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 양승용
일러스트 : 양승용

스웨덴의 릭스방크(Riksbank)는 세계 최초의 중앙은행이다. 1668년에 설립돼 역사가 350년이 넘었다. 하지만 릭스방크가 실제 중앙은행 역할을 한 것은 1897년부터다. 그래서 영국 중앙은행으로 ‘올드 레이디(Old Lady)’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영란은행이 설립 연도는 26년 늦지만 실질적인 세계 최초의 중앙은행으로 불리기도 한다.

릭스방크는 오랫동안 정부와 의회의 직접 통제를 받았다. 스웨덴의 ‘남대문 출장소’였다. 그러다 1950년대 중반부터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그중 하나가 국채 이자 수입을 정부에 돌려주지 않고 자체적으로 활용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은행 설립 300주년 기념사업이라는 명분으로 노벨 경제학상 제정을 추진했다.

노벨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스웨덴 한림원 과학자들을 설득하는 게 힘들었지만 노벨재단 이사회에서는 쉽게 통과됐다. 당시 이사회 멤버가 전원 기업인들이어서 경제학상 제정에 호의적이었다. 여기다 상금을 릭스방크가 부담한다는 제안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마지막 관문은 노벨 가문의 부정적 반응이었다. 가문의 대표는 마지못해 경제학상 제정에 동의했지만 ‘노벨상(Nobel Prize)’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데는 강력히 반대했다. 경제학상의 정식 명칭이 ‘알프레드 노벨을 기념하는 경제 과학 분야의 스웨덴 중앙은행상(The Sveriges Riksbank Prize in Economic Sciences in Memory of Alfred Nobel)’으로 결정된 배경이다.

노벨가 대표는 요즘도 “스웨덴 중앙은행이 노벨이라는 상표를 도용했다. 주식시장과 옵션 투기를 조장한 시카고학파 경제학자들이 상을 휩쓸고 있다. 이는 인류의 복지에 공헌한 사람들에게 상을 수여한다는 알프레드 노벨의 유지에 어긋난다”고 비판하고 있다.

다른 노벨상과 마찬가지로 노벨 경제학상도 수상자 편중 논란이 있다. ‘남자, 미국인, 시카고대, 유대인’ 위주라는 비판을 자주 받는다. 비공식 집계지만 시카고대 졸업자나 교수가 30명, 유대인이 29명에 이른다는 자료도 있다. 다른 노벨상보다 편중 현상이 심한 편이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에서는 몇 가지 기록이 나왔다. 모두 에스테르 뒤플로(46) MIT 교수와 관련이 있다. 뒤플로는 남편 아브히지트 바네르지 교수와 함께 경제학상에서는 처음으로 부부 공동수상의 기록을 세웠다. 과학상 분야에서는 퀴리 부부를 비롯해 그동안 네 차례 부부 공동수상이 있었다. 뒤플로는 또 2009년 엘리너 오스트롬에 이어 두 번째 여성 수상자가 됐고, 최연소 수상의 영예도 안았다. 이전 최연소 수상 기록은 1972년 케네스 애로(당시 51세) 교수였다.

뒤플로 부부와 마이클 크레이머 하버드대 교수 등 공동수상자 세 명이 모두 빈곤 문제에 대한 연구 성과를 인정받은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역시 빈곤에 대한 연구로 상을 받은 아마르티아 센(1998년), 앵거스 디턴(2015년)과 함께 경제학상의 지평이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과거 노벨 경제학상에 대해 주류·우파 경제학자들이 독식한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게임이론, 행동경제학, 노동경제학 등으로 분야가 다양화하는 추세다. 다만 마르크스 경제학은 아직까지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뒤플로 부부는 수상자로 선정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국은 빈곤 퇴치의 좋은 사례”라며 “기술과 교육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다”고 했다. 한국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 립서비스였지만 해외의 많은 경제학자가 한국 경제의 성취를 높게 평가하고 있기에 나온 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