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설명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FRB)가 기준금리 인하에 소극적이라고 비판하면서 지속적으로 큰 폭의 금리 인하를 요구해 왔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보장돼 있기 때문에 연준이 이 요구에 따를 필요는 없다. 미국 경제도 성장률이 3% 수준에 달하고 실업률은 매우 낮은 수준을 유지할 정도로 지난해까지 견실하게 성장해 왔다. 그러나 미·중 무역 전쟁이 격화하고 세계 무역이 타격을 받으면서 경제 불확실성이 커졌다. 연준이 지난해까지 금리 인상 기조를 유지하다가 올해 들어 금리 인하로 돌아선 이유다. 연준은 트럼프 대통령의 금리 인하 요구를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겠지만 무역 전쟁으로 인해 경제가 악화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금리를 인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시장에서는 연준이 기준금리를 올해 한두 번 추가 인하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필자는 이 같은 상황을 딜레마라고 표현했다.
카르멘 라인하트(Carmen M. Reinhart)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 피터슨연구소 선임연구원, 베어스턴스 수석이코노미스트
카르멘 라인하트(Carmen M. Reinhart)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 피터슨연구소 선임연구원, 베어스턴스 수석이코노미스트

1년에 한 번, 유럽중앙은행(ECB)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FRB)의 지도부는 정책 아이디어를 논의하기 위해 산으로 간다. ECB는 매년 6월 포르투갈 산맥의 기슭에 있는 신트라에서 포럼을 개최한다. 연준은 8월 말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리는 캔자스시티 연방은행의 경제 심포지엄에서 모인다. 돌이켜 보면 올해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와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발언은 세계 경제 전망과 두 은행의 최근 정책 조치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파월 의장은 잭슨홀에서 세계 경제가 직면한 도전으로, 무역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총수요가 감소할 것이라는 점을 꼽았다.

① 2018년 대부분의 연준 관계자들은 연간 3%의 높은 성장률을 지속할 수 없다고 믿었다. 경기가 과열됐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연준은 2018년에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4번 인상했다. 그러나 이후 경제 상황은 악화했다. 미국 경제분석국(BEA)은 2018년 3분기 성장률 속보치 3.4%를 이후 0.5%포인트 낮춰 2.9%로 수정했고, 노동통계국은 월간 고용 증가 추정치를 하향조정했다. 이처럼 금리 인상으로 총수요가 둔화되는 메커니즘 중에는 환율 효과가 있다. 다른 나라 중앙은행들이 기준금리를 낮출 때 연준이 금리 인상 등 긴축정책에 나서면 달러화 가치는 상승한다. 자본시장이 개방돼 있는 상황에서 시장 금리가 높아지면 투자 자금이 해외로부터 유입돼 통화 가치가 오르게 된다. 본질적으로 달러화 강세는 미국의 수출경쟁력을 떨어뜨려 통화 가치가 낮은 무역상대국에 이익이 된다. 연준의 금리 인상과 반대로 ECB는 정책금리를 마이너스 수준으로 낮추고 자산매입 프로그램을 강도 높게 시행했다. 드라기 ECB 총재는 지난해 유럽의 금융 여건이 나아졌다며 정책 효과를 높이 평가했다.

물론 연준의 금리 인상에 따른 달러화 강세에 ②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연준을 비판했다. 그러나 연준이 올해 들어 0.25%포인트씩 두 차례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등 진로를 바꾸게 된 것은 트럼프의 달러화 강세에 대한 잔소리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트럼프의 무역 정책이 투자와 성장에 대한 불확실성을 증폭시켰기 때문이다.

2019년 초까지 연준은 미·중 무역 전쟁 등으로 인한 불확실성으로 경기가 나빠질 수 있기 때문에 기준금리 인상을 지속할 필요가 없다고 봤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무역 역풍이 더 세지자, 연준 관계자들은 진로를 바꿔 통화정책을 완화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른 나라 중앙은행들도 대책을 강구했다. 연준이 긴축정책을 시행할 때, 다른 나라 중앙은행들은 달러화 대비 자국 통화 가치의 하락을 선호하기 때문에 연준을 따라 긴축정책을 시행하지 않는다. 반대로 연준이 통화 완화 정책을 시행하면 다른 나라들은 기준금리를 인하한다. 아무 정책도취하지 않으면 자국 통화 가치가 절상되기 때문에 그것을 막기 위해서다.

모두가 자국의 통화 가치 절상을 두려워하는 상황이다. 초창기 중앙은행들은 어느 곳 할 것 없이 물가 안정이라는 목표를 추구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신흥시장에서는 여전히 물가 안정이 중요하지만 선진국 경제는 다르다.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이 9월 18일 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후 기준금리를 연 2.00~2.25%에서 1.75~2.00%로 인하한다고 발표하면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이 9월 18일 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후 기준금리를 연 2.00~2.25%에서 1.75~2.00%로 인하한다고 발표하면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결과적으로 연준이 기준금리를 인하할 때 다른 주요 중앙은행들도 모두 그 뒤를 따랐다. 드라기 ECB 총재는 신트라에서 이런 방향으로 발언했고 ③ 9월 12일에 추가 통화완화 정책을 시행했다. 이를 환율에 대한 조치로 봤던 트럼프 대통령은 분노했다. 유로화 약세는 침체된 경기를 떠받치고 물가상승률을 ECB 목표치인 2% 가까이 끌어올리려는 시도다.

ECB의 대응은 달러화의 유로화 대비 가치 하락을 줄여 연준 정책의 효과를 약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파월 의장이 제로 금리에 마이너스 금리까지 도입한 다른 중앙은행들처럼 보다 빠르게 기준금리를 인하하길 원한다. 파월 의장에게 있어 문제는 미국이 경제 지표로만 보면 명백히 그런 자극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④ 실업률은 매우 낮고 임금은 여전히 상승하고 있다. 세계 무역은 침체에 빠지고 있을 수 있지만 미국 경제는 다른 나라들처럼 세계 무역에 의존적이지는 않다.

그래도 연준은 트럼프가 내년에 재선될 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통화정책을 시행할 것이다. 정부의 요구에 따라야 한다는 것과 같은 지침이 연준 규정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연준은 ⑤ 물가가 안정된 상황에서라면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통화정책을 더 완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파월 의장은 트럼프 정부의 무역 등 정책 불확실성을 상쇄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연준 관계자들은 지금부터 2020년 선거까지 의도적으로 경제가 비틀거리도록 내버려둘 생각은 없을 것이다. 경제가 별로 나쁘지 않은데 무역 등 정책 불확실성 때문에 통화정책을 완화해야 한다는 게 파월 연준 의장의 딜레마다.


Tip

미국의 전 분기 대비 경제성장률은 연율 기준 2017년 3분기 3.2%, 4분기 3.5% 등으로 3%를 넘었고, 2018년 1분기 2.5%로 주춤했으나 2분기 3.5%, 3분기 2.9%로 3% 수준을 유지했다. 그러나 2018년 4분기에는 정부 셧다운 충격 등으로 1.1% 성장에 그쳤다.

트럼프 대통령은 환율을 언급하면서 여러 차례 트위터로 연준을 비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연준이 기준금리를 4차례 인상하자 미국 경제를 해치는 비이성적 결정이라며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그는 올해 8월 30일에도 “유로화는 달러화 대비 미친 듯이 떨어지고 있다. 이는 그들에게 수출과 제조업과 관련해 이점을 주고 있다”면서 “그리고 연준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현재 달러화는 역사상 가장 강하다”고 밝혔다.

ECB는 9월 12일 통화정책회의를 열고 경기 하강에 대응하기 위해 중앙은행 예치금 금리를 현행 -0.4%에서 -0.5%로 인하한다고 발표했다. 또 11월부터 월 200억유로 수준의 순자산 매입을 재개하고 이를 통해 상환되는 자금을 재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중앙은행은 신속히 행동해 금리를 10베이시스 포인트(0.1%포인트) 인하했다”며 “그들은 매우 강한 달러화에 대해 유로화의 가치를 떨어뜨려 미국 수출에 타격을 주려 노력하고 있고, 성공하고 있다”고 트위터에 썼다.

미국 실업률은 2016년까지만 해도 5% 수준이었으나 계속 하락해 올해 들어서는 3.6~3.8%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시간당 임금 상승률도 3%대 초반이다.

미국 물가상승률은 최근 1%대 중후반으로 연준의 목표치(2%)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