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설명 1월 23일 일본은행은 기준금리를 마이너스 0.1%로 동결하고 자산 매입 규모도 현 수준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1999년 2월 12일 세계 최초로 제로금리 시대로 진입한 이후 20년, 2001년 국채를 사들여 시장에 돈을 푸는 양적완화(QE) 프로그램을 도입한 지 18년이 흘렀지만, 일본은행의 실험은 현재진행형이다. 3월 29일 영국의 탈퇴 시한을 앞두고 EU와 영국의 협상은 교착 상태에 빠져있다. EU 집행위원회의 장 클로드 융커 위원장은 브렉시트 연기를 요청할 경우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BRICs 용어 창시자 짐 오닐은 이번 칼럼에서 EU 탈퇴 이후 영국과 일본 관계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짐 오닐(Jim O’Neill)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 소장, 서리대 박사, 전 골드만삭스 자산운용 회장
짐 오닐(Jim O’Neill)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 소장, 서리대 박사, 전 골드만삭스 자산운용 회장

1월 도쿄에서 열린 ‘브렉시트 이후 일본과 영국 관계’ 콘퍼런스에 참석했다. 채텀하우스와 다이와리서치인스티튜트가 공동으로 주최한 행사였다. 일본 방문은 6년 전 골드만삭스를 떠난 이후 처음이다. 그전엔 1988년부터 일본을 꾸준히 방문했던 덕분에 여러 사안을 한발 물러서서 볼 수 있었다.

2019년의 일본 상황을 다른 선진국과 비교하면 대체로 안정적인 편이다. ① 일본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앞으로 10년간 G7 최고 수준을 지속한다 해도 놀랄 일은 아니다.

지난 10년간 일본의 연평균 GDP 증가율이 1.1%에 그친 것이 사실이지만, 인구 감소와 이에 따른 노동력 급감이 이미 1인당 GDP 수치에 적용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성적이 좋은 편이다. 일본이 처한 인구학적 도전을 감안해도 장기적으로 경제성장률이 더 높아질 잠재력이 충분하다.

최근 일본 정부는 ② 특정국 출신 외국인 노동자를 유인하기 위한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마침내 미래 성장을 위해 이민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한 것이다. 명백히 20년 뒤를 위한 투자다. 그런데 최근 유럽과 미국에 불어닥친 반이민 물결을 보면 과거 일본이 친이민 전략을 거부해왔던 것은 어찌 보면 실수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과거엔 실수로 치부되기도 했다).

올해 말 아베 신조 총리는 일본 역사상 최장수 총리가 된다. 20년간 계속된 일본 지도자들의 ③ ‘의자놀이(playing musical chairs·돌아가며 감투를 쓰는 것)’를 거쳐 총리가 된 아베는 놀랄 만한 안정기를 가져온 주인공이다. 특히 그의 시그니처 경제 정책인 아베노믹스도 여러 분야에서 성공을 거뒀다. 1인당 GDP 성장률이 강력한 수준을 이어가고 있는 데다, 디플레이션에서도 벗어나고 있다. 여성들도 노동 시장에 ④ 활발히 참여하게 됐다.

한편 일본은 양적완화(QE) 도입 20주년도 앞두고 있다. 이 파격적인 정책이 놀라울 정도로 지속되는 이유는 ‘이 정책을 중단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엄청난 규모의 자금 투입과 ⑤ 기업들에 대한 임금 인상 요구에도 인플레이션이 일본은행 목표치 2%를 꾸준히 밑돌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QE를 중단하는 것은 일본은행이 택할 수 있는 옵션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칙적으로는, 무한정 QE를 유지하는 정책이 옳은지에 대한 의문이 있을 수 있다. 일본은행이 엄청난 규모의 통화 리스크를 도입하지 않고는 2%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리고 이 2% 목표 자체가 합리적인지조차 불분명하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우선순위에 있어야 할 다른 정책을 배제하면서까지 좁은 목표를 추구해야 한다는 위험도 있다. 많은 나라들은 1990년대 경험을 통해 이게 어렵다는 점을 배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행은 적어도 아베 총리가 퇴임할 때까지는 현재의 접근법을 유지할 것이다. 문제는 그 이후다. 일본은행이 채권 시장과 주식 시장에서 왜곡된 존재가 되어버린 탓에 QE가 축소되면 세계 경제가 광범위한 영향권에 들 수밖에 없다. QE 종료와 정부 부채의 극적인 개선이 동시에(그럴 가능성은 무척 낮다) 일어나지 않는 한 채권 시장은 매우 힘든 시기를 보내게 될 것이다.


일본은 양적완화(QE) 도입 20주년도 앞두고 있다. 이 파격적인 정책이 놀라울 정도로 지속되는 이유는 ‘이 정책을 중단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다. 사진 블룸버그
일본은 양적완화(QE) 도입 20주년도 앞두고 있다. 이 파격적인 정책이 놀라울 정도로 지속되는 이유는 ‘이 정책을 중단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다. 사진 블룸버그

일본은행이 많은 일본 기업들의 10대 대주주 중 하나가 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주식 시장에서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일본은행이 자사주 매입을 중단하면 주식 시장 왜곡이 줄면서 개인 투자자 분석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여러 변수가 소비세 인상과 맞물려 앞으로 한참 동안 금융 애널리스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여러 주제를 폭넓게 다뤘던 이번 콘퍼런스에서 나는 브렉시트 이후 영국과 일본이 협력할 분야가 생각보다 많다는 점을 깨달았다. 두 나라의 색다른 경제 상황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일본은 까다로운 중국과의 관계에서 얻은 그간의 지혜를 다른 선진국들에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세계 각국 정부가 안고 있는 과제는 중국 경제 성장에 따른 혜택을 누리는 동시에 여기에 수반되는 안보, 사이버, 금융 위험을 피하는 것이다.

나는 영국 정부가 아베 정부가 추진하는 강력한 정보 보호, 사이버 보안 움직임에 동참할 것으로 기대한다. 이 이슈는 올해 6월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서 두드러지게 부각될 것이다. 또 영국 정부는 최근 일본 정부가 아시아, EU와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⑥ 무역 협상을 통해서도 배울 점이 많다. 만약 영국이 홀로 무역 활동을 해나가기로 결정한다면, 일본과의 협력 관계를 강화하는 것이 절대적이다.

또 만약 아베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⑦ 협력에 성공하면, 우리에게 ‘크렘린학’에 대해서 가르쳐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이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다.


Tip

세계은행에 따르면 일본의 1인당 GDP 증가율은 2017년 기준 1.88%를 기록했다. 세계 평균은 1.95%다. G7에 들어가는 미국(1.55%), 영국(1.13%), 프랑스(1.43%), 독일(1.79%), 이탈리아(1.63%), 캐나다(1.80%)보다 높다. 한국은 2.62%다.

지난해 12월 일본 참의원을 통과한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은 외국인 노동자를 확대 수용하는 안을 담고 있다. 농업, 어업, 항공업, 숙박업 등 14개 업종에서 향후 5년간 최대 34만5000명의 외국인 노동자를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2006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임기 종료 이후 일본 총리는 1년마다 교체됐다. 아베 신조, 후쿠다 야스오, 아소 다로, 하토야마 유키오, 간 나오토, 노다 요시히코가 2012년까지 ‘회전문 총리’라는 오명을 쓰며 단명했다. 2012년 다시 정권을 잡은 아베 신조 총리는 오는 11월 역대 최장수 총리 기록을 세우게 된다. 그의 임기는 2021년 9월까지다.

일본의 여성 경제참여율은 2012년 63%에서 2017년 69%까지 올라갔다.

오랜 불황을 겪은 일본은 만성적 저(低)물가에 따른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베 총리 취임 이후 최저임금을 적극적으로 인상해왔다. 특히 그는 지난해 12월 일본 기업들에 “경기 회복 기조를 더 명확하게 하기 위해 임금 인상을 부탁한다”고 공식 요청했다. 정부의 여섯 번째 요청인데, 노조를 대신해 정부가 기업과 협상에 나서는 ‘관제춘투(官製春鬪)’라는 말이 나온다.

일본은 캐나다·호주·베트남 등 아시아·태평양 11개국이 참여하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CPTPP)’ 체결을 주도했다. 또 유럽연합(EU)과는 경제연대협정(EPA)을 체결했다.

일본은 러시아와 남쿠릴 열도 4개 섬을 놓고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평화조약 체결을 추진하고 있다. 이 영토는 현재 러시아가 실효 지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