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 양승용
일러스트 : 양승용

최근 국토교통부가 2019년 전국 표준지 공시지가를 발표했다. 표준지란 우리나라 땅을 대표하는 전국 50만 개 필지 토지를 말한다. 각 지방자치단체는 이 표준지 가격을 토대로 개별 토지의 공시지가를 산정, 매년 발표한다. 올 1월 1일 기준 전국에서 가장 비싼 땅은 서울 충무로 1가 화장품 매장인 ‘네이처리퍼블릭’ 부지(169.3㎡)로 나타났다. 1㎡당 가격이 작년 9130만원에서 1억8300만원으로 두 배(100.4%) 뛰었다. 2004년부터 16년째 ‘전국 1위’ 타이틀을 차지하고 있다. 반면 전국에서 가장 싼 땅은 전남 진도군 조도면 옥도리의 임야로 1㎡당 210원이었다. 전국에서 가장 싼 땅 87만 평을 팔아야 서울 명동 땅 1평을 살 수 있다는 의미다.

원래 땅값 전국 1위로 장기 집권했던 곳은 서울 명동 2가 우리은행 명동지점 자리였다. 16년간 1위 자리를 차지해 오다 충무로 1가 상가 부지에 1위 자리를 내줬다. 명동 상권 중심지가 명동성당 주변에서 지하철 4호선 명동역 부근으로 이동한 데 따른 것이다. 한국산 화장품을 싹쓸이 쇼핑하는 유커 관광객 덕분에 최근엔 서울 명동, 충무로 일대 화장품 매장 부지들이 전국 땅값 상위 10위권을 거의 싹쓸이하고 있다.

공시지가 제도가 처음 도입된 것은 1989년이다. 노태우 정부 시절 입안된 ‘토지공개념’ 제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1987년 대통령 선거 막바지에 당시 민정당 노태우 후보가 1990년에 토지공개념을 도입하겠다는 경제 공약을 발표했다. 보수 정권이 토지공개념 정책을 도입하게 된 것은 집값과 땅값 폭등으로 민심이 들끓었기 때문이다. 경제기획원 차관을 지낸 뒤 청와대 경제수석을 역임하며 토지공개념 입법에 앞장섰던 문희갑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같은 서울 하늘 아래 봉천동, 사당동 등 산꼭대기 달동네에는 움막 같은 집 하나에 서너 가구가 비참하게 살아가는 반면 삼청동, 성북동, 방배동 등에서는 수십억원짜리 집에 초호화판으로 떵떵거리고 사는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 아무리 사유재산권이 보장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라 하더라도 이 격차는 줄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토지공개념 정책화 과정은 지난했다. 여당인 민정당 내에서도 토지공개념 추진 세력을 사회주의자로 공격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하지만 여론은 토지공개념 도입을 지지하는 쪽이었다. 1989년 5월 국토개발연구원이 최종 연구 결과를 발표하자 다시 여론이 들끓었다. “상위 2.8%의 가구가 전체 사유지의 51.5%를, 상위 5% 계층이 65.2%의 땅을 소유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결국 1989년 9월 민정당 박준규 대표가 “정부의 토지공개념 입법안을 받아들이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토지공개념을 실행하려면 지가(地價) 체계부터 일원화해야 했다. 그 이전에는 지가 체계가 기준지가(건설부가 고시한 지가), 토지시가(한국감정원), 과세시가 표준액(내무부), 기준시가(국세청) 등으로 4원화돼 있었다. 개발이익환수제 등을 시행하기 위해선 개발이익을 측정할 수 있는 단일한 잣대의 토지 가격 지표가 필요했다. 건설부는 토지공개념 시행을 위해 1988년 토지소유상한제, 개발이익환수제, 과표 현실화 등 토지공개념 근간을 이루는 정책 골격을 만들었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1989년 ‘지가공시 및 토지 등의 평가에 관한 법률’을 제정, 공시지가 제도를 도입했다.

제도 도입 한 세대가 지난 시점에 진보 정부가 부동산 투기를 잡기 위한 수단으로 공시지가 제도를 십분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올해 공시지가 산정 과정에선 잡음이 적지 않았다. 국토부가 감정평가사들에게 고가 토지의 공시지가를 대폭 올리도록 지침을 내려 ‘월권’ 논란이 일었다. 고가 토지의 경우 시가보다 공시가격이 저평가된 점이 있지만, 정부가 월권 논란까지 감수하며 공시지가를 끌어올린 행보는 땅 부자들에 대한 징벌 의지를 보여주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