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조한홍익대 기계시스템디자인 공학과, SK브로드밴드 미디어 전략 담당,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플랫폼 전쟁’ 저자
김조한
홍익대 기계시스템디자인 공학과, SK브로드밴드 미디어 전략 담당,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플랫폼 전쟁’ 저자

‘멜론 뮤직 어워드(MMA) 2019’가 11월 30일 고척 스카이돔에서 성공리에 막을 내렸다. 멜론이 주최하는 이 행사는 올해로 10년째를 맞았다. 이번 행사는 ‘풀 오브 서프라이즈(Full of surprises)’라는 부제로 열렸다. ‘올해의 베스트송’ ‘베스트 레코드’ ‘베스트 아티스트’ ‘베스트 앨범’ 등 네 가지 상을 휩쓴 방탄소년단(BTS)을 비롯한 11개 팀이 출연했다.

총 4시간 동안 진행된 MMA에서 BTS 공연만 약 40분간 진행됐는데 마치 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이들의 퍼포먼스에 전 세계 팬들이 열광했다.

대한민국의 영화, 드라마가 해외에서 한류 바람을 일으키고 있지만 시상식 자체가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K팝의 위상을 보니 MMA가 머지않아 MTV어워드, 그래미 어워드 같은 미국 중심의 유명 시상식과 어깨를 나란히 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공연 수준은 K팝 아티스트들 덕분에 쌍벽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 세계 팬이 BTS의 공연 무대를 지켜봤고 지금도 그 공연은 유튜브에서 계속 재생되고 있다. BTS의 공연 영상은 방탄 채널에서만 640만 뷰를 넘어섰다.

실시간 방송의 경우 미리 선정된 20만 명의 시청자들은 멀티 카메라를 이용해 스스로 보고 싶은 가수의 카메라를 지정해서 볼 수 있었다.

메인 화면, 특정 멤버 클로즈업, 공연장 내 출연자 대기석 등 총 11개 화면 중에서 선택할 수 있었다. 공연 현장에 가지 않고 집에서 스마트폰으로 현장의 구석구석을, 원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공연장에 온 2만 명보다 훨씬 더 많은 TV, 유튜브 시청자 수십만 명에게 차별화된 시청 경험을 제공하는 것, 이것이 바로 앞으로 계속 이어질 트렌드다.


AR 기술이 적용된 ITZY의 무대. 사진 멜론 MMA 2019 영상 캡처
AR 기술이 적용된 ITZY의 무대. 사진 멜론 MMA 2019 영상 캡처

공연 AR 기술, TV 시청 경험을 바꿔 놓다

이런 차별화된 시청 경험은 멀티캠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우리는 지난해 11월 LOL(리그 오브 레전드) 2018 월드 챔피언십에서 K/DA라는 롤 게임 캐릭터들이 K팝 뮤지션, 해외 뮤지션과 함께 놀라운 공연을 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유튜브 시청자들은 마치 게임 캐릭터가 살아있는 것처럼 퍼포먼스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카메라에 공간 인식 센서를 달아, 마치 그 공간에 있는 것처럼 캐릭터를 만들어 내 방송에 출연한 출연자들과 거부감 없이 영상에 녹일 수 있는 AR(argument reality·증강 현실) 기술이 활용됐다. 최근 SK텔레콤에서 휴대전화를 비추면 거대한 고양이가 나오는 AR 동물원도 바로 그 기술이 적용된 사례다.

LOL처럼 실시간 방송에서 AR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런 AR 기술을 방송에 접목하는 이유가 뭘까.

매일 마주하는 모바일, 콘솔, PC 게임에서 비현실적인 경험을 하고 있는 디지털 세대는 특수 효과가 접목된 환상적인 세계관을 영상 콘텐츠에서 구현해주길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기존 실시간 방송에서는 그것을 찾기 어렵다. 이 때문에 방송을 계속 보고 있을 만한 이유가 줄어든다.

이런 점을 알고 있는 라이엇게임즈는 2017년 실제 경기장에 AR을 접목시켰고 2019년에는 홀로그램을 이용한 AR 기술을 방송에서 선보였다. 홀로그램을 현실에서 볼 수 있게 만드는 영국 회사 칼레이다와 함께 만들어낸 작품이다.

라이엇게임즈는 지난해 K/DA라는 K팝 밴드를 만들어 ‘팝 스타’라는 곡을 선보였는데, 이번에는 트루 대미지(True Damage)라는 프로젝트 그룹을 만들었다. 역시 이번에도 한국 아티스트가 포함됐다. 아이돌 그룹 ‘(여자)아이들’의 소연이 주인공으로 참여해 ‘자이언트’라는 곡을 불렀다. 3주 전에 나온 자이언트 뮤직비디오는 조회 수만 이미 3400만 회가 넘었다. LOL 게임을 즐기는 사람, 즐기지 않는 사람도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엔터테인먼트를 마다할 리 없다. 라이엇게임즈는 아예 내부 뮤직 레이블 스튜디오를 만들었다.


AR 기술이 적용된 BTS의 무대. 사진 멜론 MMA 2019 영상 캡처
AR 기술이 적용된 BTS의 무대. 사진 멜론 MMA 2019 영상 캡처

AR 기술 접목한 콘서트 현장

MMA 2019도 AR 기술을 선보였다. 아이돌 그룹 ITZY(잇지), TXT(투모로우 바이 투게더), 청하, BTS의 공연에 적용됐다. 특히 BTS의 소우주, TXT의 고래, 청하의 달빛에 비치는 용은 그야말로 백미(白眉)였다.

AR 기술은 대부분 게임 엔진(언리얼, 유니티)을 이용해 제작됐고 그래서 LOL과 같은 게임 회사와 더 잘 맞았다. 또 기존에는 한 개 무대에만 적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MMA 2019에서는 4개의 공연에 AR이 적용된 것이 특징이다.

지금까지 이런 AR 기술은 대부분 미국 업체인 제로덴서티(Zero Density)와 비즈알티(Vizrt)라는 회사의 독무대였다. MMA 2019의 AR 기술은 엔진(eNgine) 비주얼 웨이브(Visual Wave)라는 한국 기업이 담당했다. 이 회사는 VFX(Visual F/x·특수효과) 전문 기술을 바탕으로 영화, 드라마 제작에만 참여했었다.

영화, 드라마는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다는 것이 쉽지 않다. 지금까지 북미 지역을 포함해 전 세계 히트를 한 영화는 ‘기생충’이나 ‘부산행’ 정도에 그친다. 드라마도 아시아권을 넘어선 콘텐츠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K팝은 말 그대로 글로벌이다. 내세울 기술력이 있다면, K팝에 올라타는 것이 한 방법이다.

콘서트는 더는 현장에서만 즐기는 콘텐츠가 아니다. 우리는 네이버 브이 라이브 같은 유료 플랫폼에서도 돈을 내고 콘텐츠를 보기 시작했다. 치솟는 인기에 티켓을 구하기 어려워진 데다 전 세계를 누비며 투어 콘서트를 하는 K팝 뮤지션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런 시점에 VFX 회사들이 K팝 아티스트와 손을 잡는 것은 자연스러운 변화다. 앞으로 이런 콘서트에서 AR, 홀로그램이 접목된 무대를 자주 볼 수 있을 것 같다. 미디어 기술 회사들이여, K팝이라는 키워드에 올라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