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설명 중국은 올해로 개혁·개방 40주년을 맞았다. 지난 40년간 중국의 경제 성장은 가히 ‘기적’이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39.5배, 전체 GDP는 56.6배 늘었다. 같은 기간 공업 생산액은 173배, 무역액은 무려 199배 증가했다. 1978년 1억6700만달러(약 1885억원)에 불과했던 외환보유고는 지난해 3조1399억달러(약 3500조원)로 늘어 세계 1위를 기록 중이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세계 8~10위를 오르내리던 중국의 GDP 순위는 1993년 캐나다를 제치고 7위로 올라서더니 2000년엔 이탈리아를 추월해 6위로, 2002년엔 프랑스를 제치고 5위로, 2006년엔 영국을 따돌리고 4위로 뛰어올랐다. 이어 이듬해인 2007년엔 독일을 추월한 데 이어 2009년엔 일본을 따돌리고 미국과 함께 ‘주요 2개국(G2)’ 반열에 올라섰다. 하지만 질적인 면에서 중국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중화권의 존경받는 경제학자인 두 필자는 중국이 ‘고소득 사회’에 진입하기 위해 네 가지 덫을 조심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앤드루 셩(Andrew Sheng)홍콩대 아시아글로벌연구소 최고연구위원(왼쪽) 샤오 겅(Xiao Geng) 베이징대 HSBC 경영대학원 교수(오른쪽)
앤드루 셩(Andrew Sheng)
홍콩대 아시아글로벌연구소 최고연구위원(왼쪽)
샤오 겅(Xiao Geng)
베이징대 HSBC 경영대학원 교수(오른쪽)

개혁·개방 40주년을 맞은 중국은 ① 긴 역사 속에서 한때 누렸던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의 지위를 되찾기 위해 노력 중이다. 농업과 제조업, 국방력, 과학기술 역량 등 전 분야에 걸쳐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지만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 코앞에 있다. 그것도 네 개씩이나 말이다.

무엇보다 ② ‘중진국 함정(middle income trap)’에서 벗어나야 한다. 중국의 1인당 연간 소득은 9000달러(1016만원) 정도로 ③ ‘고소득(세계은행 기준 1만2000~1만3000달러)과는 거리가 있다. 지난 50년간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난 나라는 손에 꼽을 정도다.

‘고소득’ 반열에 올라서려면 개인의 권리와 책임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현대적인 조직 간의 강력한 네트워크가 뿌리내려야 한다. 여기에 더해 시장과 비(非)시장의 상호작용이 활발히 일어나야 하며, 분쟁을 공정하게 해결할 수 있는 법·제도 확립도 필수다. 중국이 이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40년 동안 애썼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다음으로 중국이 ‘투키디데스의 함정(Thucydides Trap)’에 빠져들 가능성도 있다. ‘투키디데스 함정’은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전쟁 원인을 설명한 그리스 군인 투키디데스의 말에서 유래한다.

새로운 강국(당시에는 아테네, 현재는 중국)이 부상하면 기존의 패권 국가(당시에는 스파르타, 지금은 미국)가 무력으로 해소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킨다는 것으로, 신구 강대국이 충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의미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무역 보복으로 중국을 압박하는 것도 중국의 시장과 기술 지배력을 약화시키기 위해서란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셋째로 ④ 조지프 나이 하버드 케네디스쿨 교수가 ‘킨들버거 함정(Kindleberger Trap)’이라고 부른 것도 조심해야 한다. ‘킨들버거 함정’은 제2차세계대전 후 서유럽 부흥 계획인 마셜 플랜의 이론적 바탕을 제공한 미국의 정치·경제학자 찰스 킨들버거의 이론에서 나왔다.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은 영국을 제치고 세계 최강국이 된 미국이 자유 무역 질서의 공공재를 제공하는 데 실패한 데서 비롯됐다는 설명이다. 나이 교수는 만일 중국이 당시 미국과 같은 선택을 할 경우 극도의 혼란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국제 사회에서 미국의 리더십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약해지고 있어서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마지막으로 기후 변화(climate-change)의 덫도 피해가야 한다. 고소득 국가, 그중에서도 특히 ‘열강’으로 불리는 나라는 지나치게 많은 자원을 소비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기후 변화의 부정적 여파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에서 중국 경제와 국가 영향력이 함께 커지고 있기 때문에 걱정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중국 지도자들은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이에 대한 발전적인 정책을 수립하는 동시에 관련 분야에서 국제 사회와 협력도 강화해야 한다.

중국이 지금까지 언급한 네 가지 함정을 피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국내 경제의 불균형 문제와 고립주의 노선을 걷고 있는 미국과 관계에서 오는 난제를 해결하면서 국제 사회와 협력을 통해 기후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처해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중국 지도자들은 그 과정에서 직면할 복합적이고 모순적인 상황을 잘 헤쳐나가야만 한다.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 중앙집권적인 정책 수립과 지방 분권적인 실행으로 특징 지어지는 중국 정부 시스템은 위기 상황에 필요한 빠른 의사 결정에 효과적이다. 지난 40년간 이 같은 모델은 정치적 무능과 양극화로 종종 마비 사태를 빚곤 했던 서구 모델보다 효과적으로 작동한 경우가 많았다.

중국이 고소득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재능과 경쟁, 공익, 책임의 네 가지가 필수 요소인데, 이 모든 분야에서 중국의 과거 성적표는 나쁘지 않았다.

중국은 수천 년의 역사를 통해 인재를 발굴하고 양성하는 데 큰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 같은 노력은 중국이 국가가 주도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필요하다. 네 가지 함정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그럴 수밖에 없다.

중국은 생산성 증진과 경제 성장을 위해 개인과 기업, 지방자치단체 간 경쟁도 잘 활용해 왔다. 문제는 중국 시장의 성장 속도가 규제 가능한 범위를 넘어섰다는 점이다. 따라서 앞으로 중국 시장 정책의 초점은 공정한 경쟁을 가로막는 규제의 빈틈과 정책적인 약점을 보완하는 데 맞춰져야 한다. 이와 함께 부정부패와 공해, ⑤ 과도한 부채 등 지금껏 존재해온 빈틈과 약점으로 인한 잘못된 결과물을 바로잡는 노력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공익’ 부문에서도 개선의 여지는 있다. 중국이 지금까지 대규모 국가 기간산업에서 이룬 것에 비하면 회계 표준과 세제 시스템, 규제 표준 등 ‘소프트 인프라’ 분야에서 성과는 미약했다. 이들 분야의 변화 노력 없이 고소득 사회 진입은 불가능하다.

‘책임’ 영역과 관련한 중국에 대한 외부 인식은 그리 좋지 않다. 투표가 아닌 성과에 따라 정통성이 좌우되는 중국 정부의 시스템이 중요한 이유다. 국제 사회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이 부분에 대한 개혁 요구 또한 거세질 것이다.

지난 40년 동안 중국은 자국의 급변하는 거대 시장을 기반으로 한 경험 학습(learning by doing)을 충실히 진행해 왔다. ⑥ 경제특구 지정 같은 과감한 정책 실험도 그 일부였다. 그 과정에서 중국 경제가 서서히 글로벌 경제 흐름에 발맞춰 움직이기 시작했다. 중국 경제가 앞에 놓인 네 가지 장애물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모든 경험을 총동원해야 할 것이다.


Tip

세계 최강 제국으로 꼽히며 화려한 문화를 꽃피웠던 당나라 시대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당나라 전성기의 수도 장안(長安·지금의 시안)은 인구 100만 명이 넘는 세계 제일의 도시였다.

중진국 함정이란 개발도상국이 경제 발전 초기에는 순조롭게 성장하다가 중진국 수준에 와서는 어느 순간에 성장이 장기간 정체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1960~70년대 이후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등과 같은 중남미 국가가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한 대표적인 예다.

지난해 중국의 1인당 GDP는 세계 80위권 수준이었다. 세계은행은 선진국의 기준을 1인당 GDP 1만2000달러로 보고 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중국은 여전히 중진국에 머물러 있다. 중국 국가통계국은 지금과 같은 경제 성장 속도라면 2022년쯤 선진국에 진입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국가정보위원회(NIC) 의장을 지낸 조지프 나이 교수는 ‘소프트 파워 국가론’의 주창자로 유명하다. 소프트 파워란 군사력이나 경제 제재 등 물리적 국력을 뜻하는 ‘하드 파워’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강제보다는 매력을, 명령보다는 자발적 동의를 통해 얻는 국력을 의미한다.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2011년 그를 ‘세계 100대 사상가’ 리스트에 올리면서 “미국 대외 정책을 이해하는 모든 길은 조지프 나이로 통한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08년 6조달러였던 중국의 국가 부채가 지난해 말 28조달러로 5배 이상 증가했다고 최근 보고서에서 밝혔다. 중국의 GDP 대비 비금융 부채 비율은 같은 기간 140%에서 260%로 늘었다.

중국의 첫 경제특구는 광둥성 선전(深圳)이다. 1978년 12월 개혁·개방 선언 당시 3층을 넘어서는 건물이 없는 인구 3만의 가난한 어촌이던 선전은 이제 100m 넘는 마천루만 1000곳을 거느린 인구 2000만의 거대 도시로 탈바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