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석 와세다대 커뮤니케이션학 석사, 조선비즈·동아일보 기자, 일본 도쿄 IT기업 근무, ‘오타쿠 진화론’ 저자
이진석
와세다대 커뮤니케이션학 석사, 조선비즈·동아일보 기자, 일본 도쿄 IT기업 근무, ‘오타쿠 진화론’ 저자

4월이 되면 일본 사회 곳곳에서 설렘을 느낄 수 있다. 성큼 다가온 봄기운과 신입사원 입사식, 학생들의 새 학기 시작만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것은 4월 말부터 5월 초는 공휴일이 몰려 있는 기간, 이른바 ‘골든위크(Golden Week·황금 같은 주간이라는 뜻의 일본식 영어)’다.

골든위크에 일본의 국가 공휴일이 몰려 있다. 먼저 쇼와(제124대 일왕·재위 1926~89년) 일왕의 탄생을 기념하는 쇼와의 날(4월 29일)과 헌법기념일(5월 3일), 녹색의 날(5월 4일), 어린이날(5월 5일)이 있다. 여기에 국가 공휴일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기업이 휴일로 삼는 노동절(5월 1일)과 주말을 합하면 1주일 정도를 쉬게 된다.

올해의 골든위크는 각별하다. 아키히토(제125대 일왕·재위 1989년~) 일왕의 퇴위와 새 일왕 나루히토의 즉위를 기념해 5월 1일을 공휴일로 삼기로 했다. 이에 따라 주말인 4월 27~28일, 대체 공휴일인 4월 30일과 5월 2일, 6일을 포함해 무려 10일간(4월 27~5월 6일)의 연휴를 누리게 됐다. 일본 법률이 징검다리 휴일이 있을 경우 사이에 낀 날을 대체 공휴일로 지정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는 근대 일본사에서 최장기간 연휴다.

사상 최장의 골든위크를 맞아 일본 경제계가 들썩이고 있다. 무엇보다 신바람이 난 곳은 여행사와 항공사다. 일본 대형 여행 업체인 JTB와 H.I.S., 항공사 일본항공(JAL)과 전일본공수(ANA)는 국내외로 여행에 나서는 내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앞다퉈 다양한 판촉 상품을 내놓고 있다. 일본여행업협회(JATA)에 따르면 지난해 골든위크에 인기 해외 행선지 1위는 대만이었다. 올해는 평소보다 훨씬 긴 연휴 덕분에 이탈리아, 프랑스, 미국 등 장거리 노선이 인기라는 게 여행 업계의 반응이다.

같은 기간 일본 각지에서는 무수히 많은 이벤트와 공연, 스포츠 경기와 전시회가 열린다. 일부 사교육 업체는 열흘간의 휴일을 이용한 해외 단기유학 프로그램을 내놓기도 했다. 필리핀 세부, 하와이 등 비교적 가까운 국가에서 홈스테이나 어학원 교습으로 영어를 배우는 과정이다.

‘골든위크’는 1951년 일본 영화사인 다이에이의 당시 전무였던 마쓰야마 히데오(松山英夫)가 만든 말이다. 배급 중이던 영화의 연휴 흥행을 위해 붙인 선전 용어가 서비스업 전반으로 확산됐다. 일부 언론사에서는 골든위크 대신 ‘대형 연휴’라고 부르기도 한다. 국영 방송사인 NHK는 “쉬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데 뭐가 황금연휴냐”는 시청자 항의를 받고 이 표현을 쓰지 않기로 했다.

연휴를 마냥 반길 수만 없는 이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그 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을 드러내는 신호로 볼 수 있다. 실제로 10일간의 연휴를 앞두고 볼멘소리를 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 남들의 휴일이 가장 분주한 날인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특히 그렇다.

백화점 종업원, 테마파크 직원, 미용사들은 “열흘 연속 출근을 각오해야 할 것 같다”며 우려하고 있다. 근무한 시간만큼 급여가 산정되는 일용직이나 단기 파견직 종사자들은 수입이 줄어드는 게 걱정이다. 일본 IT 업계의 대표적인 고강도 직종인 시스템엔지니어(SE·컴퓨터 및 통신장비를 업무 시스템에 맞게 설계·관리하는 사람)는 24시간 시스템 관리에서 눈을 뗄 수 없는 탓에 골든위크는 남의 이야기에 불과하다.


일본 도쿄 아사쿠사 지구 거리에서 관광객들이 인력거를 타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일본 도쿄 아사쿠사 지구 거리에서 관광객들이 인력거를 타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골든위크를 맞은 일본의 휴대전화, 고급 손목시계 판매 포스터. 사진 AP뉴시스
골든위크를 맞은 일본의 휴대전화, 고급 손목시계 판매 포스터. 사진 AP뉴시스

연휴가 즐겁지 않은 사람들

서비스업 종사자가 아이를 키우며 일하는 ‘워킹 맘’이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보육원도 일제히 연휴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관공서의 각종 수속 업무가 늦어지는 것도 부담이다. 일본에서는 이사 후 전입신고나 출생신고를 2주 내에 마쳐야 한다. 10일간이나 수속이 불가능해지면 연휴를 전후해 창구가 혼잡해지는 건 불을 보듯 뻔하다. 은행도 문을 닫기 때문에 미리 현금을 준비해 놓지 않으면 곤란한 일이 생길 수 있다.

외출을 즐기지 않고 집에서 자신의 취미생활에 빠지는 ‘오타쿠(특정 대상에 집착적 관심을 갖는 사람을 뜻하는 일본어로 주로 만화와 애니메이션 팬을 지칭)’에게는 장기 연휴가 그리 달갑지 않다. 온라인쇼핑 배송은 늦어지고 만화 잡지는 2주분의 합본호가 발간되기 때문이다.

온전히 열흘을 쉬는, 또는 최근 들어 엄격해진 일본 기업의 컴플라이언스(준법감시)에 의해 ‘쉬어야만 하는’ 직장인들도 걱정이 많다.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면 쌓여 있을 일을 생각하면 말이다.


아키히토 일왕이 3월 26일 나라(奈良)현에 있는 진무(神武) 왕릉을 방문해 퇴위를 고하는 의식을 치렀다. 진무는 일본 초대 왕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아키히토 일왕은 4월 30일 공식 퇴위한다. 사진 연합뉴스
아키히토 일왕이 3월 26일 나라(奈良)현에 있는 진무(神武) 왕릉을 방문해 퇴위를 고하는 의식을 치렀다. 진무는 일본 초대 왕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아키히토 일왕은 4월 30일 공식 퇴위한다. 사진 연합뉴스

골든위크가 끝나고 나면 일본 사회는 5월병을 앓기 시작한다. 신입사원이나 대학 신입생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정신적 불안을 호소하는 증세다. 긴 연휴를 마치고 무기력에 빠져 일상으로 돌아오기 힘든 이들에게 찾아오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일본은 골든위크가 끝나고 나면 7월 중순까지 약 70일 정도 공휴일이 없다.

일본 사회의 연간 최대 이벤트라고 할 수 있는 골든위크이지만, 한편으로는 그간 일본 사회에서 곪아있던 문제들이 동시에 터져나오는 계기로 생각되기도 한다. 일자리의 질, 육아 문제, 비효율적인 관공서, 가혹한 서비스업 노동 환경과 같은 난제에 쌓여온 불만이 후한 공휴일로는 절대 풀리지 않는다. 길게 쉬는 것보다 안심하고 쉴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가 쉽지 않아서다. ‘격차사회(소득 수준 등에서 사회 불평등이 확대된 사회를 뜻하는 말)’ 일본에서 “뭐가 황금연휴냐!”는 볼멘소리는 언제쯤 잦아들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