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설명 지난해 뉴욕증시는 연간 기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성적으로 마무리했다. 3대 지수(다우존스, 나스닥, S&P500) 모두 1~3분기는 상승했지만 마지막 4분기에 급락하면서 연간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국제 유가도 변동성이 컸다. 한 해 동안 25%나 급락하면서 45.41달러에 장을 마쳤다. 2015년 30% 이상 폭락한 이후 최악의 연간 하락률이다. 10월만 해도 유가는 거의 4년 내 최고치에서 거래되다가, 76달러를 정점으로 이후 40% 하락하면서 약세장으로 한 해를 마감했다.
아나톨 칼레츠키(Anatole Kaletsky)하버드 케네디 경영대학 석사, 타임·파이낸셜타임스 경제 칼럼니스트, ‘자본주의 4.0’ 저자
아나톨 칼레츠키(Anatole Kaletsky)
하버드 케네디 경영대학 석사, 타임·파이낸셜타임스 경제 칼럼니스트, ‘자본주의 4.0’ 저자

경제학자들과 투자자들은 광란의 2018년 한 해, 아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부터 이어온 광란의 세월을 보내며 어떤 교훈을 얻었을까?

교훈이 있다면 아마 할리우드 영화제작자들이 이야기하듯 “아무것도 알 수 없다(Nobody knows anything)”는 것이 아닐까 싶다. 자본과 경험으로 무장한 할리우드 대형 스튜디오들이 엄청난 시간과 돈을 투자해 시장조사를 하지만, 그런 과정을 거쳐 제작한 작품이 흥행에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렇다면 금융시장의 상황이 비슷하다고 해서 놀랄 일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원자재 가격이나 기업 실적, 정책 성과 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① 애플 같은 글로벌 기업이 지난해 크리스마스 직후 중국에서 아이폰을 얼마나 많이 팔 수 있을지 알 길이 없다고 인정한 것이나, 노련한 원자재 트레이더들이 원유 공급 부족으로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한 이후 오히려 공급 과잉으로 50달러까지 떨어진 것 등이 대표적인 예다.

②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이 경기 흐름에 대해 상반된 신호를 보내곤 하는 것을 봐도 그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본인이 자유무역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헛갈리는 건 아닐까?

지난해 이맘때의 경기 전망은 약속이라도 한 듯 긍정 일변도였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전 세계가 호황기에 접어든 것처럼 보였다.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엄청난 규모의 통화확장 정책을 끝낼 수 있다고 확신했고, 주식 투자자들은 온통 상승장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2018년은 투자자들에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한 해가 되고 말았다. 중앙은행들은 통화정책 정상화 계획을 재고할 수밖에 없었고, 경제 전문가들은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해야만 했다. 이제 기업들은 올해와 내년 불황에 대비해야 하는 신세가 됐다.

뭐가 잘못된 걸까? 2018년 하반기 경기 지표는 전망치보다 조금 나쁜 정도였는데 말이다. 예를 들어 세계은행이 최근 발표한 지난해와 올해 전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각각 3%, 2.9%로 지난해 6월 발표치보다 각각 0.1%포인트 줄었을 뿐이다.

비관론이 힘을 얻은 주된 원인은 금융시장의 움직임 때문이다. 다수의 경제 전문가들은 지난해 12월에 두드러진 장기 금리와 주가 급락을 불황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였다. 투자자들이 뭔가 냄새를 맡고 주식을 내다 팔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불안해진 기업들이 투자와 고용을 줄여 ③ ‘자기 충족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 실현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

하지만 금융시장의 미래를 예측하거나 바꿀 수 있다고 속단해선 안 된다. 그 전에 경제나 정책 관련 변화들이 금융시장 관련 전망에 영향을 줄 수는 있어도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다면 불안한 시장 상황 말고 불황이나 경기 하락을 초래한 요인은 어떤 것이 있을까? 가장 명확한 답은 ‘시간의 흐름’이다. 2009년 시작된 경기확장 국면이 10년 동안 지속됐기 때문이다.  ④ 미국이 내년까지 불황을 겪지 않는다면 역사상 최장 기간 경기확장 기록을 세우게 된다.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의 트레이더들이 시황 변화를 심각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의 트레이더들이 시황 변화를 심각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경기확장이 오랫동안 지속될 수 없다거나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불황이 찾아온다는 등의 경제 법칙이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호황이 오래 지속되면 여건상 불황이 시작될 가능성도 커진다. 기준금리와 에너지 가격 상승, 물가 상승이나 부동산 거품 붕괴로 인한 은행권의 위기가 현실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자신감에 가득 찬 정치 지도자들이 전쟁이나 무역갈등, 방만한 재정 운용으로 일을 그르칠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이들 중 몇몇은 현실이 됐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렸고 이탈리아와 상당수의 유럽 국가들이 재정 긴축에 돌입했다. 미·중 무역전쟁이 본격화됐고 에너지 가격도 계속 오를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본다면 나를 포함한 많은 경제 전문가들의 예상과 달리 지난해 경기 성장이 둔화한 건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런데 지난해 경기둔화의 원인이 된 변화의 방향이 다시 바뀌고 있다. 유가는 하락했고 미 국채 수익률은 2018년 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무역갈등이 진정 국면에 접어든 가운데 ⑤ 중국이 재정 확대를 통해 경기 부양에 나설 가능성도 커졌다.

지난해 1월 주식시장이 조정기를 겪으면서 불확실성이 커진 것은 미국 경기 과열과 미 국채 금리 상승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과열 우려가 사그라들자 국채 금리가 안정세로 돌아서면서 증시는 반등했고 달러화 가치는 하락했다. 그런데 5월 들어 세 가지 정치적 악재가 겹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미국의 대(對)이란 제재 본격화 우려로 유가가 치솟았고,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됐으며, ⑥ 이탈리아에서는 극우·포퓰리즘 연립정부가 들어섰다.

10월 들어 정치 리스크가 감소하면서 신흥시장이 성장을 견인하기 시작했다. 유럽 증시도 안정감을 찾았고, 달러화도 약세로 돌아섰다. 유가는 이란 제재 이전 수준인 60~65달러 선을 오갔다. 정리해 보면 시장은 정치와 거시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 변화에 크게 반응한 것을 알 수 있다. 적어도 12월 이전에는 그랬다. 12월 들어 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까지 대형주 중심의 S&P500 지수는 16%나 하락했다. 같은 기간 글로벌 유가의 벤치마크인 브렌트유 가격은 배럴당 61달러에서 50달러로,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3%에서 2.7%로 떨어졌다.

이 같은 변화를 설명할 만한 뚜렷한 근거는 없다. 행여 투자자들이 정치적 혼란에 염증을 느껴 예측 자체를 포기해 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시장 변화를 통해 경기 흐름을 예측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선행지수의 의미는 희석되는 반면, 최근의 굵직한 사건들에 대한 ‘반응’이 변화를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세상에서 다가올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운 건 투자자나 할리우드 거물이나 매한가지다.


Tip

애플은 최신 아이폰의 중국 판매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팀 쿡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2일 투자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지난해 4분기 매출 전망치를 애초보다 최대 9% 낮은 840억달러로 하향 조정하면서 “중국 등 중화권 경제 감속 규모를 예측하지 못했다”고 실토했다.

위험자산인 주식과 안전자산인 미국 국채 가격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주식시장은 경제 상황이 좋을 때, 채권시장은 경제 전망이 나쁘거나 경기 하강기에 호조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지난해 글로벌 증시와 채권시장에서 동시에 대규모 자금 이탈이 발생하면서 경기 하락이 시작된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글로벌 주식과 채권이 동시에 추락하는 것을 경기가 정점을 찍었다는 신호로 보는 의견이 많기 때문이다.  

기대나 선입견이 현실이 되는 것을 뜻하는 심리학 용어지만 경제 현상에도 폭넓게 적용된다. 1997년 한국이 겪었던 외환위기처럼, 경제 주체들이 예상하는 방향으로 경기 흐름이 바뀌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당시 해외 투자자들 사이에 한국의 외화유동성이 부족해질 것이라는 예상이 확산되면서 투자자들이 자금을 인출하기 시작했고, 한국은 실제로 외화가 부족해져 외환위기를 겪게 됐다.

미국 역사상 최장의 경기확장 기간은 1854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이는 논란의 여지가 많아 공식 집계에서는 제외되며, 20세기 이후에는 정보기술붐으로 야기된 1990년대의 10년간을 최장으로 보고 있다.
 
중국 정부는 1월 19~21일  2019년 경제 운영 방향을 결정하는 중앙경제공작회의를 열고 통화·재정정책을 총동원한 경기 부양을 약속했다. 이와 함께 감세 및 원가 절감, 제조업 지원, 개방 확대, 민생 안정 등을 주요 키워드로 제시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지난해 5월 서유럽 사상 최초의 극우 포퓰리즘 정부가 탄생했다. 이탈리아 극우 동맹당과 반체제 정당 오성운동이 연립 정부를 출범시킨 것. 이 정부는 막대한 국가부채에도 불구하고 자국민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적자 예산을 편성했다. 그 결과 회원국의 예산 감독권을 지닌 유럽연합(EU)과 갈등을 빚으면서, 브렉시트에 이어 유럽에 또 하나의 위기를 촉발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