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조한 홍익대 기계시스템디자인 공학과, SK브로드밴드 미디어 전략 담당,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플랫폼 전쟁’ 저자
김조한
홍익대 기계시스템디자인 공학과, SK브로드밴드 미디어 전략 담당,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플랫폼 전쟁’ 저자

넷플릭스와 전쟁을 준비하는 미국의 미디어 공룡 디즈니가 디즈니 플러스라는 동영상 서비스를 11월 12일(현지시각) 공개할 예정이다. 디즈니 플러스는 디즈니가 가진 픽사, 마블, 루카스필름, 디즈니의 영화, 드라마 콘텐츠를 기반으로 이번에 인수하게 된 21세기 폭스의 콘텐츠인 내셔널 지오그래픽, 그리고 폭스 방송의 장수 프로그램인 ‘심슨’ 시리즈를 추가할 계획이다.

특히 우리가 알고 있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새로운 콘텐츠인 ‘팰컨’과 ‘윈터 솔저’ ‘완다 비전’ ‘로키’ ‘호크아이’ ‘What if’ 시리즈를 디즈니 플러스 앱에서만 공개한다고 발표했다. 마블을 좋아하는 미국 시청자들은 디즈니 플러스를 꼭 시청할 이유가 생겼다. 극장만 가서는 콘텐츠를 따라가기 힘든 세상을 설계한 것이다.

현지 언론인 인포메이션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수년간 디즈니에서 전체 콘텐츠 판매를 담당했던 임원인 재니스 마리넬리가 최근 이 회사를 떠났다. 재니스는 2013년에 넷플릭스와 디즈니의 콘텐츠 딜을 담당했던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2013년 넷플릭스와 디즈니는 2016부터 2018년까지 디즈니가 극장에서 공개한 콘텐츠를 넷플릭스가 독점으로 북미에서 스트리밍 서비스할 수 있도록 계약했었다. 이 기간이 디즈니의 황금기였고 2017년에는 북미에서만 영화 사상 처음으로 30억달러(약 3조6000억원)를 벌어들인 해였던 만큼, 디즈니는 넷플릭스와 계약이 뼈아프게 다가왔다고 볼 수 있다. 2013년의 계약 때문에 헐값으로 넷플릭스에 콘텐츠를 공급함으로써 수조원을 벌 수 있었는데 수천억원 버는 것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2018년 말 디즈니는 더 이상 넷플릭스와 거래하지 않겠다고 발표했고, 자체 서비스(Direct To Consumer·다른 플랫폼을 거치지 않고 자신들이 직접 플랫폼을 만들어 공급하는 서비스)를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직접 플랫폼 서비스를 해서 돈을 벌겠다는 선언을 한 것이다. 이 서비스를 준비하는 동안 디즈니는 21세기 폭스를 인수했고, 그러면서 미국 내에서 현재 넷플릭스, 아마존 다음으로 무섭게 성장 중인 훌루(미국의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스트리밍 기업)의 지분 30%(디즈니는 이미 30%를 가지고 있었다)를 추가 인수했다. 또 인도에서 점유율 70%인 핫스타(Hotstar)라는 플랫폼도 폭스로부터 가져오게 됐다. 디즈니의 폭스 인수가 단순히 ‘아바타’와 ‘엑스맨’ ‘판타스틱 포’의 권리만 가져오는 것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심지어 디즈니의 훌루 지분 인수 후 지분 10%를 가지고 있던 워너 미디어는 훌루 지분을 디즈니에 매각했고 나머지 30%를 갖고 있던 컴캐스트(미국 NBC의 모회사이자 미국 최대 케이블 회사)도 디즈니에 나머지 지분을 매각했다. 3000만 명이 넘는 미국 대표 스트리밍 기업인 훌루를 디즈니가 100% 컨트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난 4월 디즈니는 디즈니 플러스의 구체적인 계획을 밝혔다. 구독 가격은 월 6.99달러로 넷플릭스의 기본요금(HD)인 12.99달러의 절반 수준으로 정해졌다. 넷플릭스보다 가격이 낮게 책정됐고 미국인이 사랑하는 디즈니 영화 그리고 그들의 IP(지식재산권)를 기반으로 한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어 공급할 계획이라고 하니 미국의 여러 메이저 언론에서 넷플릭스의 미래는 올겨울까지만이라는 기사를 낼 정도였다.

그런데 8월 7일(현지시각) 디즈니는 또 다른 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은 디즈니가 넷플릭스 그 이상을 꿈꾸고 있다는 속내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바로 자신들이 북미에서 서비스하고 있는 ESPN 플러스, 훌루, 디즈니 플러스를 그들이 디즈니 플러스를 출시하는 11월 12일부터는 번들링 서비스로 공개하겠다고 한 것이다.

ESPN 플러스(월 4.99달러·스포츠 콘텐츠)+훌루(월 5.99달러·방송 콘텐츠)+디즈니 플러스(월 6.99달러·프리미엄 콘텐츠)를 합쳐 월 17.99달러가 아닌 월 12.99달러의 가격으로 서비스하겠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훌루는 방송 콘텐츠 중심으로 현재 미국 내에서 가장 빠르게 구독자를 모으고 있다. ESPN 플러스는 넷플릭스가 가지고 있지 못한 라이브 스포츠를 서비스한다. 미국 내에서 올해만 극장 점유율 38%에 달하는 디즈니의 영화와 오리지널을 디즈니 플러스에서 볼 수 있게 된다. 가격을 30% 가까이 인하해 고객이 이 3개의 서비스를 넷플릭스 기본요금으로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발표를 하자마자 넷플릭스가 미국 시장에서 하반기에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지속된 가격 인상으로 2분기에는 최초로 미국에서 가입자가 빠지는(13만 명 감소) 일까지 벌어졌다.


글로벌 미디어콘텐츠 그룹들이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OTT)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사활을 건 전쟁을 하고 있다. 디즈니는 11월부터 스포츠 생중계, 영화, TV 방송 프로그램을 월 12.99달러에 모두 볼 수 있는 서비스인 ‘디즈니 플러스’를 출시한다. 넷플릭스는 보유하고 있는 콘텐츠 판권(IP)을 활용해 게임, OST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워너 미디어 소속 HBO도 내년 초 자체 스트리밍 서비스인 HBO맥스를 출시한다. 애플도 자체 앱인 애플TV 플러스의 스트리밍 서비스를 올가을에 출시할 계획이다.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는 지난 5일 발간한 커버 표지에서 이런 상황을 군용헬멧으로 표현했다. 사진 블룸버그
글로벌 미디어콘텐츠 그룹들이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OTT)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사활을 건 전쟁을 하고 있다. 디즈니는 11월부터 스포츠 생중계, 영화, TV 방송 프로그램을 월 12.99달러에 모두 볼 수 있는 서비스인 ‘디즈니 플러스’를 출시한다. 넷플릭스는 보유하고 있는 콘텐츠 판권(IP)을 활용해 게임, OST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워너 미디어 소속 HBO도 내년 초 자체 스트리밍 서비스인 HBO맥스를 출시한다. 애플도 자체 앱인 애플TV 플러스의 스트리밍 서비스를 올가을에 출시할 계획이다.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는 지난 5일 발간한 커버 표지에서 이런 상황을 군용헬멧으로 표현했다. 사진 블룸버그

디즈니, 11월 초저가 번들서비스 출시

넷플릭스는 악재가 계속되고 있다. 최근 워너 미디어, NBC 유니버설, 디즈니가 자신들이 직접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넷플릭스에 제공하던 자사의 인기 TV 시리즈를 빼겠다고 했다. 또 넷플릭스의 강력한 우군이었던 CW 채널(미국의 방송사)조차도 넷플릭스와 콘텐츠 계약 연장을 하지 않겠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제 넷플릭스는 자신들의 오리지널 콘텐츠만으로 대결해야 하는 상황이 되고 있다.

디즈니의 번들 전략은 단순히 넷플릭스만을 타깃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스포츠, 방송, 프리미엄 콘텐츠 플랫폼을 한데 묶은 것은 유료 방송 플랫폼과 경쟁하겠다는 야심이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훌루의 경우 대부분의 미국 방송을 볼 수 있고, 그들이 만든 오리지널 콘텐츠도 볼 수 있다. ESPN 플러스는 주요 라이브 스포츠 경기를 볼 수 있다. 디즈니 플러스는 그들이 만든 영화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볼 수 있게 해 준다. 현재 유료방송 플랫폼들이 가지고 있는 주요 핵심 콘텐츠를 모두 가지고 있다. 셋톱박스나 약정 없이 디즈니가 새로운 유료방송 플랫폼 모델을 만든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넷플릭스를 타깃으로 하는 것처럼 보였던 디즈니의 ‘11월 전쟁’은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유료방송까지도 점령하겠다는 야심을 보이면서, 11월에 디즈니 플러스와 새로운 번들 프로그램이 시장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