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 양승용
일러스트 : 양승용

미국 최대 오프라인 서점인 ‘반스앤드노블’이 얼마 전 상장 폐지됐다. 행동주의 투자펀드로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는 엘리엇이 상장 주식을 모두 매입한 데 따른 것이다. 1993년 기업공개 이후 26년 만에 다시 비공개 기업으로 돌아갔다.

반스앤드노블은 1886년 뉴욕 유니온 빌딩에서 ‘아서힌즈앤드컴퍼니’라는 이름으로 출발했다. 하버드대 출신으로 개점 첫해 입사한 길버트 노블이 파트너로 승진하면서 ‘힌즈앤드노블’이 됐다. 이후 노블이 힌즈의 지분을 인수하고 친구 아들인 윌리엄 반스를 동업자로 끌어들이며 반스앤드노블로 이름을 바꿨다. 반스와 노블은 이미 오래전 지분을 팔고 떠났지만 회사 이름은 그대로 남았다.

미국을 대표하는 대형 서점 체인답게 반스앤드노블은 많은 기록을 갖고 있다. 1974년 서점 업계에서 처음으로 TV 광고를 했다. 이듬해에는 최초로 서적을 할인 판매했다. 뉴욕타임스 선정 베스트셀러를 40% 할인 가격에 판매했다. 매장에 카페를 입점시킨 첫 서점이기도 하다. 책을 사는 공간에서 즐기는 공간으로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반스앤드노블은 1980년대 급성장 과정에서 지방 독립 서점들을 몰락시켰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아마존의 등장으로 서적 판매 시장이 온라인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실적이 악화했다. 경쟁 업체인 보더스와 크라운북스 등은 일찌감치 무너졌다. 반스앤드노블도 지난 7년간 전국 720개 매장 가운데 90여 개의 문을 닫았다. 5년 동안 CEO가 네 번이나 교체되기도 했다. 엘리엇이 7억달러 가까운 돈을 들여 반스앤드노블을 인수했지만 회생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미국과 달리 한국에선 아직 대형 서점의 영향력이 큰 편이다. 정부가 최근 대형 서점에 대한 규제에 나설 정도다. 영세 소상공인 보호를 위해 도입한 ‘생계형 적합업종’의 첫 대상으로 서점업을 지정했다. 이에 따라 교보·영풍문고 등 국내 대형 서점들은 앞으로 5년간 신규 매장을 한 해 1곳만 열 수 있다.

동네 서점은 2007년 3247곳에서 2017년 2050곳으로 10년 만에 40% 가까이 줄었다. 대형 매장이 새로 생길 때마다 인근 4㎞ 이내 동네 서점이 3.8개 폐업하고, 매출도 월평균 310만원에서 270만원으로 감소한다는 조사 자료도 있다. 그래서 동네 서점을 보호하기 위해 대형 서점의 신규 출점을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미국 수준에 미치지 못하지만 국내 서적 시장도 온라인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대형 서점의 매장당 매출이 매년 10~20%씩 줄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전자책과 오디오북 발행이 크게 늘어나고 있고, 매달 일정액을 내고 전자책을 마음대로 골라 보는 구독경제 시장도 급성장하고 있다. 온라인 고객과 전자책 독자가 늘어나는 추세를 막을 방법은 없다. 대형 서점의 신규 출점을 제한해도 이들이 동네 서점을 찾아가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온라인 구매나 전자책 발행을 법으로 금지할 수도 없는 일이다. 결국 대형 매장 규제는 흘러간 물로 물레방아를 돌리겠다는 것과 비슷한 시대착오적인 정책이다.

대형 마트와 복합 쇼핑몰 등에 대한 규제도 마찬가지다. 전통 시장과 골목상권 보호를 내세우지만 효과가 의심스럽다.

미국에선 e커머스를 비롯한 혁신의 결과로 시어스 백화점 등 전통적인 유통 대기업들이 줄줄이 무너지고 있다. 한국 정부와 정치권은 이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고 있다. 상전벽해로 달라지고 있는 유통 산업의 현실과 소비자 편의를 무시한 채 낡은 규제에 매달리고 있다. 관료와 정치인들의 인식이 아직도 10년 전 과거에 머물러 있는 탓인가 아니면 대기업 팔 비틀기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없기 때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