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하락) 경고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특히 유럽의 경제가 급속도로 냉각하고 있고, 유럽 경제의 모범생으로 인식돼 왔던 독일의 경기 침체가 가파른 상황이다. 그 여파로 독일 국채 금리를 기반으로 했던 파생연계펀드(DLF)가 100%에 가까운 원금 손실을 초래해 사회적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여전히 경제 낙관론을 펼치고 있지만, 한국 경제가 한동안 불황을 견뎌내야 한다는 점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불황을 견뎌내고 경기가 회복될 때 도약하는 기업들의 선택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구조조정을 통해 기초체력을 확보하는 ‘방어적 전략’을 취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혁신을 통해 도약하는 ‘공격적 전략’으로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는 것이다.

혁신의 대표적인 사례는 애플이다. 2000년 닷컴 버블(거품)이 꺼지자 애플의 주가는 주당 5달러에서 1달러 이하로, 시장 가치가 순식간에 80% 증발했다. 하지만 2006년 이후 혁신 제품 아이폰을 통해 거듭난 애플의 주가는 천정부지로 올라 최근 230달러를 돌파했다. 이는 기업이 고객에게 제공하는 근원적인 혁신 능력이 성장의 근본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불황기에는 공격적인 투자도 중요하다. 일본 산업과 경쟁하던 많은 한국 산업이 일본을 추월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일본이 장기 불황으로 투자가 움츠러들었을 때 과감하게 투자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반도체, 조선, 전자 산업이 일본을 따돌리고 세계 정상에 올랐다. 불황기에는 어떤 혁신이 가능할까. 한국에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수많은 혁신 제품을 통해 반전에 성공한 사례가 적지 않다. 1990년대 중반에 나온 김치냉장고와 전기압력밥솥이 대표적이다. 이들 제품을 출시한 기업들은 불황기를 통과하면서 크게 성장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기업은 불황이 닥쳤을 때 회사의 근본을 다시 생각하고 전략적 방향을 혁신을 통해 가다듬어야 한다. 불황의 압박에 따른 구성원들의 위기의식을 혁신의 에너지로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시급하고 강력한 압박하에서 혁신이 가능할까. 이를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1970년 미국 아폴로 13호 발사 중 폭발의 충격으로 공기 정화 시스템이 고장 났다. 수 시간 내에 해결하지 못하면 우주선 내 일산화탄소 농도 증가로 우주인 3명의 목숨이 사라질 판이었다. 막중한 시간의 압박 속에서 NASA의 모든 엔지니어는 우주선 안에 활용 가능한 재료들로 대안을 찾았다. 그리고 우주인들의 목숨을 구했다. 이는 과중한 압박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 낸 경우다.

불황기에는 새로운 혁신 역량을 확보하기보다는 지금까지 축적한 핵심 능력을 활용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불황기에는 새로운 혁신 역량을 확보하기보다는 지금까지 축적한 핵심 능력을 활용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런 경우는 매우 드물다. 기업 혁신은 오랜 기간에 걸친 투자와 노력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보통 혁신은 원천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R&D)과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제품을 개발하는 제품 혁신 활동으로 나눠 볼 수 있다.

불황기에는 짧은 기간에 혁신 성과를 볼 수 있어야 하며 이에 적합한 혁신은 원천기술 R&D보다는 제품 혁신 활동이다. 새로운 혁신 역량을 확보하기보다는 지금까지 축적한 핵심 능력을 활용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치냉장고의 예를 돌아보자. 만도는 이미 차량용 에어컨 사업으로 축적된 기술의 다른 응용 사례를 만들어 성공을 거뒀다. 불황일수록 짧은 기간에 성과를 보이는 것은 조직의 사기를 올린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이다. 불황일 때 기업이 제품 혁신에 더욱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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