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훈 한국 외국어대 졸업, 한화 갤러리아 상품총괄본부 기획팀
장지훈
한국 외국어대 졸업, 한화 갤러리아 상품총괄본부 기획팀

메모리 반도체에 집중돼 있는 수출 구조를 개선하고 신(新)성장동력을 찾자는 정부의 메시지에 반도체 업계는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에 대한 수십조원대의 투자계획으로 화답했다. 이에 따라 그 어떤 때보다 비메모리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들이 매스컴에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반도체 시장에 대한 오해를 낳는, 반드시 집고 넘어가야 하는 잘못된 주장들이 있다.

비메모리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되는 논리 전개 방식 중 가장 전형적인 것이 메모리 반도체와 비메모리 반도체를 비교하고, 비메모리의 상대적인 장점을 부각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면 올해 메모리 반도체의 예상 매출액을 합하면 약 130조원 정도가 되고, 비메모리는 그것을 훌쩍 뛰어넘는 400조원 정도가 되기 때문에 앞으로 비메모리에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또 메모리는 소품종 대량생산 품목이고, 시장 변동성에 민감한 데 반해 비메모리는 다품종 소량생산을 특징으로 하기 때문에 마치 불안하고 변동성이 높은 메모리 반도체보다는 안정적인 비메모리로 체질 개선을 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이 그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논지를 가진 글들이 확대 재생산되며 최근 비메모리 강화 기조를 보도하는 주류 논리로 자리하게 되면서, 마치 이제는 메모리의 시대가 끝나고 그 자리를 비메모리가 채워야 할 것만 같은 인식을 대중에게 주고 있다는 점이다. 위의 논리들은 모두 언뜻 보기에는 그럴듯하지만, 모두 반도체 시장에 대한 왜곡된 견해를 낳는 잘못된 이야기들이다.

우선 어떠한 분류에 대한 성격을 규정하기 위해서는 명백한 공통분모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비메모리라는 단어는 구성 성분들 간의 공통 특성에 의해 규정지어진 개념이 아니라 메모리가 아닌 것, 단지 여집합의 개념일 뿐이다. 비메모리를 마치 특정한 성격을 공유하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고 그것의 특징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비메모리가 중요하다는 결론을 미리 만들어 놓고, 거꾸로 논리를 만들어가는 과정 중에 발생한 일반화의 오류다.

또 메모리는 소품종 대량생산을 해 경기흐름에 민감하고 불안한 시장이고, 비메모리는 다품종 소량생산을 하는 경기 흐름에 민감하지 않은 안정적인 시장이기 때문에 비메모리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을 살펴보자.

이 역시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데이터에 대한 자의적이고 왜곡된 해석에 불과하다. 메모리는 소품종이고 비메모리는 다품종인 것처럼 보이는 것은 반도체 시장 안을 이루는 수많은 개별 품목들 중 전자는 디램(DRAM), 낸드플래시 등과 같이 메모리와 관련된 단지 몇 개의 품목만이 속해 있는 카테고리이고, 후자는 그 외의 나머지 것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메모리를 대량생산, 비메모리를 소량 생산으로 규정하는 것 역시 단지 상대적으로 높은 메모리 반도체의 판매량 데이터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 원인과 결과를 혼동한 인과관계의 오류다.

이 같은 이야기들이 문제가 되는 것은 단순히 그것이 가진 논리 전개에서의 문제점 때문이 아니라 메모리 반도체의 중요성을 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비메모리를 강화해야 할 이유는 ‘메모리 시장보다 높을 것으로 평가되는 잠재성’이 아니라 ‘그 시장에서 남들이 아닌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에서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관점에서 메모리 시장은 향후 비메모리 시장에 투자돼야 할 엄청난 규모의 투자금을 마련할 캐시카우(수익창출원)이자, 반도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분야 간 시너지 창출을 위한 핵심적이고 필수적인 시장으로 반드시 수성해야 하는 영역이다.

따라서 비메모리에 대한 투자보다 앞서서 해야 할 일은, 메모리 시장이 다시 회복세에 접어들게 될 때까지 개별 중소기업까지 이어지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서플라이체인(공급사슬) 전반을 점검하고, 작은 규모의 기업들이 이 시기를 버텨낼 수 있도록 그들의 기업활동과 관련해 정부가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다.


문미옥(왼쪽 두번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1차관이 5월 10일 대구경북과학기술원에서 반도체 소자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문미옥(왼쪽 두번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1차관이 5월 10일 대구경북과학기술원에서 반도체 소자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추상적인 목표 지양해야

그다음으로 할 일은 ’비메모리’라는 뭉뚱그려진 단어에 묶인 고정된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정부 지원정책을 비롯한 비메모리 분야의 미래를 위한 계획들은 비메모리라는 추상적인 목표를 향해 얼마를 지원해줄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보다 하나하나의 개별 사업들을 구분하고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분야를 추려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단순히 더 많은 분야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을 넘어 재료, 장비로 이어지는 반도체 최후방 산업을 육성해 구조적인 포트폴리오를 강화하는 것이 안정적인 반도체 사업구조를 완성하는 가장 근원적인 방향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투자금의 규모가 한정돼있다는 점도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한다. 가능성이 엿보이는 모든 기업들을 세계의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때까지 끝없이 지원해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앞으로 비메모리 육성을 위해 정부가 지원하게 될 금액은 결코 적지 않다. 그러나 파운드리(반도체 제조를 전담하는 생산 전문 기업)나 이미지센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등 현재 시점에서 가장 유력해 보이는 단 몇 개의 분야들만 추려도 실제 시장에서 외국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유의미한 경쟁력을 확보할 만큼 의미있는 규모로 분배해내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문제다.

반도체 시장의 여러 기업들과 정부 간의 의견을 수렴하는 작업들이 이어지고 있는 지금, 정부의 역할이 그 어느때보다 중요하다. 한정된 소중한 돈이 어느 곳에 집중 투자돼야 할지에 대한 명확한 계획이 필요한 때다. 그리고 이제 미래를 거는 심정으로 다시 한 번 옥석을 가리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투자는 그다음이다. 비메모리라는 단어로 뭉뚱그려진 숲 전체로 성급하게 흩뿌려지는 이슬보다 가능성이 높은 곳에 정확하게 떨어지는 한 방울의 비가 싹을 틔우는 데는 더욱 효과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