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설명 미국과 중국은 최근 상대국에 부과 중인 고율 관세를 철회하는 내용의 합의에 대해 엇갈린 주장을 하고 있다. 11월 7일 가오펑(高峰)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양측이 단계적으로 고율 관세를 취소하는 데 동의했다”고 했다. 그런데 다음 날인 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 측이 원하지만, 자신은 관세 철회에 합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가오펑 대변인의 발표에 뉴욕증시가 급등하자 트위터에 ‘새로운 기록을 즐기라’는 내용의 게시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백악관 내부 강경파의 반대로 트럼프가 말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한다. 1단계 무역전쟁 합의안을 마련하기 위해 진행 중인 양국의 협상에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칼럼 필자는 미국 리세션(recession·경기 침체)을 촉발하는 요인 중 하나로 무역전쟁 관련 불확실성을 이야기한다.
라구람 라잔(Raghuram G. Rajan)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 교수, 인도중앙은행 총재,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이코노미스트
라구람 라잔(Raghuram G. Rajan)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 교수, 인도중앙은행 총재,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이코노미스트

무엇이 미국의 리세션(recession·경기 침체)을 촉발할까. 과거엔 일정 기간 경기가 확장한 후 노동 시장이 타이트(tight·구직보다 구인이 많은 것)해지는 현상을 리세션의 조기 경고음으로 받아들였다. 일할 사람을 찾기 어려워지고, 임금이 상승하기 시작하며, 기업 순이익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기업이 제품·서비스 가격을 인상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우려한 중앙은행은 금리를 올린다. 금리 인상은 기업 투자 위축, 노동자 해고로 이어진다.

이 시점에서 총수요는 감소한다. 소비자가 고용 불안으로 지출을 줄이기 때문이다. 기업 재고는 쌓이고, 생산은 더 가파르게 급감한다. 성장 속도는 눈에 띄게 둔화하며 경기 침체의 신호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 사이클이 지나면, 다시 회복이 시작된다. 기업이 재고를 조정하고 나면 다시 재화를 생산하기 시작한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낮아지면, 중앙은행은 수요를 촉진하기 위해 다시 금리를 인하할 것이다.

그런데 이는 과거에나 적용되던 시나리오가 됐다. 지속해서 낮은 인플레이션은 더는 금리 인상과 이에 따른 경기 둔화를 촉발하는 요인이 아니다. 최근 리세션의 사례를 살펴보면, 대부분은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경제 성장 기간에 축적된 금융 과잉에서 촉발됐다. 2001년 닷컴붐으로 주식시장이 과도하게 상승한 것, 2007~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금융 섹터에서 레버리지(차입해서 투자 이익을 극대화)가 과도하게 일어난 것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이 리세션이 일어나기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금리를 인상한 것은 목표치를 웃도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대응이라기보다는 통화 정책을 정상화하기 위한 시도에 가까웠다.

최근 인플레이션은 여전히 연준의 목표치를 밑돌고 있으며, 선제 대응은 (다양한 이유로)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① 지난해 연준이 금리 인상에 나섰을 때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중국과 무역전쟁을 선포했다. 2018년 말 주식시장이 폭락하기 시작하자 연준은 뒷짐만 졌다. 무역전쟁을 해결하기 위한 포괄적 협상과 트럼프에 대한 공식적인 탄핵 심문이 진행 중인 현재, 연준이 당장 통화 긴축에 나서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트럼프는 리세션이 닥치면 연준을 탓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연준으로서는 인플레이션율이 다소 높을 때의 평판 위험이 금리 인상 후 나타나는 여러 둔화에 따른 위험보다 적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그래서 연준이 금리를 당분간 인상할 가능성은 작다. 대신 연준은 올해 금리를 ② 세 차례 인하하며 경기 침체에 대비한 ‘보험’을 들어뒀다. 게다가 연준은 인플레이션 목표치가 ‘대칭적’이라고 주장해왔다. 최근 수년간 인플레이션이 목표치를 밑돌았던 것을 고려하면, 인플레이션이 목표를 웃도는 현상을 일정 기간 기꺼이 용인하겠다는 뜻이다.

금리 인상이 경기 침체를 유발하지 않는다면 금융 과잉은 어떨까. 주변을 보면 사모펀드처럼 자산 가격이 높고 레버리지도 높은 분야가 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성장이 크게 둔화할 경우 기업 재정난이 심각해질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그러나 금리가 지금처럼 낮고 시장에 자금이 풍부한 상황에서 문제가 현실화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물론 어느 시점에는 성장이 둔화하거나 금리가 상승해 자금이 마를 것이다. 그럴 때마다 금융 자산 가격은 큰 폭으로 하락할 것이고, 기업도 부채 상환을 연장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게다가 자금 조달을 쉽게 할 수 있는 환경이 오래 지속할수록 초과분은 더 많아질 것이고, 이것이 침체를 촉진할 위험도 커질 것이다. 그러나 통화 정책이 여전히 조절적이기 때문에, 현재로선 금융 과잉이 당장 경제 불황의 원인이 되기보다 궁극적으로 경기를 침체시키고 회복 속도를 늦출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월 12일 뉴욕 이코노미클럽에서 미·중 무역전쟁과 미국 경제에 대해 연설하고 있다. 그는 “(중국이) 우리 조건에 불응한다면 관세를 더 올리겠다”고 말했다. 사진 AFP 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월 12일 뉴욕 이코노미클럽에서 미·중 무역전쟁과 미국 경제에 대해 연설하고 있다. 그는 “(중국이) 우리 조건에 불응한다면 관세를 더 올리겠다”고 말했다. 사진 AFP 연합

무역전쟁·지정학적 위험이 가장 큰 문제

그렇다면 문제는 무엇이 현재 성장을 지탱하고 있는 소비를 방해할 것인가이다. 한 가지 대답은 해고다. 그리고 무엇이 해고를 촉발하는가. 무역전쟁의 추가적 확대다. 예컨대 미국이 유럽과 일본 자동차에 관세를 부과할 경우다. 현 상태로는 트럼프 행정부가 남은 임기 내에 포괄적인 미·중 무역 협정을 체결할 것 같지 않다. 중국과 미국인 사이에는 거의 신뢰가 없으며, 중국이 미국이 원하는 ‘방해적 감시’에 동의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협상이 2020년 트럼프 재선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큰 만큼, 협상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다. 중국인은 트럼프와 계속 거래하고 싶을까, 아니면 민주당을 선호할까. 어느 쪽이든 무역 관련 불확실성은 가까운 미래에 대한 투자와 그에 따른 성장을 지속적으로 저해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

두 번째는 지정학적 위험이다. 지난 9월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 시설이 드론 공격을 받아 타격을 입었다. 이를 통해 사우디의 석유 생산 과정에 명백한 취약점이 있다는 것이 드러났고, 이는 불확실성으로 작용하고 있다. 점점 궁지에 몰리고 있는 이란이 만약 붕괴되면,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UAE)를 물고 늘어질 것이라는 분명한 경고를 보내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가 2015년 이란과 핵 협상을 파기한 사건 이후 강화된 이란 강경파의 힘이 이번 드론 공격을 계기로 대담해진 것이다. 사우디는 이후 이란과 협상할 의사가 있음을 시사했음에도 지역 분쟁 위험은 여전히 커지고 있다.

유가 급등은 세계 경제를 리세션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 가처분소득이 감소하고 소비 심리가 약화해 투자도 위축될 것이다. 그리고 인플레이션과 이에 따른 각종 상황은 중앙은행이 통화 정책을 쓸 여지를 거의 남겨두지 않을 것이다.

경제에 단기적으로 가장 심각한 위협은 금리 인상이나 재정 과잉이 아니라 무역이나 지정학 같은 영역에서의 예측 불가능한 행동이다. 만약 이 세상에 스트롱맨이 되고자 하는 리더가 적다면, 세계 경제는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해질 것이다. 불행히도 오늘날 권위주의 지도자 대부분은 유권자의 투표로 그 자리에 설 수 있었다. 그러나 그건 지금 할 이야긴 아닌 것 같다.


Tip

연준은 지난해 3월 21일 기준금리를 인상했는데, 비슷한 시기 미국 정부는 600억달러(약 64조원)에 달하는 중국산 수입 품목에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의 대미 투자도 제한하겠다고 발표했다.

연준은 10월 30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낮췄다. 연준은 올해 하반기에만 세 차례(7·9· 10월) 금리 인하를 단행, 상반기 2.25~2.50%였던 금리를 1.50~1.75%로 내렸다. 연준은 성명에서 “경제 활동이 완만한 속도로 상승했으며, 실업률이 낮은 수준을 유지하는 등 고용 시장 여건이 강세를 보였다”고 했지만 “기업 투자와 수출은 약세를 보였고, 물가 상승률이 목표를 밑돌았다. 세계 경제 성장에 대한 영향 등도 고려해 기준금리를 인하하기로 했다”고 했다. 글로벌 경기 둔화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금리를 낮추는 ‘보험성 인하(insurance cut)’임을 강조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