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창 서울대 산업공학과, 미 프린스턴대금융공학 박사, SSCI 학술지 Quantitative Finance 편집장, 육아정책연구소 자문위원
김우창
서울대 산업공학과, 미 프린스턴대금융공학 박사, SSCI 학술지 Quantitative Finance 편집장, 육아정책연구소 자문위원

지난해 합계 출산율이 0.98명으로 떨어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들어 5월까지 태어난 아기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6% 줄었다. 이 추세가 계속된다면 올해 합계 출산율은 0.9명까지 내려갈 것으로 예상된다.

한 사회가 성장이 끝난 시점에 출산율이 떨어지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로마 제국의 사례를 보자. 영토 확장을 위한 전쟁과 내전을 거듭하던 공화정 시대는 유아생존율이 낮았고 전쟁으로 죽은 사람도 많았지만 출산율은 높았다. 하지만 모든 혼란이 끝나고 로마가 초강대국이 된 후에 출산율이 급감한다. ‘팍스 로마나(Pax Romana)’ 시대를 연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 통치기에는 저출산이 너무 심각해 독신세(결혼하지 않는 사람에게 부과하는 세금)를 신설했다.

성장이 끝난 사회의 출산율이 떨어지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경제적으로 풍요로우면 혼자 사는 것이 불편하지 않다. 이는 혼인의 감소와 출산율 저하로 직결된다.

더 이상 성장할 여력이 없다고 판단하는 것도 출산율 저하의 중요한 이유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자신보다는 자식 세대가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란다. 경제 성장기에는 자식 세대가 부모 세대보다 더 잘살 가능성이 월등히 높다. 이때는 애를 많이 낳아도 무방하다. 내 아이는 나중에 나보다는 잘살 것이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고속 성장 시기 많은 국가에서 베이비붐이 일어난 이유다.

하지만 성장이 점차 둔화하고 자식이 부모보다 더 잘사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 시점이 오면 애를 많이 낳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게 된다. 1980년대생은 대한민국 건국 이래 처음으로 부모보다 덜 부유한 세대다. 이들이 출산 적령기에 들어선 시점과 출산율이 급감하기 시작한 시점이 일치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렇듯 과거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이 겪었고, 현재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고속성장 종료 이후 저출산은 새삼스럽지 않은 일이다. 다만 비슷한 상황을 겪었던 다른 선진국의 사례와 비교해 보아도 우리의 저출산은 그 정도가 너무 심하다. 유례없는 저출산을 경험한 일본도 2005년 합계 출산율이 1.26명으로 최저점으로 찍고 꾸준히 상승해 이제는 1.44명 수준까지 회복했다. 하지만 우리는 합계 출산율 1명조차도 감지덕지해야 하는 상황이다.


7월 4일 서울 서초구 aT센터에서 열린 ‘서울 베이비 키즈 페어’에서 참관객들이 전시를 둘러보고 있다. 지난해 합계 출산율은 0.98명까지 떨어졌다. 합계 출산율이 1명 이하로 내려간 것은 처음이다. 사진 연합뉴스
7월 4일 서울 서초구 aT센터에서 열린 ‘서울 베이비 키즈 페어’에서 참관객들이 전시를 둘러보고 있다. 지난해 합계 출산율은 0.98명까지 떨어졌다. 합계 출산율이 1명 이하로 내려간 것은 처음이다. 사진 연합뉴스

문제는 우리의 심각한 저출산이 다른 나라처럼 지나가는 홍역 같은 것으로 자연스레 해소될 것인지, 아니면 본질적으로 다른 근본 원인이 있어 이를 해소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 일인지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저출산의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있는 연구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한 세대(30년)가 넘는 오랜 시간의 관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는 근 시일 내에 우리 사회 저출산의 근본 원인을 밝혀내는 것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함을 의미한다.

저출산에 대한 뾰족한 대책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저출산의 늪에 빠진 근본적인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원인을 모르니 처방이 나올 수 없다.

정부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100조원에 가까운 예산을 썼다. 올해 예산도 12조원가량이나 된다. 신생아 30만 명 모두에게 근로자 평균 연봉보다 많은 4000만원씩을 지급할 수 있는 돈이다. 하지만 애를 키우는 부모들은 여전히 힘들다. 통장에 돈이 들어오긴 하지만 그것이 육아의 고단함을 달래주는 것도, 피부에 와닿는 것도 아니다. 필요한 시점에 필요한 도움을 받는 것이 여전히 어렵기 때문이다.

육아 서비스 제공자는 어린이집, 유치원, 돌보미 등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 수혜자도 가족의 특성별로 수요의 형태가 다르며, 아동별로도 낮 시간대의 정기적인 수요와 그 외 시간대의 비정기적 수요, 그리고 긴급한 상황의 수요 등으로 다양하다. 이러한 수요와 공급을 적절히 매칭하는 것은 전형적인 공급망 관리의 영역이다. 다만 육아 서비스는 수요가 발생한 즉시 서비스가 제공돼야 해서 재고가 존재할 수 없는 극단적인 공급망이라는 특징이 있다. 현재는 부모가 직접 이 역할을 해야 하며, 특히 긴급한 상황에서 서비스 제공자를 찾는 것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육아 복지 서비스 전달체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복지 서비스 전달체계는 복지 서비스의 공급자와 수혜자를 잇는 모든 인적, 물적, 행정적 네트워크와 그 체계를 의미한다. 지난 칼럼에서 다뤘던 삼성전자의 ‘공급망 관리(SCM·Supply Chain Management)’와 비슷한 개념이다. 복지의 원래 취지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복지 서비스 전달체계에 극도로 고도화된 공급망 관리의 다양한 방법을 도입한다면 복지 서비스의 효율성이 지금보다 훨씬 높아지지 않을까.

예를 들어보자. 지역 공동체, 즉 대형 아파트 단지나 마을에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활용해 서비스 제공자와 수요자의 정보를 담을 수 있는 스마트 플랫폼을 구축한다.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육아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을 시의적절하게 공급자와 연결해 주는 시스템도 만든다.

이렇게 하면 지역 공동체의 육아 복지 서비스 수요와 공급을 최대한 매칭하고 수요보다 공급이 모자라거나 남는 부분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수요와 공급을 정확하게 알면 이를 이용해 다른 아파트 단지나 이웃 마을과 서비스를 교환할 수 있게 된다. 육아 복지 서비스 공급이 남으면 다른 아파트 단지나 이웃 마을에 이를 제공하고 공급이 부족하면 다른 아파트 단지나 이웃 마을에서 서비스를 공급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주고받는 것이 육아 복지 서비스라는 것을 제외하면 기업들의 일상적인 SCM과 같다.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의 SCM 강국인 것을 감안한다면 현실에 도입하는 것이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니다. 정부가 정책 목표인 ‘피부에 와닿는 육아 복지 서비스’를 달성하고자 한다면 육아 복지 서비스가 실제 수혜자에게 낮은 비용으로, 필요한 시점에, 필요한 형태로 전달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SCM을 활용해 촘촘하고 꼼꼼한 육아 복지 서비스 전달체계를 만드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