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설명 FAANG(페이스북‧아마존‧애플‧넷플릭스‧구글) 등 IT 산업을 선도하는 대형 기업들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들 기업이 미국 경제에 기여하기보다 시장 독점적인 상황을 통해 자신들의 이익만 극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해외 조세피난처에 회사 본사를 설립하는 등 방식으로 세금을 회피하고 있으며, 지나친 시장 지배력으로 경쟁을 저해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그래서 구글세처럼 매출액의 2~3%를 세금으로 부과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프랑스, 영국, 뉴질랜드 등이 이 같은 디지털세(digital tax)를 도입하기로 했다. 라잔 교수는 자유 경쟁을 유지하고 독점을 막는 자본주의의 복원력을 강조하고 있다. 역사적으로도 1890년대 반독점법, 1930년대 글래스-스티걸법 등이 제정됐다. 라잔 교수는 정부 개입의 필요성, 아래로부터의 개혁 움직임 등에 호의적인 시선을 보냈다.
라구람 라잔(Raghuram G. Rajan)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 교수, 인도중앙은행 총재,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이코노미스트
라구람 라잔(Raghuram G. Rajan)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 교수, 인도중앙은행 총재,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이코노미스트

미국에서 대형 IT 기업들이 공격받고 있다. 아마존은 뉴욕 퀸스의 롱아일랜드시티에 제2 본사를 건설하려던 계획을 지역 여론의 반대 때문에 철회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상원의원인 린지 그레이엄(공화당)은 페이스북의 독점적 시장지배력을 우려했다. 매사추세츠 상원의원인 엘리자베스 워런(민주당)도 페이스북에 기업분할을 요구했다. 워런은 이사회의 40%를 노동자 대표로 구성해야 한다는 법률을 발의하기도 했다.

그런 문제제기는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땅인 미국에 어울리지 않는 것일 수 있지만 지금의 논쟁은 정확히 미국에 필요한 것이다. 미국의 역사를 보면 경제력 집중과 그에 따른 정치적 영향력에 대항해 싸우는 자본주의의 비판자들이 있어 왔다.

소수의 기업들이 경제를 지배할 때 그들은 필연적으로 국가통제 기구와 협력하고, 이는 민간부문과 공공부문 엘리트들의 위험한 담합으로 이어진다. 이런 상황은 명목상으로만 민주적이고 자본주의적인 러시아에서 벌어져왔다. 크렘린(정치권력)에 기댄 올리가르히(신흥재벌)는 원자재 채굴과 은행업에 대한 완전한 지배력을 유지함으로써 의미 있는 경제적·정치적 경쟁을 불가능하게 했다. 러시아는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1961년 이임사에서 언급했던 문제들의 종합판이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군산복합체에 의한 부당한 영향력과 잘못된 권력의 부상 가능성에 대해 조심하라고 미국인에게 강력히 충고했다.

미국의 많은 산업분야가 이미 소수의 ‘수퍼스타’ 기업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민주적 사회주의 활동가들과 포퓰리스트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아이젠하워의 경고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것을 반겨야 한다. 그러나 미국의 수퍼스타 기업들은 러시아의 올리가르히들이 1990년대 국가 자산을 취득해 부를 형성했던 것과는 다르다. 그들은 경쟁자보다 더 생산적이었기 때문에 현재의 지위에 이르렀다. 그래서 이들에 대한 규제는 대형 해머보다는 수술용 메스를 사용하는 것처럼 정교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미국 기업들은 ① 글로벌 공급 체인 시대의 거대한 규모의 경제, 네트워크 효과, 실시간 데이터 활용 등으로 모든 생산 단계에서 실행력과 효율성을 높이는 데 큰 혜택을 받았다. 아마존 같은 회사는 실시간 데이터를 배송 시간 최소화, 서비스의 질 개선에 활용하고 있다. 아마존은 경쟁력이 높기 때문에 정부로부터 특혜를 받을 필요가 없다. 아마존 창립자인 제프 베이조스가 종종 미국 정부에 비판적인 워싱턴포스트를 두둔할 수 있는 이유다.

그렇다고 수퍼스타 기업들이 매우 효율적이어서 현재 방식을 지속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제대로 된 경쟁이 없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기업들은 항상 반(反)경쟁적 수단으로 그들의 지위를 유지하려고 한다. 시장지배력이 높은 인터넷 기업들은 1984년 컴퓨터 사기·남용 방지법, 1998년 디지털 밀레니엄 저작권법과 같은 법률을 지지함으로써 경쟁 기업이 그들의 플랫폼에 들어오는 것을 막았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에 표시된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넷플릭스 로고. 사진 블룸버그
스마트폰과 태블릿PC에 표시된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넷플릭스 로고. 사진 블룸버그

또 2009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대형 은행들은 규제 강화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당국이 규정준수(compliance) 비용을 높이는 법률을 도입하도록 로비함으로써 경쟁자들의 신규 진입을 막았다.

기업의 이익이 생산성보다 정부가 규정한 지식재산권이나 규제, 관세에 좌우될수록 기업은 정부의 자비심에 의존하게 된다. ‘내일’의 기업 효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하는 유일한 길은 ‘오늘’의 경쟁이다.

정부가 자본주의의 장점인 경쟁을 유지하고 소수 기업에 의한 시장 지배를 막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은 커뮤니티 내에서 민주적으로 조직된 보통 사람들의 힘에서 나온다. 그들은 시장이 엘리트의 영향력에 놓이지 않고, 더 경쟁적이고 개방적으로 되기를 원한다. 미국에서 19세기 후반 인민당과 20세기 초반 진보당은 철도와 은행 같은 산업에서의 독점 때문에 나온 것이었다. 이런 풀뿌리 운동은 1890년 ② 셔먼 반독점법, 1933년 ③ 글래스-스티걸법과 같은 규제를 만들어냈고, 교육·건강·신용대출·사업기회에 대한 접근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이끌어냈다. 이런 운동은 경쟁을 지지함으로써 자본주의의 역동성을 유지할 뿐 아니라 권위주의의 위험을 방지했다.

수퍼스타 기업들이 권위 있는 대학교 졸업자들에게 최고의 일자리로 받아들여지고, 중소기업들은 지배적 기업들이 만든 장애물 때문에 성장이 어려워지고, 소도시와 대도시 교외 커뮤니티가 경제활동에서 소외됨에 따라 포퓰리즘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 정치인들은 서둘러 대응하겠지만 그들의 제안이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끈다는 보장은 없다.

미국 소도시 유권자들이 절망에 굴복하고 시장경제에 대해 희망을 잃는다면, 그들은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쪽으로 흔들릴 것이다.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는 시장과 정부 사이의 섬세한 균형을 깨뜨린다. 번영과 민주주의 모두에 종말을 예고하는 것이다.

올바른 대답은 혁명이 아니라 재균형이다. 반독점 규제처럼 ‘위로부터의 개혁’이 필요한 것이다. 경제적으로 황폐화된 커뮤니티가 기회를 창출하고 시장경제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도록 하려면 아래로부터의 개혁도 필요하다. 포퓰리스트 지도자들의 급진적인 제안이 호응을 얻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들의 비판에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것이 활기찬 시장과 민주주의를 보존하는 데 필수적이다.


Tip

상품의 설계, 부품과 원재료의 조달, 생산, 유통, 판매의 과정이 비용 면에서 우위가 있는 국가에서 이뤄짐으로써, 단계별로 부가가치가 창출되는 교역 방식. 애플의 아이폰을 예로 들면, 설계와 디자인은 미국 본사에서 하고 부품 조달과 생산은 중국 폭스콘이 맡고 있다. 세계 경제의 분업화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셔먼법은 1890년에 제정된 미국 최초의 트러스트(독점적 기업결합) 금지법으로 오늘날 미국 반독점법의 기초가 됐다. 국내외 거래를 제한할 수 있는 생산주체 간 어떤 형태의 연합도 불법이며, 미국에서 이뤄지는 거래 또는 통상에 대한 어떤 독점도 허용할 수 없다는 등의 두 가지 핵심조항을 담고 있다. 이후 미국 반독점법은 1914년 클레이턴법, 1936년 로빈슨 패트먼법 등을 통해 수정 보완됐다.

핵심 내용은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업무를 엄격하게 분리하는 것이다. 1929년 발생한 주가폭락과 그에 이은 대공황의 원인 중 하나가 상업은행이 고객의 자산을 이용해 일삼은 무분별한 투기 행위였다는 판단에서 ‘은행개혁’과 ‘투기규제’를 목적으로 법이 제정됐다. 상업은행은 여‧수신 업무만 하고, 투자은행은 증권 업무만 하도록 업무를 분리했다. 금융자유화 흐름에 따라 1999년 폐지됐다.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 이후 볼커 룰이 제정되면서 다시 금융기관의 위험투자를 제한하고, 대형화를 억제하기 위한 규제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