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훈 유튜브채널 ‘Gadget Seoul’ 운영, 한국 외국어대 졸업, 한화 갤러리아 상품총괄본부 기획팀
장지훈
유튜브채널 ‘Gadget Seoul’ 운영, 한국 외국어대 졸업, 한화 갤러리아 상품총괄본부 기획팀

최고 모델 기준 163만원의 어마어마한 가격표를 달고 2017년 11월 아이폰 X가 출시됐을 때, 사람들은 애플의 가격 정책에 냉소를 보냈다. 중국 기업들로 인해 가격 경쟁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 오히려 고가 정책을 펼치는 애플이 시장 상황을 거스른 잘못된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어 출시된 아이폰 XS max가 최고 200만원에 육박하는 가격표를 달고 등장하며, 이 같은 행보를 비난하는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판매가의 30%에도 미치지 못하는 아이폰의 부품 원가를 근거로 애플은 대중을 기만하는 오만한 기업이고, 마진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기업이라는 식의 밈(재미있는 말이나 그림, 사진을 모은 게시물)들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유행했다. 더 낮은 가격의 아이폰을 만나고 싶은 대중의 열망을 고려하지 않은 듯한 애플의 전략에 대한 비난이었다.

기업이 자사 상품에 높은 가격을 책정했다는 이유로 ‘오만한 기업’으로 비난받는 상황이 애플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반대로 이처럼 뻔히 예상되는 논란 속에서도 고가 정책을 이어 가는 애플의 행보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아이폰이 처음 출시되고 몇 년간 아이폰의 출고가는 일정하게 유지됐다. 그러던 애플이 출고가를 올리기 시작한 시기는 아이폰 5S 출시(2013년 9월)부터인데, 81만원대를 유지하던 아이폰 출고가는 5S에서 94만원대로 훌쩍 뛰었고, 아이폰 6S 출시에 이르러서 100만원에 육박하는 수준까지 상승했다. 

이 시기의 스마트폰 시장 환경을 돌이켜보면 애플이 추진했던 고가 정책에 대해 고개가 끄덕여진다. 저가를 무기로 무서운 기세로 성장해오는 중국 스마트폰 기업들과의 직접적인 경쟁을 피하고, 프리미엄 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는 현명한 전략이었다.

이와 같은 고가 정책이 시행된 후 이어진 아이폰 7 출시(2016년 9월)부터 애플은 다시 출고가를 낮추기 시작했다. 100만원에 육박하던 출고가는 아이폰 7에서 다시 90만원 아래로 내려갔다. 애플은 이에 그치지 않고 아이폰 7 아래에 아이폰 SE라는 새로운 제품 라인업을 추가했다. 이 4인치 아이폰의 출고가는 59만원으로, 그전까지 고가 전략을 이어 가던 애플의 전략이 방향을 바꾸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 제품이다.

고가 정책이 선행된 후, 50만원대의 아이폰이 나오자 시장은 열렬한 반응을 보였다. 높은 가격 때문에 아이폰 구매를 망설였던 이들이 아이폰 SE를 통해 애플의 생태계에 유입됐고, 그렇게 아이폰만이 가진 독특한 UX(사용자 경험)를 경험한 이들 중 일부는 다시 아이폰의 충성 고객층으로 자리 잡았다.

앞서 살펴본 아이폰 초창기에서 아이폰 SE에 이르는 시기의 애플의 가격 정책은 고가 정책으로 프리미엄 이미지를 강화한 후 다시 가격을 낮춰 매출을 극대화하는 흐름을 보인다.

그리고 이런 흐름을 하나의 사이클로 규정한다면 애플의 첫 번째 가격 전략 사이클이 시행된 시기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다시 초고가 정책이 시행되고 있는 현재는 애플의 두 번째 가격 전략 사이클이 진행되는 시기다.


내년은 저가형 아이폰 출시 최적기 될 듯

이렇게 애플의 가격 전략을 첫 번째 사이클과 두 번째 사이클로 구분하고 이 두 사이클을 살펴보면 최근 애플의 초고가 정책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틀이 마련된다. 첫 번째 사이클에서 중국 기업들의 도전에 맞서 내놓은 고가 전략이 두 번째 사이클에서 되풀이되고 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그 당시의 중국 스마트폰 기업들과 현재의 중국 스마트폰 기업들의 모습인데, 당시 저가 시장에서부터 서서히 스마트폰 시장을 공략했던 그들은 이제 중저가를 넘어 하이엔드 스마트폰 시장을 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놓인 애플이 중국 기업들과의 직접적인 경쟁을 피하고 프리미엄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해서는 이전의 고가 정책 수준을 넘어서는 더욱 강력한 초고가 정책이 필요한 상황이 된 것이다.

앞으로 계속해 더 높은 가격대의 아이폰이 등장할지, 아니면 이 정도 수준에서 출고가 상한선이 유지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애플이 보여주는 초고가 정책에 대한 비난은 그리 오래가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앞서 펼쳐진 애플의 첫 번째 가격 전략 사이클의 흐름을 더듬어 보면 현재의 초고가 정책이 무르익고 소기의 성과가 달성된 후 애플이 향할 방향이 어느 쪽인지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애플의 저가형 아이폰 전략은 오늘날의 아이폰 가격이 ‘오만’했던 것만큼 효과적일 것이다. 애플이 수많은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이 전략을 고수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오만하다고 불릴 만큼 높은 가격대의 제품을 출시하다 저가 제품을 출시하면 저가 제품이 폭발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가 아이폰이 저가 아이폰 흥행의 추진력이 되는 셈이다.

올해는 아이폰 X로 시작된 애플의 두 번째 가격 전략 사이클 중에 초고가 정책이 시행되는 전반부에 해당한다. 그래서 중저가형으로 출시되는 아이폰 SE2의 출시에 특히 더 주목하게 된다.

고가 정책으로 인한 대중의 비난 속에서 얻은 아이폰의 프리미엄 이미지를 손상 없이 활용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저가 전략이 ‘작은 화면’을 가진 중저가형 아이폰을 통한 서브 브랜드 전략이기 때문이다.

아이폰 8이 내년에 단종될 가능성이 큰 것도 아이폰 SE2의 등장이 기대되는 이유다. 아이폰 8이 단종되면 아이폰 8에 사용되던 부품의 재고가 쌓인다. 그런데 아이폰 SE2가 출시되면 이런 부품을 다시 사용할 수 있고 아이폰 8이 메워주던 중저가 제품 라인업도 메울 수 있다. 이 때문에 아이폰 SE2의 출시는 시기적으로도 꽤 적절해 보인다.

아이폰 SE2의 출시가 기대되는 또 다른 이유는 중저가 제품이 더 많은 소비자를 애플의 생태계로 끌어들일 기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애플은 스스로를 스마트폰 하드웨어를 판매하는 기업이 아닌 서비스 기업임을 강조한다. 또 게임 서비스인 애플 아케이드나 애플 뉴스, 애플 TV 등을 미래 비전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런 서비스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가장 많은 소비자가 집중돼 있는 중저가 스마트폰 시장에 대한 공략이 필요하다. 그리고 바로 내년이 그들의 첫 번째 5G 스마트폰 출시 전, 중저가 스마트폰 시장 공략을 위한 저가 정책을 펼칠 마지막 기회이자, 아이폰 SE2가 등장할 최적의 시기다.

장지훈 가젯서울 미디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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