인하트(Carmen M. Reinhart)
하버드대 교수, 미국 컬럼비아대 경제학 박사, 베어스턴스 투자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 피터슨연구소 선임연구원

① 지난 15년 동안 중국은 세계 대출 시장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100개 이상의 개발도상국에 차관을 제공한 것이다. 개도국은 중국이 빌려준 돈을 ② 각종 인프라 구축, 원자재 생산 관련 프로젝트 등에 썼다. 그런데 이 차관의 규모도 규모지만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거래 관련 정보 자체가 매우 부족하다는 점이다. 실제로 중국 정부와 투자를 진행한 국영 기업 등 개발 당사자를 제외하고는 채무 조건을 아는 쪽이 없다. 당시 일부 언론 보도나 학술 자료를 통해 채무 규모나 시기에 대한 단서를 일부 찾을 수는 있지만, 조건에 대한 정보는 전무하다.

3년 전 나는 ‘숨겨진 부채(hidden debts)’라는 제목의 칼럼을 쓰면서 중국으로부터 막대한 차관을 받은 남미의 베네수엘라와 에콰도르를 조사한 적이 있다. 당시 칼럼에서 나는 대중에 공개된 자료가 중국과 개도국 간의 금융 거래 흔적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상황은 변하지 않은 것 같다. 2016년 중국은 국제결제은행(BIS)의 ③ 지역은행통계(LBS) 수집 대상국에 합류했다. 하지만 중국 개발은행의 대출 집행 내역을 분석해 보면 BIS가 공개한 채무국의 데이터와 일치하지 않는다. 또 양국 간 거래 내역이 국제 자본시장에서 통용되는 채무증권 형태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인 탓에 세계은행(WB) 등의 자료에 흔적이 남지 않는다.

이렇게 회계 정보가 부족하다는 점은 개도국 외채가 극도로 과소평가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거래가 대부분 달러화로 이뤄졌다는 점도 문제다. 거래 내역이 장부상에서 희미해지면 외환 시장이 급등락할 가능성이 매우 커진다.

물론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개도국에 제공한 차관 규모 자체가 크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차관을 받은 개도국 입장에서는 이 규모가 국내총생산(GDP) 총합의 15%에 달하는 수준이다. 그리고 외채 규모가 축소된 게 사실이라면, 실제로 개도국에 흘러들어간 돈의 규모가 과소평가됐다는 합리적인 의심도 가능하다.

최근 존스홉킨스대의 ‘중국-아프리카 연구(CARI)’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아프리카 개도국이 중국으로부터 받은 차관이 전년의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

규모가 급감한 것은 두 자릿수를 기록하던 중국 경제 성장률이 2010년대 들어 한 자릿수로 둔화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 또 중국 경제의 축이 인프라 투자에서 가계 소비로 옮겨갔다는 점도 중국 정부의 관심이 원자재 보유국 지원에서 멀어지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또 다른 납득할 만한 설명은 개도국의 부채가 상환이 어려울 정도로 쌓였을 가능성이다. 잘못하면 중국의 개발은행이 채무불이행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상황이다.


중국은 아프리카 개도국에 차관을 제공해 인프라 건설을 독려하는 ‘일대일로’ 정책을 펼치고 있다. 사진은 지난 7월 카메룬의 크리비 컨테이너 터미널을 홍보하는 옥외 광고판. 2009년 중국항만건설총공사, 중국교통건설유한공사 등 10개 중국 회사가 여기에 투자했다. 사진 블룸버그
중국은 아프리카 개도국에 차관을 제공해 인프라 건설을 독려하는 ‘일대일로’ 정책을 펼치고 있다. 사진은 지난 7월 카메룬의 크리비 컨테이너 터미널을 홍보하는 옥외 광고판. 2009년 중국항만건설총공사, 중국교통건설유한공사 등 10개 중국 회사가 여기에 투자했다. 사진 블룸버그

외채 규모가 초반에 급증했다는 점도 문제다. 과거 ④ 파리클럽이 도입한 ⑤ ‘과다채무빈국(HIPC)’ 탕감 프로그램 덕분에 차관 ‘수요자’와 ‘공급자’ 모두 비교적 ‘깨끗한’ 상태에서 거래할 수 있게 된 적이 있다. 당시 아프리카 개도국 부채를 탕감해줬던 채권국이 다시 원조에 나서기 어려운 상황에서 중국이 그 빈자리를 메웠다.

채권국이 중국은 아니지만 이런 신흥국 차관과 이에 따른 위기 시나리오는 예전에도 나왔던 이야기다. 빈센트 라인하트, 크리스토프 트레베시와 한 공동연구에서 나는 지난 200년간 원자재 가격 급등기에 원자재 보유국에 대한 대출 급등으로 디폴트(채무불이행) 사태가 자주 발생했음을 증명한 바 있다. 이번에 주목해야 할 점은 그 누구도 중국과 개도국 간 채무 조건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는 점이다.

중국은 파리클럽 회원국이 아니다. 그래서 문제 발생 시 채권국과 채무국 간에 일반적으로 벌어지는 협상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다. 만약 내 예상대로 개도국 채무 상환 문제가 수면으로 떠오르기 시작하면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차관이 담보 대출 성격이 짙기 때문이다. 이 경우 채권자 간에 일종의 ‘서열’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담보 대출 성격의 중국 차관이 일반적인 양자 간 대출보다 (상환에) 우위를 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의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는 최근 파키스탄의 구제금융 요청에 대해 “부채와 관련해 절대적으로 투명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⑥ 파키스탄이 진 빚의 대부분은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 때문에 발생했다. 라가르드 총재의 성명에서 ‘숨겨진 부채’를 세상에 공개하게 될 IMF 구제금융 프로그램의 험난한 여정이 눈앞에 그려진다.


Tip

중국은 아프리카를 꾸준히 지원해왔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연구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16년까지 중국이 아프리카 각국에 빌려준 자금은 1250억달러(약 142조원)에 달한다.

존스홉킨스대 연구에 따르면 2006~2015년 에티오피아에 중국 차관 약 130억달러가 유입됐다. 이 돈이 섬유·가죽 산업 등에 투입된 결과 경제 성장률이 연 10%에 달했다. 그러나 외채도 눈덩이처럼 불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대부분 중국 차관인 에티오피아의 대외부채는 2008년 28억달러에서 2016년 220억달러까지 증가했다. 문제는 차관 조건이다. 중국은 서구(1%대)와 달리 3%대 고리로 차관을 제공하는 데다, 관련 사업을 벌일 때 중국 기업과 수의 계약을 하도록 한다. 또 선진국이 민주화와 투명성 확보 등을 조건으로 다는 것과 반대로 중국은 이런 요구를 전혀 하지 않는 탓에 독재 정권이 쉽게 돈을 빌릴 수 있다.

은행 데이터 수집 대상국 그룹이다. 해당 국가는 BIS에 금융권과 비금융권 대출 내역 데이터 등을 제출하게 되고 BIS는 이를 토대로 통계 자료를 작성한다.

파리클럽은 세계 22개 채권국 비공식 그룹이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개도국을 지원하는 것이 목적이다. 미국·프랑스·영국 등 선진국을 비롯해 아시아권에서는 한국과 일본이 회원국이다. 파리클럽 회원국은 채무국에 빌려준 자금 규모와 채무 조건 등을 의무적으로 공개하고 있다.

1996년 세계은행은 IMF와 ‘과다채무빈국(HIPC)’ 부채 탕감 프로그램을 집행했다. 전체 혹은 부분 지원을 받은 국가 36개국은 대부분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최빈국이다.

파키스탄 정부는 최근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60억달러 차관을 도입하기로 했고, 중국 정부와 협상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먼저 우방국 차관을 들여와 IMF 구제금융 규모를 최소화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이다. IMF 최대 출자국인 미국이 “파키스탄에 구제금융을 지원하는 것은 중국을 돕는 격”이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 부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