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설명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종신 집권으로 가는 길을 재정비했다. 1월 15일 푸틴은 국정연설에서 권력의 중심을 대통령에서 의회로 넘기는 개헌안을 제시했다. 개헌안에는 현행 6년인 대통령 임기를 제한하고, 상·하원 권한을 강화해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을 의회와 나누는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특히 대통령이 연임을 한 차례만 할 수 있도록 해, 후임이 장기집권하는 길을 막았다. 또 대통령 자격 요건 중 러시아 거주 연한을 현행 ‘10년 이상’에서 ‘25년 이상’으로 수정해 해외에 머무르고 있는 정적(政敵)을 견제하는 내용도 포함시켰다. 이번 개헌안은 2024년 퇴임을 앞둔 푸틴이 다른 방법으로 권력을 이어 나가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푸틴은 2000년부터 8년간 임기 4년 대통령을 연임한 후, 2008년부터는 4년간 총리직을 역임했다. 헌법이 3연임을 제한한 탓이다. 이때 측근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를 허수아비 대통령으로 앉혔다. 2012년 그는 개헌으로 임기를 6년으로 늘린 대통령직에 다시 앉았고, 2018년 대선에서도 승리해 2024년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한다. 다만 러시아 내에서 그의 3연임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 이번 개헌으로 우회 방법을 고안해 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앤더스 애슬런드(Anders Åslund)대서양위원회(Atlantic Council) 시니어 펠로, ‘러시아의 정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금권정치로 가는 길’ 저자
앤더스 애슬런드(Anders Åslund)
대서양위원회(Atlantic Council) 시니어 펠로, ‘러시아의 정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금권정치로 가는 길’ 저자

지난 1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내각과 헌법의 전면 개편에 착수, 어떻게 해서든 2024년 임기가 끝난 뒤에도 정권을 유지할 것임을 시사했다. 특히 경제 정책 분야에서는 투자를 통한 성장을 촉진할 것임을 시사했다. 그러나 이는 그의 희망 사항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전통적으로 러시아 경제 정책은 총리와 제1부총리가 담당했다. 개각에 따라 신임 총리엔 오랜 기간 국세청장을 맡았던 미하일 미슈스틴이, 제1부총리엔 푸틴의 경제 보좌관으로 일해온 안드레이 벨로소프가 임명됐다. 또 경제개발부 장관으로는 막심 레셰트니코프가 발탁됐다(그는 벨로소프와 경제 노선이 비슷하다).

푸틴을 7년간 보좌해온 벨로소프 신임 제1부총리의 정책에는 푸틴의 생각이 그대로 반영돼 있다. 저명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의 아들인 벨로소프는 후안무치한 국가 통제주의자이자 ‘자칭’ ① 케인시안이다. 정부 지출 증대를 주장하는 쪽이다. 2018년 푸틴이 재선에 성공한 이후 벨로소프는 푸틴을 도와 삶의 질을 향상하고 인프라 투자를 늘리는 13가지 국책 사업에 집중해 왔다.

행정부 실세로 통하는 미슈스틴 신임 총리는 서방 국가와의 두꺼운 인맥과 컴퓨터만 아는 괴짜(geek)로도 유명하다. 그는 러시아 세금 시스템을 디지털화한 공로를 인정받았는데, 그의 개혁 덕분에 러시아 국세청은 징수와 환급 과정을 간소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국세청이 터무니없는 방법으로 사업가들을 강탈한 것으로도 악명 높다. 반부패 운동가인 알렉세이 나발니에 따르면 미슈스틴 가족이 모스크바에 소유하고 있는 4500만달러 규모의 부동산은 합법적인 수입으로는 축적하기 어렵다.

미슈스틴은 야심가이기도 하다. 2010년 이후 러시아 정부의 핵심 인사 중 한 명이지만, 대중의 관심을 거의 받지 않았다. 막후의 야심가였던 미슈스틴은 푸틴의 신임을 받으려면 ② 아이스하키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2008년부터는 아이스하키 관련 활동을 시작했다. 아이스하키에 특출난 재능이 없음에도 말이다. 또 그는 푸틴을 따라 러시아정교회를 공개적으로 지지해왔다. 개인적으로 그의 아버지는 KGB 출신이지만, 이는 그의 정치 생활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푸틴의 이번 인사는 이전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한 불만족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전 총리의 내각이 재정 긴축을 추진했고, 이 영향으로 안톤 실루아노프 전 제1부총리도 빡빡한 장부 책임자로 유명했다. 실제로 지난 2년간 푸틴은 공공 지출 확대를 추진했지만, 러시아는 상당한 ③ 예산 흑자를 냈다.

과거 푸틴의 최우선 과제는 달러화를 축적해 러시아 주권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러시아의 달러화 보유고는 5600억달러까지 증가했다. 그러나 2009년 이후 러시아 경제 성장률이 연평균 1%대에 머무르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우선순위는 생산량 증대로 옮겨갔다. 벨로소프는 투자를 통해 생산량을 증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새 내각은 9명의 부총리와 21명의 장관으로 구성돼 있다. 여성 3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39~63세의 순응적인 기술 관료다. 이들은 모두 푸틴 측근과 긴밀한 개인적 관계를 맺고 있다.


1월 15일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이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와 대화하고 있다. 사진 AFP연합
1월 15일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이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와 대화하고 있다. 사진 AFP연합

권력 핵심으로 급부상할 미슈스틴파

새 내각에는 몇 가지 뚜렷한 특징이 있다. 첫 번째는 세 명의 부총리로 구성된 ‘미슈스틴파(派)’다. 미슈스틴의 비서 실장을 비롯해 세르게이 소바닌 모스크바 시장과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부 장관이다. 역대 총리 중 미슈스틴처럼 정부 내에 강력한 우방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미슈스틴파는 분명 무시할 수 없는 세력으로 커질 것이다.

두 번째, 다소 비정치적이라는 점이다. 이전 정부에서 노골적으로 민족주의 노선과 진보주의 노선을 걷던 ④ 세 명의 장관이 해임된 것이다. 문화 전쟁에 싫증 난 푸틴이 유능한 행정 관료를 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푸틴의 경제 계획은 성공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인프라에 대한 정부 투자는 푸틴 측근들에 의해 전용될 것이다. 희망에 가득 찬 푸틴은 부패에 기반을 둔 시스템은 성장을 촉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다. 푸틴의 1월 15일 국정 연설을 들어보면 알 수 있다. 그는 이 연설에서 인구통계학을 언급하고 헌법 개정안을 발표했으며, 법치주의에 대한 립 서비스를 빼놓지 않았다. 늘 그렇듯, 그는 시장 개혁에 대해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다.

겉으로 봤을 때 러시아 국민이 새 내각에서 희망을 품을 만한 부분은 거의 없다. 미슈스틴 측근이자 신임 부총리 중 한 명인 드미트리 체르니셴코는 소치 올림픽, 가즈프롬-미디어와 깊숙이 연결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다른 부총리인 마라트 쿠스눌린은 타타르스탄과 모스크바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건설 프로젝트에도 연관돼 있다. 그리고 지난해 미국 사업가 마이클 캘비가 러시아에서 횡령 혐의로 체포된 사건 배후에는 벨로소프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푸틴의 이번 캐스팅은 ⑤ 또 다른 실망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Tip

케인시안(Keynesian)은 경제에 대한 정부의 개입과 조정을 중시하는 학파다. 케인스학파라고도 불린다.

푸틴은 아이스하키광으로 유명하다. 아이스하키, 스키 등 스포츠를 통해 건강을 과시하곤 하는데, 미슈스틴은 러시아하키연맹 운영위원회 위원이면서 모스크바 프로 아이스하키 클럽인 ‘CSKA’ 감독위원회 위원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푸틴의 각료 교체에 대해 ‘재정 안정’에서 ‘경제 성장’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졌다고 해석한다. 이전 내각이 긴축 재정, 외화 보유액 확충 등에 중점을 뒀다면 새 내각은 투자를 통한 성장에 역점을 두겠다는 것이다.

노골적인 민족주의자 블라디미르 메딘스키 문화부 장관과 올가 바실리예바 교육부 장관이 해임됐고, 진보주의자 올가 골로데츠 스포츠 장관도 해임됐다.

푸틴은 개헌안을 통해 제3의 방법으로 영구 집권을 추진할 것이란 분석이 많다. 애초 푸틴은 3연임이 가능하도록 개헌해서 계속 대통령직을 유지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하지만 국민 반대가 심한 3연임을 포기하는 대신 우회로를 뚫기로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는 해석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