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 양승용
일러스트 : 양승용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의 아버지로 불리는 데미스 하사비스는 어렸을 때 컴퓨터를 끼고 살았다. 여덟 살 때 받은 체스 대회 상금을 털어 컴퓨터를 샀고 게임에 빠져들었다. 스스로 게임을 만들기도 했다.

고등학교를 조기 졸업한 뒤 대학에 가지 않고 게임회사에 취직해 ‘테마파크’라는 컴퓨터 게임을 공동개발했다. 이후 게임을 더 잘 만들기 위해 케임브리지대에 들어가 컴퓨터를 배웠다. 대학 졸업 후 게임업계에 복귀해 세계적인 명작 게임인 ‘블랙 앤 화이트’ 개발에 참여했다.

하사비스는 게임 개발과정에서 인공지능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블랙 앤 화이트’에서 환경변화에 따른 NPC(플레이어가 직접 조종할 수 없는 캐릭터)들의 반응을 설계하는 작업을 맡았다. 이후 인공지능을 개발하려면 먼저 인간의 뇌를 이해해야 한다는 판단으로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에 진학해 뇌과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0년 인공지능 개발업체인 딥마인드를 설립했고, 3년 뒤 구글에 합류해 알파고를 개발했다. 컴퓨터 게임에 대한 관심이 인공지능과 알파고 개발로 이어진 것이다.

우리 시대 가장 혁신적인 기업인으로 꼽히는 일론 머스크는 열 살 때 독학으로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를 익혔다. 열두 살 때 동생과 함께 ‘블래스터’라는 게임을 만들었다. 머스크가 공상과학소설에서 영감을 얻어서 만든 비디오 게임으로 ‘PC 앤드 오피스’라는 잡지에 500달러(현재 가치로 1200달러 정도)를 받고 팔았다. 머스크의 첫 사업 성과였다.

세계 최고의 게임회사로 꼽히는 ‘블리자드’의 공동창업자인 마이크 모하임도 어려서부터 게임의 재미에 빠져들었다. 열두 살 때 형제들과 돈을 모아 게임 콘솔을 샀다. 모하임이 산 기기는 간단한 프로그래밍도 할 수 있었다. 여기에 흥미를 느낀 그는 게이밍 뉴스레터에 실린 프로그래밍 코드 사례를 보며 게임을 만들기도 했다. 그는 대학에서 만난 앨런 애드햄 등과 의기투합해 ‘실리콘 앤드 시냅스’를 설립했다. 이 회사가 훗날 워크래프트, 디아블로, 스타크래프트 등을 만든 블리자드의 전신이다.

IT업계를 중심으로 세계적인 기업인 중에는 어렸을 때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발전시킨 사례가 적지 않다. 이들이 한국에서 자랐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공부나 하라”는 꾸지람만 들었을 것이다.

‘주전자닷컴’과 ‘플래시365’ 등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5곳이 얼마 전 ‘자작 게임 게시판’을 일제히 폐쇄했다. 이 게시판은 청소년과 아마추어 게임 개발자들이 만든 습작품을 올려 평가를 받고 제작 노하우를 공유하는 공간이었다. 게시판 폐쇄로 사라진 게임 습작품은 주전자닷컴의 4만 건을 포함해 모두 7만여 건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발단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게임물관리위원회가 ‘등급 심의를 받지 않은 자작 게임물을 게시판에 올리는 것은 불법’이라는 경고장을 보낸 것이다. 2006년 제정된 게임산업진흥법의 규정에 따르면 청소년들이 만든 자작, 습작 게임이라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려면 등급 분류 심사를 받아야 한다. 심사를 받으려면 게임 용량에 따라 2만1000~16만8000원의 수수료를 내야 한다. 결국 청소년들은 습작 게임을 만들더라도 아무도 모르게 혼자 가지고 놀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상 만들지 말라는 이야기나 다름없다.

세상에 이런 황당한 규제가 있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은 셧다운제와 결제 한도 등 어느 나라보다 많은 규제로 게임산업을 압박하고 있다. 심지어 게임을 마약·알코올·도박과 함께 중독 질병으로 묶어서 관리하는 방안을 추진한 적도 있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4차 산업혁명 운운하며 게임산업을 육성하겠다고 하고 있다. 헛웃음만 나온다.

김기천 조선비즈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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