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태와 정치를 이야기하는 자리마다 관리자나 경영자가 고개를 흔들면서 궁금해하는 것이 여론조사 결과의 세대 간 극명한 차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집권층 또는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가장 견고한 층은 40대다. 이는 다른 나라에서 보기 힘든 결과로, 경영자가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부분이다.

‘25세 이하에서 진보주의자가 아니면 심장이 없는 것이고, 35세가 넘어서 보수주의자가 아니면 뇌가 없는 것’이라는 격언이 있다. 이 말은 영국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 등 수많은 유명인이 했던 말이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 중년인 40대는 20대보다 진보적인 관점을 유지하고 있을까. 우리가 당연하게 가정하는 나이와 보수주의의 관계에 대한 사회과학적 실증 연구는 우리의 상식이 옳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나이보다는 어떤 세대가 공통으로 공유한 경험에서 형성된 인식이 더 정치적 가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40대는 어떤 경험을 한 세대인가. 20여 년 전 대한민국은 경제개발 이후 가장 충격적인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겪었다. 즉 지금의 40대는 그들이 막 사회 진출을 시작하는 20대에 국가의 경제 위기를 통해 가정이 파괴되고, 당연시됐던 취업 기회가 박탈당하는 경험을 했다. 그들은 공동체의 결함이 개인과 가정을 어렵게 할 수 있다는 트라우마를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한다. 단순화하면 이전 세대가 한강의 기적을 통해 가난한 나라에서 부국을 만든 성취의 자부심으로 무장된 세대라면, 40대는 외환위기의 트라우마가 지배하는 세대다.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통해 유사한 경험을 했다. 이 트라우마를 겪은 세대는 창업가 정신보다 사회 안전망을 갈구한다. 그래서 그들은 사회복지와 큰 정부를 지지하고, 시장 또는 기존 질서를 불신한다.

우리 사회가 댓글이나 사회 관계망을 통해 강한 공격성을 띠고 작은 계기에도 분노를 불처럼 쏟아내는 휘발성 강한 사회가 돼가고 있는 이유는 이러한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 상처받은 세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캠벨과 매닝은 ‘희생양 문화의 부상’이라는 책에서 이 분노의 세대가 바꿔 가는 세태를 분석하고 있다. 과거에 개인 간에 해결할 작은 갈등도 이 세대는 곧바로 사회 관계망을 통해 자신에게 작은 해를 가한 자를 지목하고,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해 동조자를 규합한다. 모여든 ‘을’이 세를 모아 가해자로 지목된 ‘갑’을 공격하는 시대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트라우마 세대는 분노를 정치화하면서 희생양을 자처하며 대중적 동원을 통한 복수를 주저하지 않는 시대를 만들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도 최고경영자가 스마트 기기로 무장한 분노한 세대에 의해 응징되는 많은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재벌 일가의 일탈적 행위가 사회적 이슈가 돼 국민연금을 통해 경영권을 박탈당하고, 영업사원이 대리점 사장에게 했던 거친 말이 폭로돼 경영진이 사죄하고 교체되고 기업이 위험에 처하는 경우 등이다. 정치인의 ‘갑질’이 사회적으로 곧바로 응징되는 것도 같은 현상으로 유추할 수 있다.

경영자는 우리 사회 중년 세대의 남다른 경험과 그들의 트라우마가 정치 권력화할 수 있는 스마트 기술의 시대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업 외적인 위험을 피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위험이 존재한다고 해서 경영자나 관리자가 부하 직원에게 입을 닫아 버리고 사무적으로 지시만 한다면 조직이 좋은 성과를 낼 수 없다. 정치적·사회적 가치관은 세대별 경험에서 형성되는 것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격변하는 세계, 한국의 경제적 위기가 남긴 정신적 트라우마는 그렇게 쉽게 휘발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왜 이 시대에 경영자의 품위 있고 열린 소통 기술이 더 절실한지 이해될 것이다.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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