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설명

1월 16일 투자 업계의 전설, 잭 보글 뱅가드그룹 창업자가 별세했다. 그는 특정 종목이 아닌 주가지수 움직임에 따라 수익을 내는 ‘인덱스(index)펀드’를 세계 최초로 만든 인물이다. 인덱스펀드는 포트폴리오가 전체 주가지수를 따라가도록 구성됐는데, 이 덕분에 개인 투자자들은 적은 비용으로 상장 주식을 골고루 보유할 수 있게 됐다.

보글의 죽음으로 세계적으로 인덱스펀드의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다. 케이스-실러 지수의 창시자이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로버트 실러도 이번 칼럼에서 보글의 신념과 원칙이 시장 투자자들에게 미친 긍정적인 영향에 대해 말하고 있다.
로버트 J 실러(Robert J. Shiller) 예일대 교수 미시간대 경제학 석사, MIT 경제학 박사, 2013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피싱의 경제학’ 저자
로버트 J 실러(Robert J. Shiller)
예일대 교수 미시간대 경제학 석사, MIT 경제학 박사, 2013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피싱의 경제학’ 저자

1월 16일 잭 보글 뱅가드그룹 창업자의 죽음 이후 수많은 세계 언론이 그의 업적을 칭송하는 내용의 부고 기사를 냈다. 물론 고인의 발자취를 기리고 생전 업적을 칭찬하는 것이 부고 기사의 특징이기는 하지만, 보글 관련 기사가 특히 그랬다. 여기에는 명확한 이유가 있다. 보글이 ① 유별날 정도로 도덕적인 인물이라는 점이 배경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우리가 한 사람의 성공을 평가할 때 그의 부(富)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면 안 될 것이다. 그래도 이 부분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보글은 1975년 뱅가드를 일종의 비영리 재단 형태로 설립했다. 외부 주주가 없었던 데다, 펀드 운용을 통해 거둬들이는 수익은 주주 배당금이 아니라 모두 펀드 운용 수수료를 내리는 데 투입됐다.

보글뿐만 아니다. 뱅가드그룹은 업계에서도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뱅가드그룹에 돈을 맡긴 고객은 170개국 2000만 명에 달한다. 운용 자산만 4조9000만달러(약 4510조원)가 넘는다. 아마 세계에서 가장 큰 투자 회사일 것이다.

그와 그가 설립한 회사가 성공했으니 그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또 영리 추구만을 목적으로 하는 다른 사기업을 비난해야 한다는 뜻도 아니다. 보글이 금융 시장에서 유일한 도덕적 기준은 아니기 때문이다.

보글의 도덕성은 ‘시장을 이기려는 것은 헛된 노력’이라는 신념에 뿌리를 두고 있다. 2007년 보글이 낸 책 ‘모든 주식을 소유하라(원제 ‘The Little Book of Common Sense Investing’)’에 그의 투자 신념이 잘 나와 있다.

출간 10년 기념사에서 보글은 “성공적인 투자의 기반은 ‘상식’이다.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조차도 ‘이 원칙을 지키는 것은 간단해 보이지만 쉽지 않다’고 했다. 내가 추천하는 가장 단순한 투자법은 역사적으로도 증명됐듯, 주식을 매우 낮은 가격에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보글이 추천하는 투자법은 결국 ‘주식시장 전체를 대표하는 ② 인덱스펀드에만 투자하는 것’이다. 그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데 ③ 워런 버핏의 사례를 든 것이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버핏이 각종 종목에 투자해 시장을 뛰어넘는 수준의 수익률을 낸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그의 투자법이 적용되는 쪽은 개인 투자자다. 주식시장 포트폴리오가 투자자 전체의 평균 투자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일반 투자자들은 그 이상 수익률을 내기가 어렵다. 하지만 시장의 투자 열기가 이 부분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흐리게 만든다. 보글도 “주식시장 자체가 투자 사업을 진행하는 데 가장 큰 혼란(distraction) 요인”이라고 지적했을 정도다.

혼란에 대한 그의 분석은 정확했다. 사람들은 재미를 추구한다. 그리고 주식시장은 이런 사람들이 판을 벌이고 놀 수 있는 게임 공간이다. 만약 주식시장이 없다면 사람들은 카지노 등지로 넘어가 도박을 할 것이다.

그러나 주식시장이 카지노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긍정적인 점은 투자자들이 기업과 실제 경제 활동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이다. 도박장으로 간 사람들이 카드 돌리기 기술만 배울 수 있다는 점과 비교하면 말이다. 또 주식시장 활황은 활기찬 경제의 상징이기도 하다.

시장을 단순하게 쥐고 있으라고 조언하는 것, 다시 말해 인덱스펀드에 가입하라고 하는 것은 다른 투자자들의 색다른 투자 전략과 지혜에 ‘무임승차’하라는(좋은 의미로) 뜻이다.

만약 모든 투자자가 보글의 조언대로 인덱스펀드에만 투자한다면 주가는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움직이게 되고, 주식시장 자체도 기업과 개인의 경제 활동에 그 어떤 방향성도 제시해주지 못할 것이다.

내가 자산 관리 분야의 도덕성에 대해 처음 인식하기 시작했을 때를 기억한다. 2009년 10월 8일 나는 당시 MIT 경제학자 ④ 폴 사무엘슨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나는 1970년, 대학원에서 그의 가르침을 받기도 했다. 통화 당시 94세의 노(老)경제학자였던 그는 두 달 뒤 사망했다. 나는 그와의 통화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고, 당시의 일을 일기에 기록했다.

사무엘슨은 통화에서 당시 내 논문에 대해 의견을 전해왔다. ‘집값과 임금같이 일반인이 맞닥뜨린 금융 위험을 완화하기 위해 보험, 선물 옵션 시장을 확대해야 한다’는 내용이 논문의 골자였다. 사무엘슨은 이런 내 주장에 대해 ‘그 아이디어가 일반인 투자자에게 적용된다면 금융 시장은 카지노가 돼 버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사람들이 파생상품 시장을 통해 자신을 보호하기보다 도박에 나설 것이란 뜻이었다.

그러면서 사무엘슨은 보글의 예를 들었다. ‘인덱스펀드’라는 개념을 확립하기 위해 수십억달러를 포기한 사람이라고 했다. 사무엘슨은 “그는 자신의 상품으로 막대한 돈을 벌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뱅가드그룹의 기적은 보글의 원칙에서 나온 것”이라고 했다.

사무엘슨의 조언이 맞다. 시장은 장기적으로 원칙에 따라 행동한 사람에게 보상해준다. 물론 파생상품 같은 위험도가 높은 시장을 확대하는 것도 필요하다. 파생상품 시장이 리스크 관리를 비롯해 인센티브 제공, 사업 방향성 지정과 같은 유용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개인 투자자들에게 조력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적이면서도 열심히 일하는 전문가들이 일반 투자자들의 투자를 도와야 한다. 물론 공짜는 없다. 이 전문가들은 대가를 받아야 한다. 그래서 수많은 인덱스펀드를 운용하고 있는 뱅가드그룹도 투자 매니저를 고용하고 이들에게 수임료를 지급하고 있다.

한편 뱅가드그룹의 인덱스펀드처럼 모든 펀드의 수수료가 낮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지속적이면서도 빠른 변화와 혁신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쏠리는 지금의 세상에서 그 관심의 대가는 비싸다. 가끔 몇몇의 펀드 매니저들이 비도덕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펀드 수수료가 높다는 것이 뭔가 부정적인 것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어찌 됐건 보글은 나의 영웅이다. 그가 정직한 상품을 제공한 것은 물론, 그에 앞서서는 투자자들을 돕고 싶다는 신실한 열망으로 가득 차 ‘인덱스펀드’를 개발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모두의 영웅이어야만 한다. 그는 시장에 진실이 통한다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T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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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사는 곳 근처에서 요양 가능한 시스템 구축”

① ② 보글은 ‘월가의 성인(聖人)’ ‘세인트 존(Saint John)’으로 추앙받는다. 그가 창시한 인덱스펀드는 포트폴리오를 전체 주가지수를 따라가도록 구성했다. 그래서 펀드매니저의 주관적 판단에 따른 종목 선정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덕분에 개인 투자자들은 적은 비용으로 상장 주식을 골고루 보유할 수 있게 됐다. 주가지수를 단순 추종하는 방법으로 운용되기 때문에 펀드 수수료를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는 것이다. 덕분에 인덱스펀드에 투자하면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인식이 금융 업계에 널리 퍼졌다.

반면 헤지펀드, 증권사 등 금융사 입장에서는 뱅가드그룹이 눈엣가시였다. 인덱스펀드가 세계적인 수수료 인하 경쟁에 불씨를 붙였기 때문이다. 사실 펀드 출시 당시 업계는 이 펀드가 아무런 투자 전략이 없다며 ‘바보 펀드’라고 조롱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달랐다. 현재 인덱스펀드는 전체 주식형 펀드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덩치가 크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를 추종하는 1호 인덱스펀드인 ‘뱅가드 500’의 운용 자금은 현재 4000억달러에 달한다. 첫해 운용 자금 1000만달러의 4만 배에 달한다.

워런 버핏은 2017년 주주들에게 보내는 연례 서한에서 “미국 투자자들을 위해 가장 많은 업적을 쌓은 사람을 동상으로 세운다면, 보글이어야 한다”고 했다.

폴 사무엘슨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자 ‘미국 경제학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그는 생전에 “존 보글의 인덱스펀드 개발은 바퀴와 알파벳 발명만큼 가치가 있다”고 했다.

로버트 J 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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