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플러스는 지난해 11월 12일 출범 하루 만에 미국, 캐나다, 네덜란드 3국에서 가입자 1000만 명을 돌파한 뒤, 같은 달 말 2400만 명을 뛰어넘은 것으로 추정된다.
디즈니 플러스는 지난해 11월 12일 출범 하루 만에 미국, 캐나다, 네덜란드 3국에서 가입자 1000만 명을 돌파한 뒤, 같은 달 말 2400만 명을 뛰어넘은 것으로 추정된다.

‘CES 2020’에 가기 위해 올라탄 비행기 안이다. 미국 LA를 거쳐서 삭막한 사막 라스베이거스로 가는 경로를 택했다. 이래저래 연초엔 ‘CES에 가시나요’가 정보기술(IT) 언저리 업계에서는 인사가 됐다. 조선시대 연행(燕行·북경 가는 길)이 문명의 실크로드였다면 지금은 CES가 현대판 연행이 아닐까 싶다.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하자마자 디즈니 플러스를 설치했다. 서비스를 개시한 지 단 며칠 만에 1000만 고객을 모으더니, 한 달도 채 되지 않아서 2400만 고객을 모았다는 바로 그 서비스다. 엄청난 속도전이다. 디즈니는 대표적인 콘텐츠 제작업자이자 채널 사업자다. 아직도 전체 수익의 3분의 1 정도는 채널 사업에서 얻는 사업자다. 그런 사업자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선언했다면 결과적으로 채널 수익의 감소를 감수하겠다는 뜻이다. 문제는 속도다. 디지털 영토는 전적으로 규모가 지배하는 시장이다. 천천히 속도를 높이려다가는 내부의 이해관계자를 설득하지도 못한다. 왜 그런 서비스를 출시해서 채널 사업의 수익성을 악화시키냐는 비난이 나올 게 뻔하다. 그래서 디즈니는 파격적인 가격을 내세워서 단기간에 규모를 키우는 속도전을 벌였다. 1년 내에 5400만 명 정도의 가입자를 확보한다면 채널 사업의 손해를 만회할 수 있을 듯싶다. 규모가 클수록 생존율이 높다는 디지털의 자연법칙을 너무도 잘 이해한 선택이다.

이 대목에서 한숨이 나온다. 우리에겐 속도가 있다. 그러나 규모가 없다. 하나의 서비스가 글로벌 시장에서 단기간에 가입자를 확보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점진적 방식을 택하고 국내 서비스 위주의 성장을 꾀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디지털 제국의 공격을 피할 수도, 방어할 수도 없다. 단기간에 규모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어쩔 수 없이 한계로 인정해야 한다면 규모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 규모의 한계를 한시적이나마 유예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CES에서 찾고자 하는 혁신 중의 하나도 바로 그것이다. ‘기술(technology).’


몽골의 양궁 명수들이 2018년 5월에 열린 황금독수리 축제에서 달리는 말 위에서 단일 목표물을 조준하고 있다.
몽골의 양궁 명수들이 2018년 5월에 열린 황금독수리 축제에서 달리는 말 위에서 단일 목표물을 조준하고 있다.

중세 유럽 제패한 몽골이 주는 교훈

제2대 칸이었던 오고타이 칸은 남송과 유럽으로 역사상 유례가 없는 동시 영토 확장을 벌인다. 그 전대미문의 확장전에서 몽골군은 단 40일 만에 유럽을 초토화한다. 당시의 문헌에는 용이 불을 토해서 성을 집어삼켰다는 표현도 나온다. 그렇게 몽골은 불을 뿜는 용을 조련해서 전쟁에 사용하는 그런 존재였다. 한니발이 전투용 코끼리를 앞세워 로마를 침공했던 것에 비견될 정도다. 그렇게 몽골은 압도적인 힘으로 유럽을 짓눌렀다. 이러한 성공에 대해서는 여러 분석이 있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몽골은 규모에서 압도적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몽골군은 남송과 북유럽으로 전력을 분산시켰기 때문에 유럽을 공격한 병력의 수는 최대 5만 명 정도에 불과했다. 그것도 패한 지역의 병사를 포함한 숫자다. 몽골과 대적했던 헝가리군의 숫자가 6만 명이었다. 더구나 병참도 부족했다. 4000㎞에 달하는 거리는 충분한 병참을 미리 준비하고 움직일 수 있는 물리적 환경이 아니었다. 기병이 탁월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기병력이라는 차원에서만 보면 십자군 기사가 있는 유럽도 뒤지지 않는다. 더구나 몽골은 경병군이었다. 유럽이 단단한 철갑으로 무장했다면 몽골은 가죽 정도로 보호하는 경병기 중심이었다. 모든 조건에서 몽골이 열위에 있었다. 규모도 작았고 방어력도 낮았고, 더구나 자원도 부족했다. 디지털 제국에 맞서는 딱 우리의 조건이다.

그런데도 중세 유럽은 몽골에 눈 뜨고 당했다. 바로 기술이다. 규모와 자원의 한계를 뛰어넘는 한 방 기술. 마치 철기가 청동기를 압도했던 것처럼, 몽골은 당시 유럽에서는 상상하지 못했던 다양한 공성 기술과 훨씬 강한 활을 활용해서 접근전을 피하면서 승리를 쟁취했다. 유럽 국가로서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기술은 그렇게 규모와 힘의 약점을 극복한다. 그러나 그 기술이 그들이 스스로 상상하고 만들었던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초원에서 전쟁을 벌였던 유목민에게 공성 기술이 자생적으로 성장했을 리는 만무하다. 공성 기술은 그들이 점령하고 공격했던 곳의 기술이었다. 그들은 그 기술을 품고 기술자를 품었다. 그리고 포용했다. 기술을 천시하지 않았고, 타국의 기술자를 멸시하지도 않았다. 자국의 귀족들에게만 시민권을 줬던 그리스가 아니라 적군이라 할지라도 일단 내 편이면 시민권을 줬던 로마가 몽골이었던 셈이다. 몽골은 당시의 뉴욕이었고, 미국이었다. 이문화와 이민족에 관대했다. 유럽을 공략한 몽골군에는 영국 출신도 있었고 인도 출신도 있었다. 그러고 보면 다양성을 확보한 국가들이 다 제국을 건설했다. 로마가 그랬고 영국이 그랬고 네덜란드가 그랬고, 지금의 미국이 그렇다. 중국은 중국의 울타리를 넘지 못했다. 그 잘났던 그리스는 자국의 귀족들에게만 시민권을 준 폐쇄적인 국가였지만, 로마는 이민족의 자식이 집정관이 됐던 나라다. 열려 있어야 하고, 열림을 인정해야 하고, 그 열림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과 가치를 흡수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 혁신은 기술이다. 속도전을 내세우는 입장에서는 내 기술, 남의 기술을 가릴 처지가 못 된다. 좋은 기술이면 가져와야 한다. 그러나 그 기술이 우리 속에서 자라고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 혁신적인 기술을 찾기 위해서 떠나는 CES지만 정작 보아야 할 것은 그 기술이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문화와 다양성의 조건이 아닐까.

조영신 SK브로드밴드 미래전략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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