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설명 올 들어 신흥국 국채 시장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를 필두로 세계 중앙은행들이 금리 인상 기조를 보류하는 움직임을 보이는 데다, 미·중 무역전쟁 종전에 대한 기대감 등이 더해지면서 높은 수익률을 좇는 투자 자금이 다시 신흥국을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지난 1월 신흥국 시장으로 유입된 글로벌 자금 규모는 209억달러로 6개월 만에 처음 순 유입으로 전환했고, 2월 순 유입 규모는 256억달러를 기록했다. 신흥국으로 투자 자금이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카르멘 라인하트 하버드대 교수는 지난 200년간의 신흥국 금융 시장 자료를 분석한 연구에서 “신흥국 국채는 우려하는 것보다 안정적인 투자처”라며 “미국 연기금도 이 자산에 적극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카르멘 라인하트(Carmen M. Reinhart) 하버드대 교수, 미국 컬럼비아대 경제학 박사, 베어스턴스 투자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 피터슨연구소 선임연구원
카르멘 라인하트(Carmen M. Reinhart)
하버드대 교수, 미국 컬럼비아대 경제학 박사, 베어스턴스 투자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 피터슨연구소 선임연구원

고령화 사회는 여러 도전을 받고 있다. 이 도전들은 새로운 것도 특별한 것도 아니다. 이탈리아와 일본의 인구는 이미 감소하고 있다. 미국의 여러 주정부는 ① ‘미적립식 연금(unfunded pension)’에 따른 부채 때문에 골치를 썩이고 있다.

대부분 선진국에서는 저금리가 정부 차입 비용을 억제하는 효과를 냈지만, 한편으로는 연금 자산 운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또 인플레이션을 감안할 때 일본과 독일을 비롯한 여러 유럽 국채 금리는 한동안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위기 이후 부양책을 유지한 덕분에 ② 단기 국채 금리는 높은 수준을 유지했지만, 장기 국채 금리는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20년간 미국을 비롯한 세계 채권 시장의 특징은 실질 수익률이 낮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시대 인구의 평균 연령은 지금보다 훨씬 낮았고 인구 증가 속도도 무척 빨랐다는 것이 지금과 다르다. 게다가 가계 부채 수준도 지금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었다. 연금 지불 능력도 관심사가 아니었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어떨까? 선진국 국채 수익률의 이후 방향성과 상관없이 (고령화, 인구 감소 등의) 인구통계학적 흐름은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결국 연금 비용 상승을 의미한다.

1935년 미국 사회보장제도가 생긴 이후 미국인의 기대 수명이 17년 상승한 반면, 정년은 2년이 채 안 되는 수준으로 오르는 데 그쳤다. 1946년 29%에 그쳤던 GDP 대비 연금 비중이 지금 4배 이상 증가했다. 자연스레 모든 연금 상품의 우선 순위는 고수익이 됐다.

크리스토프 트레베시(Christoph Trebesch) 독일 킬(Kiel)대학 교수, 베를린자유대 경제학 박사
크리스토프 트레베시(Christoph Trebesch)
독일 킬(Kiel)대학 교수, 베를린자유대 경제학 박사

이런 영향으로 최근 몇 년간 미국 연금들의 투자처는 주식시장에 쏠려있었다. 고금리에 대한 관심이 빚은 현상이다. 이런 움직임은 ③ 세계 최대 국부 펀드를 포함한 다른 투자자 사이에서도 뚜렷했다.

그러나 나와 크리스토프 트레베시, 요제핀 마이어가 함께 진행한 최근 연구를 보면, 또 다른 자산군이 ‘무위험(risk free)’으로 유명한 미국 국채보다 높은 장기 수익률을 내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우리 연구는 외국 국채에 초점을 맞췄다. 1815년부터 2016년 사이에 런던과 뉴욕에서 거래된 91개국 외화 표시 국채에 대한 자료를 모았다. 월 22만달러 규모다. 이 연구에서 알게 된 것은 ‘외국 국채(신흥국 발행 채권) 수익률이 투자자들이 리스크를 감수할 정도로 충분히 높았다’ ‘이는 주식시장 못지않게 매력적인 것이었다’였다.

지난 2세기 동안 외국 국채의 실질 수익률은 평균 7%를 기록했다. 물론 그사이 국가별 채무 불이행(디폴트) 위기나 전쟁, 글로벌 금융 위기 등이 있었다. 특히 특정 연도에 이 시장에 진출한 투자자는 미국이나 영국 국채 수익률보다 약 4%포인트 높은 초과 수익을 얻기도 했다. 이는 주식이나 회사채에 견줄 만큼 높다.

이 수익률은 신흥 시장의 신용 위험도와 별다른 관련성이 없었다. 1815년 이후 300건 정도의 국가 채무 기록을 살펴본 결과, 완전한 디폴트 발생 사례는 거의 드물었다. 그나마 디폴트가 발생한 사례 대부분은 국가 혁명(20세기 초반 러시아 혁명, 중국 마오쩌둥 혁명, 쿠바 혁명,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 지배하의 유럽 국가들)과 관련이 있었다.

또 전체 자산군에서 지난 2세기 동안 부채 위기 당시 부채 탕감으로 고통받은 투자자 비중은 50%에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무디스가 미국 회사채 투자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수치보다도 낮은 것이었다.

외국 국채는 높은 금리로 투자자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세계 GDP에서 신흥·개발도상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의 3분의 2 수준이다. 3분의 1 정도였던 50년 전보다 비중이 증가했다.


신흥국 채권 금리는 신흥국 주식시장 상승률과도 별다른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미국 법원의 판결을 보면, 외국 국채 시장에서 채권자의 권리와 집행 권한이 더 커지고 있다.

이 연구 결과는 무분별하게 위험을 감수할 것을 제안하는 초대장이 아니다. 새로운 국가 디폴트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데다, 국채 시장이 유동성 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연구는 두 가지를 시사한다.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자산군으로 투자처를 다양화해 장기 수익률을 높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연금 상품이 마이너스, 혹은 아주 낮은 수준의 수익률을 내는 투자처에만 의존하는 것도 위험하다는 것이다.


Tip

거둔 보험료로 미래에 지불해야 할 연금을 적립해놓는 ‘적립식연금’의 반대 개념이다. 지불 시기에 필요한 만큼의 보험료를 거둬 지급하는 방식으로 운용된다.

보통 미국 10년 만기 국채를 장기채, 2년 만기 국채를 단기채라고 한다. 채권은 만기가 길어질수록 위험성이 크기 때문에 장기물이 단기물보다 수익률이 높다. 하지만 최근 이 장·단기 금리 차는 20bp(1bp=0.01%포인트) 안쪽에서 움직이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역사적으로 장·단기 금리 차가 역전되면 경기침체가 닥치는 경우가 많았다.

노르웨이 국부펀드(GPFG)는 세계에서 1조달러를 운용하는 세계 최대 국부펀드다. 2017년 기준 GPFG의 자산 배분 비율은 주식 66.6%로 채권(30.8%), 부동산(2.6%)보다 월등히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