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설명 12월 11일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올해의 인물로 16세의 스웨덴 소녀 그레타 툰베리를 선정했다. 역대 올해의 인물 중 최연소다. 툰베리는 지난해 8월부터 환경 운동을 시작했다. 매주 금요일 학교에 가는 대신 스톡홀름 스웨덴 의회 앞에서 기후변화 대응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그가 뿌린 환경 운동 씨앗은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지난 9월 열린 기후변화 시위에 400만명이 집결했는데, 여기엔 툰베리의 힘이 컸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런 움직임은 기업 활동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기업이 속한 사회, 환경과 관련한 모든 이해관계자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을 만든 클라우스 슈바프 회장은 이번 칼럼에서 기업의 목적이 주주 이익 극대화에서 주주·종업원·사회 등 이해관계자 모두의 이익을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클라우스 슈바프(Klaus Schwab) 세계경제포럼(WEF·일명 다보스포럼) 설립자·회장, 스위스연방공과대,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클라우스 슈바프(Klaus Schwab)
세계경제포럼(WEF·일명 다보스포럼) 설립자·회장, 스위스연방공과대,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우리가 원하는 것은 어떤 자본주의인가. 이것은 우리 시대의 결정적 질문일 수 있다. 미래 세대를 위해 지금의 경제 체제를 유지하려면, 여기에 정확히 답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모델은 세 가지다. 첫 번째는 대부분의 서구 기업이 채택하는 ① ‘주주 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다. 이 모델의 우선순위는 기업 이익의 극대화다. 두 번째 모델은 ‘국가 자본주의(state capitalism)’다. 이것은 정부가 경제 방향을 정하는 방식으로 중국뿐만 아니라 여러 신흥 시장에서 두각을 보인 모델이다.

이 두 가지 옵션과 비교했을 때 세 번째는 가장 추천할 만하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다. 내가 50년 전 처음 제안했던 모델이다. 민간 기업을 이 사회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신탁 통치자로 보는 개념이다. 이는 오늘날 사회적, 환경적 도전에 대한 최고의 대응책이다.

지금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모델인 주주 자본주의는 1970년대 미국에서 입지를 굳힌 후 수십 년 동안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했다. 이 현상은 분명히 긍정적이었다. 주주 자본주의 전성기 동안 이익을 추구하는 많은 기업이 새 시장을 열고 새 일자리를 창출했다. 세계 수억 명의 사람이 번영을 누렸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밀턴 프리드먼, 시카고학파를 비롯해 주주 자본주의 옹호론자들은 상장 기업이 단순한 이윤 추구 집단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유기체라는 사실을 간과했다. 단기적인 성과를 올리려는 금융·산업계의 압력과 이윤에만 집중하는 상황은 주주 자본주의와 실물 경제 사이를 갈라놨다. 이제 많은 사람은 이런 식의 자본주의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제 이런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일까. 이유 중 하나는 ‘그레타 툰베리’ 효과다. 이 스웨덴의 젊은 환경 운동가는 지금의 경제 체제를 고수하는 것은 환경적으로 지속 불가능하기 때문에 미래 세대에 대한 배신이라는 것을 상기시켜줬다. 또 다른 (혹은 연결된) 이유는 밀레니얼(1981~96년생)과 Z세대(1995~2005년생)다. 이들은 주주 가치 극대화만을 추구하는 기업을 위해 일하지도, 투자하지도, 이들의 제품·서비스를 사려 하지도 않는다. 마지막 이유는 이제 기업 경영진과 투자자들도 장기적인 성공이 고객·직원·공급자 성공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가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방향 전환은 이미 오래전에 이뤄졌다. 나는 1971년 처음 이 개념을 설명했고, 기업과 정치 지도자가 이를 실행하는 것을 돕기 위해 세계경제포럼(WEF)을 만들었다. 2년 뒤 포럼 참석자들이 ‘다보스 선언’에 서명했는데, 이 문서에는 이해관계자에 대한 기업의 주요 책임이 쓰여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이해관계자’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단체인 ②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BRT)은 올해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채택을 공식 선언했다. 투자 업계에도 임팩트 투자 바람이 불고 있다. 투자를 통해 수익을 내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나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기업에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매년 1월 스위스의 휴양도시 다보스에서는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가 열린다. 올해 1월 20일 제49회 WEF가 열린 다보스에서 찍은 사진. 사진 블룸버그
매년 1월 스위스의 휴양도시 다보스에서는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가 열린다. 올해 1월 20일 제49회 WEF가 열린 다보스에서 찍은 사진. 사진 블룸버그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가 새로운 지배 모델이 되는 이 상황에서 기회를 포착해야 한다. WEF는 새로운 다보스 선언문을 발표하고자 한다. 기업은 공정한 몫의 세금을 내야 하고, 부패에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고, 글로벌 공급망 속에서 노동자 인권을 중시하고, 특히 플랫폼 경제에 공평한 경쟁의 장을 제공하는 것이다.

물론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원칙을 지키기 위한 새로운 지표도 필요하다. 우선 ‘공유 가치 창출’을 위한 새로운 척도에는 ③ 환경·사회·지배구조(ESG·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가 포함돼야 한다. 표준 재무 지표를 보완하는 역할이다. 다행히 빅4(딜로이트·PwC·E&Y·KPMG) 회계법인의 지원과 브라이언 모이니헌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최고경영자(CEO)의 진두지휘하에 이 지표가 개발되고 있다.

조정이 필요한 두 번째 지표는 임원 보수다. 1970년대 이후 임원 급여는 주주 이익 극대화를 하는 결정과 비례해 급등했다. 그러나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패러다임에서 새 급여 체계는 장기 공유 가치 창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마지막으로 기업의 인식 개선이다. 기업은 자신이 미래에 중요한 이해관계자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물론 기업은 핵심 역량을 활용하고 기업가적 사고방식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동시에 기업은 다른 이해관계자와 협력해 이 세계를 개선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기업의 궁극적인 목적이 돼야 한다.

국가 자본주의 옹호론자는 아마 자신들도 장기적 비전을 추구하고 있다고 항변할 것이다. 이들은 특히 아시아에서 최근 성공을 거뒀다고도 할 것이다. 국가 자본주의가 한 단계 발전을 일으킨 것이 사실이기도 하겠지만, 이 모델은 내부로부터의 부패에 굴복하지 않도록 장기적으로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모델로 진화해야 할 것이다.

기업 앞에 이제 엄청난 기회가 있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통해 기업은 법적 의무를 넘어 사회에 대한 의무도 다할 수 있다. 또 세계가 공동 목표 달성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할 수도 있다. 파리기후변화협약과 유엔 지속가능개발 어젠다가 대표적이다. 당신이 진심으로 세계에 발자취를 남기고 싶다면,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


Tip

미국의 자유주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주장에서 시작해 지난 50년간 영미식 기업 경영의 철칙으로 여겨져온 가치. 프리드먼은 1970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익을 얻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회원 188명으로 이뤄진 미국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CEO) 모임이다. BRT는 지난 8월 “고객 가치 제공, 종업원 투자, 협력업체와 공정하고 윤리적인 거래, 지역 사회 지원, 장기적인 주주 가치 창출 모두가 기업의 필수 목적”이라는 내용의 선언문을 발표했다. 1997년 이후 22년간 ‘기업은 주주에게 봉사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밝혀온 BRT가 종업원 등 다른 이해관계자를 주주와 동일선상에 놓은 것이다. 이날 성명에는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CEO를 비롯,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회장, 팀 쿡 애플 CEO 등 181명이 서명했다.

책임투자는 자본시장에서 투자를 결정할 때 환경(environment), 사회(society), 지배구조(governance)를 고려하는 것을 말한다. 비도덕적이고 환경을 파괴하는 기업 등에는 투자하지 않게 된다. 자본시장이 기업의 변화와 노력을 끌어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선진 자본시장에서는 SRI(사회책임투자) 펀드가 보편화돼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