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설명 미국과 중국은 지난해 12월 1단계 무역 합의를 이뤘다. 1단계 무역 합의로 미국은 중국 상품에 대한 추가 관세 부과 보류와 함께 기존의 관세 일부를 완화하는 대신 중국은 미국산 농산물 수입을 대폭 늘릴 예정이다. 하지만 1단계 무역 합의 공식 서명을 앞두고 양국은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공식 서명에 앞서 2단계 협상으로 관심을 돌리면서 보조금 지원을 비롯한 중국의 구조적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겠다고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이 상대국의 핵심 이익을 존중해야 한다며 불쾌감을 드러내는 중이다. 양국은 1단계 합의를 ‘가시적인 성과’라고 추켜세우고 있지만 2·3단계 무역 협상을 놓고 벌써 대립하는 등 충돌 양상을 보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악수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악수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누리엘 루비니(Nouriel Roubini) 미국 뉴욕대학교 스턴스쿨 교수, IMF 학술자문위원회 자문위원, FRB 이코노미스트
누리엘 루비니(Nouriel Roubini)
미국 뉴욕대학교 스턴스쿨 교수, IMF 학술자문위원회 자문위원, FRB 이코노미스트

최근 금융시장은 미국과 중국이 무역전쟁의 확대를 막기 위해 1단계 합의를 했다는 소식에 고무됐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전과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 미국은 중국으로부터 미국 농산물을 더 살 것과 지식재산권에 대해 양보한다는 약속을 받아낸 대신 1600억달러(186조2400억원) 상당의 중국 수출품에 대한 관세를 보류하기로 했다.

양국이 세계 경제를 침체의 늪으로 빠트릴 수 있는 새로운 관세 부과의 유혹에서 벗어났다는 점은 투자자에게 희소식이다. 다만, 이번 1단계 합의가 무역·기술·투자·통화·지정학적 문제를 포함한 훨씬 더 큰 경쟁을 위해 미국과 중국이 일시적으로 휴전한다는 뜻이라는 건 나쁜 소식이다. 아마도 대규모 관세 부과 기조는 그대로 유지될 것이며, 한쪽이 약속을 어기면 관세 규모가 늘어날 가능성도 충분하다.

그 결과 광범위한 ① 미·중 디커플링(decoupling)은 시간이 흐를수록 도를 더할 것으로 보인다. 기술 분야에서는 이러한 디커플링이 거의 확실시된다. 미국은 중국이 인공지능(AI), 5세대 이동통신(5G), 로봇, 자동화, 생명공학, 자율주행차 등 첨단 기술 분야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시도를 자국의 경제 및 국가 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한다. 미국은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 기술 기업을 블랙리스트에 올린 데 이어 중국 기술 산업의 성장을 억제하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할 전망이다.

미국과 중국을 넘나들던 자료와 정보 흐름도 제한될 예정이어서 양국 간 ② 스플린터넷(splinternet)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또한, 미국의 조사 강화로 미국에 대한 중국의 외국인 직접 투자는 ③ 2018년에 1년 전보다 80% 정도 감소했다. 여기다 미국에선 미국 공적 기금이 중국 기업에 직접 투자하지 못하도록 하고, 중국 벤처 자금 투자를 제한하며 중국 기업이 미국에서 주식을 거래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의 입법안이 논의 중이다.

미국 정부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중국인 학자와 학생을 의심하고 있다. 이들이 미국의 기술 노하우를 훔치거나 스파이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게 이유다. 그럴수록 중국은 미국의 통제를 받는 국제 금융 시스템을 피하려고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중국은 국가 주도의 디지털 화폐를 발행하거나 서구권의 통제 아래에 있는 스위프트(SWIFT·국제 은행 간 통신 협정)를 대체할 시스템 개발에 나설 수도 있다. 이외에도 중국의 디지털 결제 플랫폼인 ‘알리페이’ ‘위챗페이’가 전 세계에서 통용되도록 하는 노력을 기울일 가능성도 있다.

최근 미국과 중국은 모든 면에서 탈세계화, 경제 및 재정 파편화, 공급 사슬의 분열을 향해 가고 있는 듯하다. 2017년 백악관 국가안보 전략과 2018년 미 국방 전략은 중국을 반드시 넘어야 할 ‘전략적 경쟁국’으로 보고 있다. 두 나라는 홍콩과 대만은 물론 동중국해와 남중국해까지 아시아 전역에서 안보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미국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④ 덩샤오핑의 충고를 버리고 공격적으로 팽창 전략에 나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반대로 중국은 미국이 아시아 지역의 안보를 책임지려는 상황을 억제하려고 한다.

둘 사이가 어떻게 변화할지는 지켜봐야 한다. 그러나 결국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전 세계에 재앙 수준의 영향을 미칠 것은 거의 확실하다. 서구권에선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 더 자유롭고 공정한 경제 시스템을 갖춘 개방적인 사회가 될 것이라고 오랫동안 믿어왔다. 하지만 시진핑 국가주석 통치 이후 중국은 전체주의적인 감시 국가가 됐고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의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 국가 자본주의 형태를 띠고 있다. 중국은 증가한 경제적 부를 군사력 향상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양국의 고조된 냉전 상황을 극복할 합리적인 대안은 없을까. 케빈 러드 전 호주 총리 등 일부 서구권 논객은 ‘관리된 전략적 경쟁(managed strategic competition)’을 해법으로 제시한다. 다른 한편에선 ‘협조적 경쟁(co-opetition)’을 펼칠 것을 주장한다. 외교 전문가이자 CNN 국제뉴스 진행자인 파리드 자카리아는 미국이 중국에 포용과 억제 정책을 동시에 펼칠 것을 주문한다. 이들의 주장은 사실상 같다. 경쟁국끼리 협력해야 할 것은 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은 기후, 국제 무역, 금융 등의 분야에서는 반드시 협력해야 하며 다른 분야에서는 건설적인 경쟁을 벌여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문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상대로 포용과 협력적 태도를 지녀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미국이 원하는 대로 개방적인 사회, 개방적인 경제 모델을 세계에 확산시키기 위해선 동맹국과 긴밀하게 협력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불행하게도 이런 전략적 비전을 갖추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보호무역주의 신봉자인 동시에 일방적인 핵무기 폐기를 지지하는 방위 정책을 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방과 동맹국을 적대시하는 것을 선호하며 서방 세계를 분열시키고 있다.

중국은 아마도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기를 바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단기적으로는 중국에 골칫거리가 되겠지만, 그가 집권하는 동안 미국의 소프트파워와 하드파워의 기초인 전략적 동맹 관계를 파괴할 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실의 ⑤ ‘맨츄리안 캔디 데이트’처럼 ‘중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것이다.


Tip

미국 정계에선 미·중 패권 전쟁이라는 용어 대신 미·중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편이다. 두 나라가 정치, 안보, 무역 등의 분야에서 탈동조화해 각자의 표준을 수립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본래 디커플링은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가 처음 사용한 용어로 한 나라의 경제가 특정 국가나 세계 전체의 경제 흐름과 달리 독자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는 현상을 뜻한다.

파편이라는 뜻의 스플린터(splinter)와 인터넷(internet)의 합성어로 인터넷 속 세상이 쪼개지는 현상을 의미한다. 스플린터넷이 본격적으로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중국이 별도의 인터넷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거대한 방화벽(Great Firewall·인터넷판 만리장성)’을 세우면서다. 중국은 페이스북, 유튜브 등 미국 웹사이트나 애플리케이션(앱) 접근을 막고 자국 서비스만 활용하도록 제한하면서 미국이 주도하는 인터넷 질서에 편입되지 않고 독자적인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미국 내 중국의 외국인 직접 투자 규모는 2016년 이후 줄곧 감소 추세다. 2016년 460억달러 규모였던 것이 2017년에는 290억달러로, 2018년에는 50억달러로 떨어지고 있다. 2018년에만 1년 전보다 80% 줄어든 셈이다. 반면 중국에 투자하는 미국인의 투자 규모는 2017년 140억달러에서 2018년 130억달러로 소폭 줄어드는 데 그쳤다.

덩샤오핑의 외교 전략은 도광양회(韜光養晦)였다. ‘재능을 감추고 때를 기다린다’는 뜻으로 덩샤오핑은 미국과 대결을 100년 동안 피하라고 주문했다. 장쩌민 국가주석과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재임 시절 도광양회 전략을 줄곧 지켰다. 하지만 시진핑 국가주석은 급속한 경제 발전과 국력 상승에 힘입어 도광양회를 포기하고 ‘분발작위(奋发作为·떨쳐 일어나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에 주력하고 있다.

중국에 세뇌된 미국 군인이 미국 대통령 후보를 암살하려는 내용의 1959년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