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설명 지난 5월 결렬된 미·중 고위급 무역협상이 10월 초 재개될 예정이다. 양국은 협상 결렬 이후 서로 추가 관세 부과로 맞섰다. 미·중 무역전쟁의 장기화로 인해 세계 경제가 악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많이 나왔다. 배로 교수는 트럼프의 무역 정책에 대한 입장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기 때문에 10월 초 재개될 협상에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배로 교수는 중국의 불공정한 무역 관행을 바꿔야 하지만 관세를 부과하거나 특정 미국 수출품을 수입하라고 하기보다는 중국이 전면적으로 관세를 인하하거나 무역 장벽을 완화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장 논리에 맞는 무역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로버트 배로(Robert J. Barro)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 미국경제연구소(NBER) 연구위원, 세계은행 자문역
로버트 배로(Robert J. Barro)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 미국경제연구소(NBER) 연구위원, 세계은행 자문역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① 2018년 3월 “무역전쟁은 좋은 것이고 쉽게 이길 수 있다”고 말했을 때, 많은 사람은 악의 없는 수사적인 발언이라고 묵살했지만 무역전쟁은 현실이 됐다.

각국이 국제 무역에 참여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 소비재, 중간재, 자본재를 수입하고 또 수출하기 위해서다. 미국도 상품을 만들어 수출함으로써 필요하거나 원하는 상품을 얻는다. 국제 무역은 또한 전체 경제적 파이의 규모를 확대한다.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에 따르면, 각국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데 초점을 맞춰 상대적으로 더 생산적인 분야에서 상품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수출은 좋고 수입은 나쁘다’는 ② 중상주의 모델을 받아들임으로써 비교우위론과 같은 흠 잡을 데 없는 경제논리를 뒤집었다. 중상주의 모델에서 무역 흑자는 금화의 축적으로 이어져 국가의 부에 기여한다. 트럼프가 “중국은 자국 상품을 수출해 미국 국채를 얻음으로써 미국 경제로부터 매년 5000억달러를 빼내고 있다”고 불평할 때의 생각이 바로 이런 것과 연관돼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역을 통해 양질의 상품을 저렴한 비용으로 사들이는 게 어떻게 손해가 된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트럼프는 수입이 국내총생산(GDP)에 마이너스라고 주장하는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정책국장의 이론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추가 관세 부과로 수입을 줄이면 국내 생산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수입품에 대한 수요가 국내 제품으로 옮겨진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상대국의 확실한 보복 관세로 전반적으로 국제 무역이 위축되고 이는 미국 GDP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중국이 외국 기업들에 중국 파트너 기업으로 기술을 이전할 것을 강요하는 등 자유 무역 질서를 훼손하는 불공정 무역 관행을 보이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중국 기업의 노골적인 기술 탈취도 중요한 문제다. 이러한 관행이 줄어들면 세계에, 그리고 거의 확실히 중국에도 더 좋은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목표가 중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을 바로잡는 것이라면, 중국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것은 잘못된 방법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월 9일 백악관에서 기자들에게 중국과의 협상은 9월 중 계획돼 있다고 말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9월 차관급 회담을 시작했다. 사진 블룸버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월 9일 백악관에서 기자들에게 중국과의 협상은 9월 중 계획돼 있다고 말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9월 차관급 회담을 시작했다. 사진 블룸버그

③ 확실히 몇 달 전 중국이 보복 관세를 피하기 위한 협상의 일환으로 중대한 개혁을 기꺼이 채택할 것 같았던 순간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도 제안된 협상 내용에는 바람직하지 않은 점이 있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이 더 많은 양을 수입할 수 있는 특정 미국 수출품 목록을 원했다. 물론 중국인들은 정부 통제 경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것을 기뻐했다. 그러나 미국의 접근법은 달라야 한다. 미국은 중국이 미국의 농산물, 포드 픽업트럭 또는 보잉 비행기 등을 추가 수입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그렇게 구체적인 수출 품목을 정하는 게 꼭 경제에 바람직한지는 알 수 없다. 미국은 그보다 중국의 전면적 관세 인하와 여러 무역 장벽의 완화를 요구해야 한다. 어떤 상품의 생산과 교역이 필요한지 시장 논리에 따르자는 것이다.

어쨌든 이제 미국은 장기적으로 소비자와 기업들에 비용을 부담시킬 무역전쟁을 인내하자는 쪽으로 갈 것 같다. ④ 2017년 세금 감면과 정부의 규제 완화에도 불구하고 경제 성장세가 약화되고 있으며, 트럼프는 그 책임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비생산적인 미국 기업들에 떠넘기려고 부질없이 노력하고 있다. 진짜 문제는 트럼프의 무역 정책 접근법인데, 이는 전임 오바마 행정부보다 훨씬 더 나쁘고 미국 경제를 불황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

더 광범위한 문제는 미국 정치권이 중국의 보호주의적인 무역 관행을 억제하기 위해 뭐라도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데 의견 일치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이상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을 감수하는 편이 낫다. 중국의 보호무역주의적인 무역 관행을 바꾸는 게 이상적이지만 그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추가 관세 부과 등으로 경제를 악화시키기보다는 이상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적정선에서 타협하는 게 경제적으로 이익이 된다는 의미다.

트럼프로서는 추가 관세 부과로 ‘나쁜’ 수입을 막아내고 관세 수입도 늘릴 수 있기 때문에 관세를 진심으로 선호하는 것 같다. 그가 주장해 온 많은 다른 경제적 주장과 달리, 관세를 옹호하는 그의 태도는 정말 진지하며 그 정책에 대한 약속은 철회될 수 없다. 그러나 그 때문에 미국이 과연 어떻게 중국과 만족스러운 무역협정을 타결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더 나쁜 것은 트럼프가 관세를 여러 다른 나라들과의 협상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가 최근 대통령들 중 경제 지능(IQ)이 가장 낮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그가 알고 있는 것과 그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 사이에는 분명히 큰 차이가 있다. 미국의 무역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후자이기 때문에 미국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Tip

미·중 무역전쟁은 2018년 3월 2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 제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시작됐다. 관세로 시작된 양국의 무역전쟁은 이후 미국의 화웨이 제재조치 등 기술 문제로까지 확대됐다.

중상주의는 무역 흑자로 금·은과 같은 귀금속을 축적해 국가의 부를 증대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17~18세기 유럽 각국 정부는 무역 흑자를 위해 적극적인 개입 정책을 펼쳤다. 수출을 촉진하기 위해 보조금, 세금 감면 등 국내 산업에 대한 보호·육성 정책들을 실시했고 수입을 억제하기 위해 매우 높은 관세를 부과했으며 일부 상품은 수입을 금지하기도 했다.

지난 5월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미·중 고위급 협상은 거의 타결 단계까지 갔으나 무역 합의 법제화와 합의 강제 이행장치 마련, 화웨이 제재 완화 이슈 등 안건을 둘러싼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결렬됐고 미·중 무역전쟁은 격화됐다. 미국은 9월 1일 총 112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15%의 관세 조치에 돌입했고 중국도 미국산 수입품 5078개 품목, 750억달러 규모 상품에 대해 10%와 5% 관세를 부과했다. 이후 미국과 중국은 9월 4일 10월 초 무역협상 재개에 합의했으며 9월 19일 차관급 실무협상을 했다.

‘감세 정책’을 기치로 내건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12월 법인세율을 35%에서 21%로 인하하는 등 10년간 1조5000억달러(약 1700조원)의 감세를 골자로 하는 세제 개편 법안을 의회에서 통과시켰다. 이는 미국에서 31년 만에 가장 큰 규모의 감세 조치였는데, 미국이 2018년 3% 경제성장을 달성하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