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 양승용
일러스트 : 양승용

지난해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수입 과일은 바나나였다. 판매액 1619억원으로 전년 대비 24% 증가했다. 이어 오렌지(659억원), 체리(477억원), 망고(119억원) 등 다양한 수입 과일의 소비가 최고 30%까지 늘었다. 특히 주목되는 과일은 아보카도(avocado)다. 판매액은 66억원으로 아직 많지 않지만 성장률이 전년 대비 162%에 달했다. 전 세계적인 아보카도 열풍이 국내에서도 일고 있는 것이다.

과거엔 아보카도가 비싸기만 하고 맛은 별로 없는 과일로 취급됐다. 요즘엔 아보카도를 이용한 다양한 먹거리 사진이 인스타그램을 장악했다고 할 정도다. 아보카도 요리를 내놓는 맛집을 순례하며 인스타그램에 인증샷을 올리는 게 유행이다. 초록과 노랑이 어우러진 산뜻한 색감에다 무미건조한 듯, 느끼한 듯하면서도 묘하게 중독성이 있는 맛에 더해 건강에 좋다는 소문 등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과일계의 힙스터(hipster)’라는 말도 나온다.

아보카도는 ‘숲의 버터’로 통할 정도로 과육이 부드럽고 지방을 많이 함유하고 있다. 지방 함량이 18.7%로 매우 높지만 대부분 혈관에 좋은 불포화 지방이다. 비타민과 미네랄도 풍부해 건강 과일로 손꼽힌다. 다만 지방 성분이 많은 탓에 100g당 열량이 187㎉로 수박(24㎉)·딸기(35㎉) 등 다른 과일보다 훨씬 높다. 바나나(80㎉)의 두 배 이상이다. 그래서 다이어트 중인 사람은 하루 1개 이상 먹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아보카도의 원산지는 멕시코 중부 지역이다. 콕스카틀란의 동굴 주거 유적지에서 최고 1만 년 전 아보카도 씨가 발견되기도 했다. 아보카도 재배는 7000년 전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아즈텍인들은 아보카도를 아후아카틀(ahauacatl)이라고 불렀다. 고환이라는 뜻으로 생김새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16세기 초 스페인 정복자들이 그 발음을 흉내 내 아구아카테(aguacate)라고 불렀고, 이는 다시 영어로 아보카도가 됐다.

멕시코에서 아보카도는 ‘녹색 황금(green gold)’으로 불리기도 한다. 다른 작물에 비해 수익성이 훨씬 좋기 때문이다. 세계 아보카도 생산량의 약 3분의 1이 멕시코산이다. 아보카도가 멕시코 농민들에게 ‘노다지’가 된 것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덕분이다. 원래 미국은 해충 피해 방지와 함께 캘리포니아의 아보카도 농사를 보호하기 위해 1914년부터 멕시코산 아보카도 수입을 금지했다. 그런데 1994년 NAFTA가 발효되면서 수입 규제가 풀렸다.

2000년대 들어 미국에서 아보카도 수요가 매년 급증하며 수입도 늘어났다. 1994년에 미국인 1인당 0.5㎏ 정도였던 아보카도 소비량은 작년에 3.5㎏으로 7배나 늘었다. 이에 따라 2017년에는 아보카도가 처음으로 바나나를 제치고 최대 수입 과일이 됐다. 아직은 1인당 소비량이 적지만 중국도 2010년 1.9t이었던 수입량이 2017년엔 2만5000t으로 1만 배 이상 급증하는 등 세계적으로 아보카도 수요가 가파른 증가세를 나타내고 있다.

아보카도가 세계 과일 무역을 대표하는 상품으로 떠오르면서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멕시코에선 ‘아보카도 마피아’로 불리는 폭력 조직들이 유혈 분쟁을 벌이고 있다. 농민들을 납치, 살해하는 등 중남미 아편 전쟁을 방불케 하는 폭력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농장주들이 폭력 조직에 대항하기 위해 총기로 무장한 자경단을 조직할 정도다.

환경 파괴의 피해도 크다. 미초아칸주에서 아보카도 재배로 인해 매년 사라지는 숲이 여의도 면적의 20배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멕시코 전체 원시림의 절반이 이미 파괴됐다는 주장도 있다. 칠레에서도 아보카도 재배 영향으로 강줄기가 말라가고 있고, 지하수 고갈 등의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유행을 좇는 인간의 변덕과 욕심으로 인해 최고의 건강 과일이 지구 생태계의 건강을 위협하는 역설이 벌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