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창 서울대 산업공학과, 미 프린스턴대 금융공학 박사, SSCI 학술지‘Quantitative Finance’ 편집장, 미국 헤지펀드 DPT 캐피털 공동 창업자
김우창
서울대 산업공학과, 미 프린스턴대 금융공학 박사, SSCI 학술지‘Quantitative Finance’ 편집장, 미국 헤지펀드 DPT 캐피털 공동 창업자

9월 19일, 우리은행이 판매한 134억원 규모의 독일 국채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가 60.1%의 손실을 확정하며 만기가 도래했다. 독일 국채금리연계 DLF의 국내 총판매액은 1266억원이다. 영국이나 미국 등 다른 국가의 국채금리와 연계된 전체 DLF 판매액은 8224억원이다. 가까운 시일 내에 상당한 규모의 추가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는 셈이다.

문제는 DLF 투자자 중 개인 투자자가 90%(총액 7326억원)를 차지한다는 점이다. 신문 기사나 방송 뉴스에서 외손주를 봐주고 월 100만원씩 받은 돈을 투자했다거나 평생 하루 14시간씩 남의 집 가정부를 해서 모은 돈을 모두 투자했다는 인터뷰가 나오는 것을 보면, 투자위험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많은 돈을 투자한 사람이 상당수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 금융소비자단체인 금융소비자원에 따르면 DLF 투자자의 80%는 금융 상품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은 50대 이상 주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문제의 원인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번에 논란이 된 독일 국채금리연계 DLF는 만기 시점의 독일 10년물 국채금리에 따라 수익률이 결정된다. 6개월이 만기인 이 상품은 쿠폰금리(발행 당시 약정 금리) 2%(연 환산 4%)는 어떤 경우라도 지급한다. 또 만기일의 독일 국채금리가 마이너스 0.2% 이상이면 원금 역시 보장한다. 하지만 독일 국채금리가 마이너스 0.2%에서 0.01%포인트 낮아질 때마다 원금에서 2%씩 손실이 난다. 따라서 독일 금리가 마이너스 0.7% 미만이 된다면 원금은 다 날리고 쿠폰금리 2%만 받을 수 있는 구조다. 우리은행 DLF의 경우, 만기 시점 독일 국채금리가 마이너스 0.51%였기에 원금에서 62%의 손실이 났고 여기에 쿠폰금리로 받는 2%를 빼 60% 손실이 최종 확정됐다.

사실 이번에 손실 난 DLF의 구조는 큰 손실을 볼 확률은 낮고 대신 수익을 가져갈 확률은 높다. 독일 국채금리가 마이너스까지 내려갈 확률이 낮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상치 못하게 독일 국채금리가 마이너스로 내려가면서 투자자의 손실이 발생했다.

DLF처럼 큰 손실을 볼 확률은 낮고 약정된 수익을 가져갈 확률이 높은 금융 상품은 헤지펀드 매니저와 같은 전문 투자자들이 매우 선호하는 것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예로 풋옵션(주식을 특정 가격에 팔 수 있는 권리) 매도 전략이 있다. 풋옵션 매도 전략은 풋옵션을 팔고 옵션 매도 수수료를 미리 받는 것을 말한다. 풋옵션을 팔면 약정된 수익인 수수료를 챙길 수 있지만 풋옵션의 기초자산인 주식 가격이 기준점 이하로 내려가면 풋옵션 매도자는 엄청난 손실을 볼 수 있다.


시민사회단체 금융정의연대 회원들이 9월 19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 ‘우리은행이 판매한 독일 국채금리 연계 DLF 상품의 만기가 도래해 원금 손실이 발생했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제출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시민사회단체 금융정의연대 회원들이 9월 19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 ‘우리은행이 판매한 독일 국채금리 연계 DLF 상품의 만기가 도래해 원금 손실이 발생했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제출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장기 투자자로 이름난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도 풋옵션 매도 전략으로 지속적으로 수익을 내고 있으며, 필자가 과거 공동 창업한 헤지펀드도 이 전략으로 상당한 수익을 거둔 바 있다. 금융 분야 최고 학술지에 실린 한 논문에서 헤지펀드의 수익구조는 풋옵션 매도 전략으로 설명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기도 했다. DLF가 풋옵션 매도 전략과 손익구조가 유사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DLF는 전문 투자자에게는 충분히 좋은 상품일 수 있다.

다만 이런 전략으로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갖춰져야 한다. 위험을 정확히 인식할 수 있는 전문지식과 분산투자를 위한 충분한 자본금이다. DLF는 전문지식도, 충분한 자본도 없는 일반인은 건드려서는 안 되는 상품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은행이 DLF를 일반인에게 판매했다. 조리자격증이 있는 전문가들만 다룰 수 있는 복어를 일반인에게 팔아버린 것과 다름없다.

은행은 이런 상품을 왜 일반인에게 판매했을까. 펀드 시장의 수수료 구조를 살펴보면 답을 찾을 수 있다. DLF와 같은 펀드는 자산운용사들이 개발하고 운용한다. 그 대가로 운용사들은 0.2~0.3%의 운용보수를 받는다. 하지만 운용사들은 자사 상품을 고객에게 직접 판매할 수 없다. 판매는 은행, 증권사와 같은 판매사만 가능하다. 운용사들은 은행에 판매 대행을 맡긴다. 고객이 펀드에 가입하면 은행은 판매 수수료를 받게 되는데, DLF의 경우 0.5~1% 수준이다. 은행은 판매 대행 후 수수료만 받고 그 이후의 상품 운용은 운용사에서 알아서 하는 구조인 셈이다. 많이 팔수록 은행은 수수료를 더 벌 수 있다.

DLF는 은행 입장에서 아주 매력적인 상품이다. 상품구조가 복잡하니 구체적인 내용은 어차피 고객이 이해하기 어렵다. 그저 ‘은행 금리의 두 배를 거의 확정적으로 받을 수 있으며, 손실이 날 수는 있지만 독일이 망하지 않는 한 그런 일은 없다’는 메시지만 잘 전달하면 된다.

심지어 DLF는 ‘전문 투자형 사모펀드’로 최소 투자금액이 1억원이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사모펀드에 1억원 이상을 투자하는 사람은 ‘적격투자자’로 분류된다. 1억원 미만의 ‘일반 투자자’의 경우 불완전판매 판단 기준이 적합성(투자자의 재산이나 수입이 투자 상품에 적합한지 여부), 적정성(투자자의 투자 성향이 투자 상품에 적정한지 여부), 설명 의무(금융사가 투자 위험성에 대해 사전에 설명했는지 여부)의 세 가지이지만, ‘적격투자자’는 적합성과 적정성을 적용받지 않는다. 설명 의무만 지키면 법적으로 불완전판매가 아니다. 평생 모은 1억원이 전 재산인 사람에게도, 고령으로 금융 상품에 대한 판단력과 이해력이 떨어지는 사람에게도 약관을 읽어주고 고객의 사인만 받으면 문제 될 것 없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판매 수수료 위주의 시장 관행이다. 대형 은행이 판매 수수료에만 집착한 나머지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무분별하게 금융 상품을 판매한 것이다.

그렇다면 DLF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큰 손실이 발생하는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실제 피해를 준 정도보다 훨씬 더 큰 배상을 하도록 하는 제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지만 여기에 동의하기는 어렵다. 고수익 상품은 필연적으로 고위험을 동반하는데, 손실이 많이 났다고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하면 시장에 고수익 상품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고수익 상품이 사라지면 고객이 다양한 상품을 선택할 기회가 제한될 수 있다.

결국 본질적인 해결책은 판매 수수료 위주의 시장 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고객의 이익과 운용사와 판매사의 인센티브를 합치시키는 것, 즉 고객이 부자가 되면 은행이 돈을 버는 구조를 만들 필요가 있다. 판매 수수료는 줄이거나 없애고, 상품 가입 기간에 비례해 지급되는 운용보수와 성과가 좋을 때 받는 성과보수를 은행과 운용사가 나눠 가지도록 펀드 시장을 개편해야 한다. 고객이 오랫동안 가입하고 더 많은 수익을 가져갈수록 자산운용사와 은행이 받는 수수료도 함께 늘어나도록 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이런 구조를 만들면 은행은 ‘잘 팔릴 상품’이 아닌 ‘고객에게 좋은 상품’에 대한 고민을 더 많이 하게 될 것이다. 제2의 DLF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본질적인 해결책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