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설명 12월 12일 영국 총선에서 보리스 존슨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이 압도적 승리를 거뒀다. 650석 중 보수당이 절반이 훌쩍 넘는 365석을 가져가 203석에 그친 노동당을 대파했다. 이에 따라 내년 1월 말로 예정된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는 더 순조롭게 진행될 가능성이 커졌다. 다만 영국의 수도이자 유럽 금융 허브 런던의 분위기는 정반대였다. 전체 73개 지역구 중 노동당이 49석을 차지해 보수당(21석)을 이겼다. 규제 수위가 낮아 자본이 자유롭게 들락거려야 발전하는 금융 산업 특성이 런던 민심에 반영된 것이다. 브렉시트로 국경 문턱을 높여 유럽연합(EU)과 거리가 멀어지면 그만큼 런던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금융감독 전문가 하워드 데이비스 RBS 이사회 의장은 브렉시트 이후 영국의 금융 시장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지난 10월 칼럼에서 그는 브렉시트 이후 영국은 유럽 금융 시장의 진화를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번 칼럼에서는 세계적인 금융권 규제 완화 움직임과 프랑스의 노선 변화를 설명하고 있다.
하워드 데이비스(Howard Davies)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 이사회 의장, 런던정경대학(LSE) 총장, 영국 금융감독청(FSA) 청장
하워드 데이비스(Howard Davies)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 이사회 의장, 런던정경대학(LSE) 총장, 영국 금융감독청(FSA) 청장

영국 국민이 2016년 6월 국민투표에서 근소한 표 차로 EU를 탈퇴하기로 한 지 3년 반이 흘렀다. 많은 사람은 브렉시트 이후의 영국에 대해 ‘템스강의 싱가포르(Singapore-on-Thames)’ 모델을 말한다. 이 아이디어는 특이하다.

‘템스강의 싱가포르’는 영국이 낮은 세율과 느슨한 규제로 이뤄진 경제국이 될 수 있다는 논리다. 특히 경직된 시스템과 과도한 규제로 얽힌 유로존(유로화 사용 23개국)에서 20마일(32㎞) 떨어진 곳에서 영국이 경쟁 우위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아이디어는 2년 전 필립 해먼드 당시 영국 재무장관이 처음 주창한 것으로 영국과 EU가 우호적인 ① 브렉시트 협상을 체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고안됐다.

그런데 싱가포르를 잘 아는 사람은 이 비유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릴 것이다. 싱가포르 세율이 (비싼 외제 차를 수입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낮고, 공공 지출 규모가 작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싱가포르가 ‘규제가 철폐된 낙원’이라는 생각은 현실에서 증명하기 어렵다. 실제로 싱가포르에서 껌 종이를 버리려고 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과거 ② 기 드 준키에르가 지적했듯 싱가포르가 성공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세심하게 계획된 경제 시스템’에 있다. 강력한 힘을 가졌으면서도 언제든 도우려는 자세가 돼 있는 관료들이 외국인 투자자들의 손을 꼭 잡고 이들을 애지중지한 덕분이다.

12월 12일 ③ 영국 총선은 보수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영국 제조업의 부활을 외치는 이들의 주장은 영국이 21세기 싱가포르가 아니라 ④ ‘신(新)스토크온트렌트’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여전히 영국에서는 규제 완화(특히 금융 서비스 관련)를 통해 브렉시트 이후 경쟁 우위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지고 있다.

이에 대해 발디스 돔브로브스키스 EU 재정 담당 집행위원은 브렉시트가 현실화하면 영국이 유럽 시장 접근권을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는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시장일수록 기대할 수 있는 규제 정합성이 더 긴밀해진다”고 주장한다. 돔브로브스키스는 영국이 EU를 떠나기 전에 이 부분을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만약 브렉시트가 현실화하면 영국에 기반을 둔 금융 회사들의 EU 시장 접근이 제한될 수 있다.

현재 영국 정치계에서 은행권의 규제 완화를 지지할 만한 선거구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영국 중앙은행(BOE)은 은행권의 자본 비율이 적절하다고 주장한다. 이를 반대하는 쪽은 은행권에 더 큰 부담을 지워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 총선 토론에서 금융권 규제 문제는 별로 언급되지 않았다. ⑤ 미국에서처럼 영국에서도 추는 은행권 규제 완화 쪽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영국 은행들의 핵심 티어1(자기 자본) 비율은 15% 이상이다. 유로존 평균을 웃도는 수준으로, 이 비율이 더 낮아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영국 중앙은행의 스트레스테스트 강도는 세계 어떤 은행보다 더 타이트하다. 국내총생산(GDP)이 매년 5%씩 감소하고, 실업률이 두 배로 치솟고, 부동산과 주가가 급락하는 상황을 은행이 견뎌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프랑스도 새로운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지금 금융 분야에서 영국과 EU의 규제 조율 문제를 위협하는 가장 큰 적은 프랑스다.

영국 정치권이 자국 은행권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 사이 프랑스 정치권은 정반대 행보를 보인다. 브루노 르 마이어 프랑스 재무장관은 최근 경쟁력 제고를 위해 프랑스 은행권 자본 부담을 완화하는 것에 찬성한다고 말했다. ‘바젤 3’에 대해 르 마이어 재무장관은 “단순화하고 가벼워져야 한다”면서 “미국 은행은 유럽 은행에 적용되는 것만큼 엄격한 규제를 적용받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르 마이어 프랑스 재무장관이 돔브로브스키스 EU 재정 담당 집행위원과 충돌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돔브로브스키스 집행위원은 EU가 바젤 3 최종 개혁을 충실히 추진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결국 유럽 금융 규제에 있어서만큼은 프렉시트(frexit·프랑스의 EU 탈퇴) 움직임이 브렉시트보다 더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최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를 뇌사 상태로 규정했는데 프랑스는 바젤 은행감독위원회에도 비슷한 판결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12월 12일 영국 총선에서 보리스 존슨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이 압도적 승리를 거뒀다. 사진 블룸버그
12월 12일 영국 총선에서 보리스 존슨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이 압도적 승리를 거뒀다. 사진 블룸버그

美와 싸우기보다 유럽 내 타협안 찾아야

바젤 3 협약이 미국 은행권보다 유럽 은행권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유럽 시장에서는 증권화한 모기지가 거의 팔리지 않는 반면, 미국 모기지 시장은 패니 메이와 프레디 맥이라는 국영 기업에서 시작됐을 정도다. 게다가 유럽 은행들이 대형·고등급 기업들에 더 많은 돈을 빌려주는 반면, 미국 기업들은 자본 시장에서 스스로 자금을 마련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영향으로 바젤 3 협약은 유럽 은행권에 더 강력한 규제로 작용한다.

타당한 점도 있다. 그러나 규제 기관이 바젤 협정에서 까다로웠던 부분을 조용히 조율하는 것은 어떨까. 대서양을 횡단하면서까지 정치적 분쟁을 시작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선택이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프렉시트가 브렉시트와 마찬가지로 유럽 금융 시스템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점이다.


Tip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2020년 1월 31일 영국은 EU를 탈퇴하게 된다. 동시에 영국과 EU는 양자 무역협상을 개시하고, 6월 30일 합의안이 가결되면 2021년 1월 영국의 EU 탈퇴가 공식 발효된다. 부결될 경우 노딜 브렉시트가 현실화하거나 전환 기간을 거칠 수 있다. 총리실이 준비 중인 새 탈퇴협정법안에는 전환 기간이 2020년 12월 31일까지라는 내용이 담길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파이낸셜타임스(FT) 기자 출신의 유럽국제정치경제센터(ECIPE) 시니어 펠로다.

보수당이 예상보다 큰 차로 승리한 결정적 요인은 존슨 총리를 둘러싼 온갖 악재에도 야당인 노동당이 대안 세력으로서 유권자의 외면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스토크온트렌트는 영국의 도자기 공업 중심지다. 영국 도기 생산과 거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전통적인 제조 도시다. 신스토크온트렌트는 영국의 제조업 부활과 연결된다.

트럼프 정부는 은행권 규제를 대폭 완화해주는 조치를 잇따라 승인하고 있다. 지난 10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자산 규모 7000억달러 미만 지역 은행의 자본·채무 규제를 완화해줬다. 지난해 2500억달러 미만 은행에 대한 규제를 완화했던 것에 이은 조치다. 당시 조치에 따르면, 뱅크오브아메리카(BoA), JP모건체이스 등 초대형 은행들이 매년 작성하던 정리의향서를 4년에 1번 작성하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