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돈 500만원의 자본금으로 시작해서 한때 재계 2위 기업집단 제국을 건설했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12월 9일 풍운의 삶을 마감했다. 향년 83세. 그는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1989)’라는 명저로 청년들의 가슴을 뛰게 하며 한국의 글로벌화, 세계화의 비전을 설파하는 국민 계몽 스승의 위치에 오르기도 했다.

대우그룹은 해체됐고, 김 전 회장은 그룹 회장이 아닌 개인으로 삶을 마감했지만, 그가 만든 기업은 대우조선해양, 대우인터내셔널(현 포스코인터내셔널)처럼 지금도 존속하면서 국가 경제에 기여하고 있다. 따라서 대우가 망했다는 인식은 올바른 것이 아니다. 기업은 얼마든지 실력 없는 경영진이 퇴출당하고 주주는 바뀐다.

고인의 영면을 보면서 한 영웅적 인간의 삶과 극적인 부침의 드라마에 흥미를 느끼겠지만, 대우그룹이 망하게 된 원인인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와 유사한 경기 침체 불안감이 커지는 최근 시점에서 김 전 회장의 경영 성공과 실패의 교훈을 생각해 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는 정도 경영의 중요성이다. 대우그룹이 위기에 빠진 근본적인 원인은 수익성 없는 과도한 부채 경영이다. 장기간에 걸친 과도한 부채 경영은 분식회계 없이는 불가능하다. 금융회사나 자금 시장이 부실한 기업에 계속 신용을 공급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필자는 외환위기가 발생하기 12년 전에 당시 미국의 제너럴모터스(GM)와 합작 경영을 하고 있던 대우자동차의 GM 측 임원을 만난 적 있다. 당시 대우그룹은 자동차에서는 GM, 굴착기 등 중기계에서는 미국의 카터 필러와 50 대 50 합작으로 사업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우는 생산인력 대비 사무실 간접 인력 비율이 GM이나 카터 필터의 두세 배가 넘는 비생산적인 인력 구조였다.

이는 분식회계를 위해 이중장부를 만들어야 하므로 회장의 지시로 회계 전산화를 하지 못하게 한 탓이었다는 게 GM 측 임원의 얘기였다.

그는 이어 불투명한 회계 때문에 GM이 합작 투자를 해제하고 철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만큼 대우의 회계 부정은 뿌리 깊었고, 거짓 위에 쌓아 올린 사상누각이었다. 이 모래성이 외환위기 후 고금리에 맥없이 무너진 것이다.


출장길에 오른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사진 연합뉴스
출장길에 오른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사진 연합뉴스

두 번째는 핵심 역량의 중요성이다. 세계 시장을 석권하려면 글로벌 경쟁력, 즉 핵심 역량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대우는 세계 경영을 외칠 때에도 국내에서마저 1, 2등 상품이 없었다. 대우의 핵심 역량 없는 문어발 경영의 예로, 국내 주부들이 외면했던 전자 사업은 변변한 대리점 유치도 쉽지 않았다. 피아노 사업은 삼익, 영창과 같은 전문기업에 밀려 한 자릿수의 시장 점유율도 달성하지 못했다.

그런 처지에 세계 경영이란 베트남, 폴란드, 우즈베키스탄과 같은 공산 독재 저개발국가 및 그 주변 국가에 집중됐다. 그리고 대우는 종종 부패한 독재 정권과 결탁했고 수익성은 무시됐다. 당연히 미국과 유럽 같은 선진 주류 시장 진출은 미미할 수밖에 없었다.

김 전 회장의 공과는 세대를 이어 재평가가 이뤄질 것이다. 국가 경제가 위기에 처했을 때 정부가 주도한 구조조정이 정말 최선이었느냐는 의문 또한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대우그룹의 해체와 김 전 회장의 실패가 주는 교훈의 핵심은 결국은 정도 경영일 것이다.

김 전 회장은 세계 시장을 개척하고, 일하는 즐거움을 일깨웠던 산업 역군들의 영웅이었다. 그의 기업집단은 해체됐지만, 그가 수출 입국을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던 거인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