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데이비스(Howard Davies) RBS(Royal Bank of Scotland) 이사회 의장, 런던정경대학(LSE) 총장, 영국 금융감독청(FSA) 청장
하워드 데이비스(Howard Davies)
RBS(Royal Bank of Scotland) 이사회 의장, 런던정경대학(LSE) 총장, 영국 금융감독청(FSA) 청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금융규제 완화 의도를 명확히 했다. 그는 새로운 규제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2개의 규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유럽에서는 이 같은 탈규제 열의를 찾아볼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 5월에 서명한 ① 경제성장, 규제 완화,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은 소비자보호보다는 규제 완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트럼프 행정부에 의해 발표된 규제 원칙에 따르면, 규제 당국은 국제 금융 시장에서 미국 회사들의 경쟁력을 고려하고 미국인의 이익을 증진시켜야 한다. 재무부는 다양한 탈규제 이니셔티브를 통해 규제 원칙이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네 가지 보고서를 만들었다. 각각 은행, 자본시장, 자산관리 회사와 보험사, 제2금융권과 핀테크 업체에 대한 것이다.

한동안 이런 정치적 행동은 수사적(修辭的)인 것으로 여겨졌고 대형 은행들에 영향을 미치는 제도에는 중요한 변화가 없었다. 초기에는 소규모 은행들의 일부 보고 의무나 자본 규제를 완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규제 완화 이니셔티브가 탄력을 받고 있다는 신호가 보인다. 증권거래위원회(SEC),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등 규제 당국에 새롭게 규제 완화적인 리더십이 형성됐고 탈규제에 대한 그들의 기여를 얼마나 잘 증명할 수 있을지에 대한 경쟁을 하고 있다. 규제 당국의 활동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는 사람들에 따르면, 신규 규제는 4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고 금융사들의 규정 준수 비용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줄어들고 있다.

또 소규모 금융사뿐 아니라 대형 금융사도 혜택을 받고 있다. 재무부 산하의 금융안정감독위원회(Financial Stability Oversight Council)는 대형 보험사를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금융사’로 지정할 수 있었으나 지정 대상에서 보험사를 모두 빼기로 결정했다.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금융사로 지정되면 일정 수준의 자본을 확충해야 한다.

어떤 면에서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금융 시스템이 폭발하고 세계 경제가 구멍 난지 10년 이상 흘렀다. 기억들은 희미해지고 규제의 추는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의 규제 사이클에 대한 실무보고서는 ② 남해회사(South Sea) 버블에서부터 서브프라임 위기까지 과거 사례를 조사해 이 같은 버블 형성과 붕괴가 정치적인 규제 강화에 의해 어떻게 증폭됐는지를 보여줬다. 또 규제 완화와 함께 다양한 대출 장려책이 버블 형성에 기름을 부었고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식의 규제 강화가 버블 붕괴를 촉발했다.

과잉 대응이 될 이 같은 위기 후 규제는 대부분 살아남지 못한다. 몇몇 경우에는 존재할 가치도 없다. 남해회사 버블 당시 ③ 1720년 버블에 관한 법률은 약 100년 동안 유지돼 주식회사들의 발전을 제한했고 경제 성장에 해로운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위기 후 규제는 크게 바뀌기를 기대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규제 개정에는 세심한 관심이 필요하다. 가장 열정적인 투자은행 종사자조차도 2007년의 ‘적은 자본금, 낮은 유동성’의 금융사 규제 체제로 돌아가는 데 찬성하지 않을 것이다.


스티븐 므누신(오른쪽) 미국 재무부장관이 2018년 12월 19일 금융안정감독위원회(FSOC)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의장. 사진 블룸버그
스티븐 므누신(오른쪽) 미국 재무부장관이 2018년 12월 19일 금융안정감독위원회(FSOC)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의장. 사진 블룸버그

어쨌든 규제 사이클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위기의 영향은 미국과 유럽 국가가 유사한 반면 규제의 추는 이들 국가가 같은 방식으로 되돌아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국은 상업은행 부문과 투자은행 부문의 분리를 강화하는 규제 법률을 올해 시행할 예정이다. 미국에서는 이와 비슷한 볼커 룰을 약화시키고 있는 시점인데 말이다. 은행과 보험사 임원들의 자격요건을 강화하는 제도도 도입됐다. 유로존은 영국과 비슷하게 유로존 차원에서든 개별 국가 차원에서든 다시 규제를 강화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 프랑스 감독 당국은 이달 초 경기가 빠르게 둔화되고 있을 때(경기 침체에 빠진 상황이 아니라면) 추가 자본 확충을 하도록 하는 새로운 규제를 시행했다.

유럽에서는 금융 부문의 탈규제에 대한 정치적인 욕구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유럽의 우파 포퓰리스트는 은행 산업 종사자에 대해 좌파 정치인만큼 적대적이다. 트럼프식 규제 완화 어젠다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전혀 없다.

금융시장은 규제 사이클에 있어서 이러한 미국과 유럽의 차이에 대해 이미 인식해 왔다. 대부분 유럽 은행들의 주가는 장부 가치보다 훨씬 낮다. 어떤 경우는 장부 가치의 50%에도 미치지 못한다. 미국 은행들이 장부 가치를 이미 회복한 것과 비교된다. 이는 미국과 유럽의 성장률 차이, 이자율 차이 등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향후 규제 여건 또한 영향을 미친다.

이런 규제 사이클의 차이는 미국과 유럽의 상업은행들이 직접 경쟁하지 않기 때문에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다. 모든 주요 시장에서 글로벌 은행들은 나팔바지처럼 유행에 뒤떨어졌다. 그러나 투자은행 부문에서는 얼굴을 마주대고 경쟁하고 있으며, 최근 10년 동안 유럽에서 미국 은행들의 시장 점유율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과 유럽은 서로 다른 사회적 선택을 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금융 부문을 여전히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는 반면 유럽 정부는 위험하고 변동성 크고 주인 노릇을 하려는 대형 금융사와 금융시장이 그럴 가치가 없다고 결론 내린 것 같다. 어느 쪽이 더 현명한 선택을 했는지 당분간은 모를 것이다.


Tip

2018년 5월 24일 시행된 법률이다. △소비자들이 집을 살 때 이용하는 모기지(주택저당채권 유동화) 대출을 좀 더 쉽게 받도록 하는 방안 △규제 완화와 대출에 대한 소비자의 접근권 보호 △은퇴자, 주택 소유자 등 금융 소비자 보호 △특정 은행지주회사에 대한 맞춤형 규제 △자본투자 활성화 △학자금 대출자에 대한 보호 등의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남해회사는 1711년 당시 위기에 빠진 영국 재정을 살리고자 설립됐다. 정부 채무를 인수하면서 국채를 2 대 1의 비율로, 즉 절반 가격의 남해회사 주식으로 교환해줬다. 1713년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에서 영국은 프랑스를 제압하고 스페인령 서인도제도의 노예 수출 독점권인 ‘아시엔토’를 얻었고 영국 정부는 이를 남해회사에 양도했다. 남해회사는 전쟁 여파로 크게 불어난 영국 정부의 국채상환 책임을 떠안는 대신 브라질을 제외한 남미 지역 무역을 독점할 권리를 갖고, 또 주식을 발행해 자금을 모집할 수 있는 특권을 얻어냈다. 정부가 지원하고 고관 대작들이 대거 주주로 참여해 주가가 날로 치솟았다. 하지만 스페인이 인정한 무역량이 영국의 필요량만큼 충족되지 못했고 1718년 스페인과 전쟁이 시작돼 무역이 이뤄지지도 않아 남해회사가 얻은 남해 무역독점권이 무의미해졌다. 1720년 1월 128파운드였던 남해회사 주가는 그해 6월 24일에 최고치인 1050파운드까지 올랐다가 이후 폭락해 12월 124파운드로 떨어졌다.

1720년 남해회사 버블이 정점에 다다르기 직전인 그해 6월 11일 의회에서 통과된 법이다. 정부 승인없이 주식회사 형태의 회사를 설립하지 못하도록 했다. 처음에는 영국 본토에만 적용됐으나 1740년 영국 식민지로 확대됐다. 1825년 폐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