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0%로 전년보다 0.7%포인트 하락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였던 2009년의 0.8%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지난해 한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0%로 전년보다 0.7%포인트 하락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였던 2009년의 0.8%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정부는 항상 민간보다 경제 정책 입안 능력과 실행 능력이 뛰어날 뿐 아니라 공직자는 사리사욕이 없으며, 항상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

이는 그 유명한 케인스 경제학에 깔린 암묵적인 가정이다. 이를 케인스가 나고 자란 영국 케임브리지의 한 지명을 따 ‘하베이로드의 전제(Harvey Road Presumption)’라고 한다.

세계 대공황 극복 과정에서 맹위를 떨친 바 있는 이 전제는 여전히 상당 부분 유효하다. 경기 침체기에 감세나 확장적인 재정 정책을 통해 시장의 유효 수요를 창출하고, 온기를 불어넣는 것은 과거나 지금이나 여전히 정부의 중요한 역할이고, 대체로 성과를 냈기 때문이다. 정부의 시장 개입에 대한 타당성이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일례로 경제 사회적 불평등과 격차 개선을 위한 복지나 산업 구조조정은 정부의 개입이 꼭 필요한 부분이다. 그래서 정치적으로는 인기가 없더라도 증세나 국채 발행 등을 통해 마련된 재원으로 정책이 추진되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발생하는 사회적 순 편익이 증가한 사회적 비용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로 효율적이라면 이 또한 정부의 시장 개입에 타당성을 부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현재 국내 사정을 살펴보면 하베이로드의 전제 그 자체가 부정될 수밖에 없는 현상이 여기저기에서 나타나고 있어 안타깝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기대와는 달리 가뜩이나 어려운 제조업과 도소매·숙박·음식업에 직격탄을 날렸다. 뒤이은 각종 보완책에도 불구하고 경제와 가계의 허리인 40대는 일자리를 잃었고, 상대적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해 왔던 제조업 일자리가 많이 축소된 것은 물론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가 대폭 늘어 그나마 쉽게 얻을 수 있었던 일자리마저도 사라지고 있다.

투기와 전쟁으로까지 표현하면서 발표한 수많은 부동산 대책은 전혀 힘을 쓰지 못한 채 집 한 칸 장만하려는 가계에 실망감만 안겨주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민간 건설 경기와 고용만 악화시켰다. 여기에는 특목고 폐지라는 갑작스러운 교육 정책의 전환도 영향을 미쳤다.

이외에도 논란 중인 사례는 많으나 여하튼 그 결과 얻은 것이 지난해 2.0%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다. 경제 위기 상황도 아닌데 내수 부문에서는 민간보다 정부의 성장 기여도가 높았다. 물론, 정책 당국 입장에서는 미·중 무역전쟁, 한·일 갈등, 반도체 경기 사이클 악화 등 수많은 대외 악재 속에서도 경제 성장률이 1%대로 떨어지지 않았으니, 그나마 정책 노력으로 선방했다고 스스로 위안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경제 성장률이 전년보다 0.7%포인트나 떨어지고, 국내총소득(GNI) 증가율이 외환위기 이후 21년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로 전환됐다는 사실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추경이다 뭐다 해서 돈은 돈대로 쓰고 성과 없이 미래 세대에 부담만 가중한다는 볼멘소리와 함께 지금까지의 정부 실패를 인정하고 정책 방향을 바꿔야 한다는 비판이 바로 여기에서 나오는 것이다.

물론, 작금의 시대적 요구를 반영해 볼 때 정부의 실패가 심각하다고 해서 오로지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만이 최선이라거나, 전적으로 민간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은 그다지 합리적인 발상은 아니다.

그러나 정부의 개입이 가져올 사회적 순 편익이 정부의 실패로 발생하는 사회적 손실을 명백히 밑돈다면, 당연히 정부의 개입은 수정 또는 철회되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