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블룸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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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이다’. 1995년 학계와 업계를 강타했던 ‘Being Digital’의 번역명이다. 세상의 최소 단위가 원자(atom)가 아니라 이제는 비트(bit)라는 주장은 당시로는 ‘책상을 탁 칠 정도’이자 ‘유레카’를 외칠 정도의 탁월한 안목이었다. 알프스산맥에서 생산된 빙하수가 대서양을 건너 우리 앞에 놓인 에비앙 생수가 원자라면, 영국의 파운드는 비트로 변화되자마자 순식간에 자신의 계좌로 이체돼 온다는 것이 그의 비유였다. 신생 출판사였던 박영률 출판사의 입지를 알린 책이었고, 당시만 하더라도 변방이었던 대한민국에 니콜라스 네그로폰테(Nicholas Negroponte)란 이름이 디지털의 상징어로, 일반명사가 된 시점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현시점에 우린 비트의 폭격을 실감하고 있다. 넷플릭스와 유튜브에서 시작한 미디어 혁명은 멈출 줄 모르고 초진격이다. 디즈니 플러스로 끝이 나는가 싶었지만, 이제는 정액제가 아니라 광고에 기반하는 OTT(Over The Top·온라인 동영상 서비스)가 빈자리를 치고 들어왔다. 최근 컴캐스트가 XUMO란 광고 기반의 OTT 서비스를 2000억달러에 인수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컴캐스트의 NBC가 올해 4월에 광고 기반의 OTT 서비스인 피콕(Peacock)을 내놓을 계획이었고, ‘그’ 카젠버그가 기획한 숏폼 기반의 퀴비(Quibi)란 OTT가 곧 출시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자고 나면 사건의 연속이다. 이곳저곳에서 디지털 혁신과 DT(Digital Transformation·디지털 전환)를 외치면서 변화를 주장한다. 변화와 혁신의 끝이 보이지 않으니, 숨이 막힐 지경이다.

그러나 디지털 혁신이 생존의 질문이고 이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지만, 트렌드로서의 디지털이 아니라 실체로서의 디지털에 대한 정체성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굳이 서 있는 곳에 따라서 보는 것이 달라진다는 ‘미생’의 말머리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서 있는 곳의 입장에서 디지털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이 맥락에서 ‘디지털이란?’ 질문을 던져보자. 막상 질문을 받고 대답을 하자고 들면 답변이 곤궁하다. 머릿속에는 교과서에서 배운 0과 1이 떠오르긴 하지만, 이것을 디지털의 정의라고 답변하자니, 뭔가 어색하고 이상하다. 연속으로 설명되던 아날로그 세상이 0과 1이란 단절과 구분으로 이어지고, 미시화된 구분이 종국에는 아날로그보다 더 연속적인 그 무엇이 된다는 실체적 의미를 이해하고는 있으나, 그래서 ‘디지털이 무엇이다’라고 단언하기가 참 쉽지 않다. 인공지능이 개를 실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정보가 주어지고 학습을 해야 하듯이 우리가 이해하는 디지털은 실체적 정의에 앞서 디지털이란 이름이 붙어 있는 것들의 특성을 총합해서 이해할 수밖에 없다. 그러고 보면 네그로폰테의 ‘Being Digital’ 이후에 실체적 정의에 대해서는 한 발짝도 못 나간 셈이다.

이 실체적 정의를 사업과 현장으로 옮기게 되면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아마존에 디지털이란 시작점이지만, 월마트에 디지털이란 종착점이다. 시작부터 디지털에서 출발했기에 디지털은 새로운 수익을 보장하는 그 무엇이지만, 아날로그에서 시작해서 디지털로 달려야 하는 월마트에 디지털은 수익 이전에 비용일 수밖에 없다. 기존의 사업을 영위하면서 새로운 시장에 진입하는 것이기에 새롭게 벌어들이는 매출은 적고 투자성 비용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 결국 기존 사업자에게 디지털은 비용의 문제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되는 셈이다.

그나마 월마트는 다행이다. 아마존이 리테일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상거래 시장에서 온라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15%에 불과하다. 아직 85% 시장은 오프라인이기에, 조금 더 오프라인 기반의 커뮤니티 서비스를 강화하는 것으로 버틸 수 있고, 유지할 수 있는 여지는 있다. 그러나 시장 자체가 급격하게 디지털로 넘어가는 형국에 있는 아날로그 사업자에게 수익 이전의 비용에 대한 각성은 생존의 문제가 된다. 미디어 시장에서 디지털 전환의 모범생으로 손꼽히는 뉴욕타임스는 디지털이란 화두가 수익이 아니라 비용의 문제라는 것을 간결하고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다.


뉴욕타임스가 디지털 혁신에 성공한 비결

뉴욕타임스가 디지털 혁신의 모범생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간명하다. 종이 신문의 구독자가 감소하고 이에 따라 광고 수익이 덩달아 감소해 재무적 손실이 발생했던 뉴욕타임스가 디지털 혁신을 하고 난 뒤 유료 구독자가 증가했다는 것이다. 2012, 2013년에 아날로그와 디지털 유료 구독자의 구독 수익이 광고 수익을 넘어서기 시작했다는 것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압도적 품질을 자랑했던 뉴욕타임스이니, 콘텐츠의 품질만을 지키고 강화할 수 있다면 가성비가 판을 치는 디지털 시장에서도 정액제 기반의 뉴스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는 동전의 한 면일 뿐이다. 2006년 대비 2019년 뉴욕타임스의 매출은 약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이에 맞춰 비용은 최고치보다 4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아주 단순하게 보면 매출 감소분보다 비용 감소분이 훨씬 커서 결과적으로 손익 구조가 개선됐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뉴욕타임스는 외부의 수혈을 받지 않고 스스로 다시 일어선 업체다. 경쟁지인 워싱턴포스트가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의 지원을 받아 정보기술(IT) 기업의 혁신 DNA를 물려받아 생존의 복음을 받았고, 월스트리트저널이 폭스 등 모기업의 지원을 통해 디지털 뉴스 시장에서 명성을 얻었다면 뉴욕타임스는 뉴스만 제공하는 기업으로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성공적으로 전환한 대표적인 사례다. 모든 것이 일상재(commodity)가 되어 버린 뉴스 시장에서 뉴욕타임스는 디지털 혁신을 통해서 무엇을 얼마나 추가로 벌 것이냐는 질문보다 디지털 혁신을 하기 위해서 얼마나 비용을 최적화하느냐에 집중한 결과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래서 적어도 아날로그에 기반했던 기업의 디지털 전환은 기존보다 더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겠냐는 질문보다 비용 구조를 어떻게 혁신할 수 있느냐에 집중해야한다. 디지털 혁신은 비용 혁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