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설명 한국 영화 ‘기생충’이 2월 9일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을 시작으로 감독상·각본상·국제 장편영화상 등을 거머쥐며 4관왕을 차지했다. 지난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후 1년간 계속된 기생충 신드롬은 세계적으로 숱한 화제와 한국에 관한 관심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됐다. 골드만삭스 자산운용 회장과 영국 재무부 차관을 지낸 경제학자 짐 오닐은 이번 칼럼에서 ‘기생충’을 통해 한국 경제의 성공 요인을 짚었다. 그는 노동력과 생산성을 한국 경제의 성장 엔진으로 꼽았다. 물론 급격한 고령화로 노동력 부족, 생산성 저하 등의 문제를 겪고 있지만, 짐 오닐은 한국이 다른 국가와 차별화되는 지점이 분명히 있다고 주장한다.
짐 오닐(Jim O’Neill)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 소장, 서리대 박사, 전 골드만삭스 자산운용 회장
짐 오닐(Jim O’Neill)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 소장, 서리대 박사, 전 골드만삭스 자산운용 회장

요즘 세계적으로 한국이 대세다. 2월 초 아카데미에서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으로 작품상을 받았다. 여러 리뷰를 읽고 며칠 전 영화를 관람했다. 외국어로 된 영화가 오스카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은 K팝(K-pop)뿐만 아니라 최신 패션 디자이너에 이르기까지 ‘쿨(cool)함’의 대명사가 됐다. 지금 세계는 한국의 쿨함을 나타내는 사례를 더 열심히 찾고 있다.

보통 경제와 ‘쿨함’을 연관 짓기는 쉽지 않지만 한국은 경제에 있어 쿨한 국가다. 지난 40년간 이른바 ‘신흥 경제’로 불리는 국가 중 제대로 된 성공을 거둔 곳은 없었다. 그런데 인구 5000만 명의 한국은 비슷한 규모의 그 어떤 국가보다 빠른 속도의 소득 성장을 경험했다. ① 1인당 국내총생산(GDP)도 마찬가지다. 사하라 이남 지역 아프리카 국가 수준에 불과하던 한국의 생활수준은 이제 스페인과 비슷한 정도다.

영화 ‘기생충’은 한국의 빈부 격차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으며, 현대 한국의 불평등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제 성공에서 주목할 만한 요소 중 하나는 소득 수준이 높아진 다른 많은 국가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소득 증가율 변동성이 낮다는 점이다. 2018년 한국의 ② 불평등 지수(지니계수)는 0.345로 미국(0.485)보다 낮다(지니계수가 높을수록 불평등). 대부분의 유럽 국가보다 낮은 수준으로 한국의 소득 분배가 비교적 평등하게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은 세계에 어떤 교훈을 주는가. 장기 경제 성장의 전제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노동력과 이들의 성장세다. 핵심 생산 인구가 많은 나라일수록 경제가 강력한 성장세를 이루기 훨씬 쉽다. 평범하고 단순한 이치다. 이것이 바로 중국과 인도 경제 성장의 핵심 요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활기찬 노동력과 이들의 성장세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파키스탄과 인도가 대표적이다. 양국 경제는 대규모 젊은 노동력으로부터 잠재적인 이득을 얻지 못했다. 실제로 파키스탄과 인도 정부는 대규모 인구를 부담으로 여긴다. ③ 지속적인 생산성 향상이라는 두 번째 성장 요인을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바로 이 부분이 한국을 특별하게 만드는 핵심 요인이다. 지난 40년간 강력한 생산성 성장을 누려온 국가 대부분은 인구가 적었다. 한국을 제외하고, 인구가 많은데도 생산성 성장세가 강력했던 사례는 인구 3억 명이 넘는 미국이 유일하다. 실제로 미국은 최근까지도 생산성 성장세가 견고했다.


한국의 방탄소년단(BTS)과 NBC ‘팰런쇼’의 진행자 지미 팰런(가운데). 2월 24일 BTS는 뉴욕 기차역인 그랜드센트럴 터미널에서 신보 무대를 최초로 공개했고, 이 영상은 팰런쇼를 통해 공개됐다. 사진 연합뉴스
한국의 방탄소년단(BTS)과 NBC ‘팰런쇼’의 진행자 지미 팰런(가운데). 2월 24일 BTS는 뉴욕 기차역인 그랜드센트럴 터미널에서 신보 무대를 최초로 공개했고, 이 영상은 팰런쇼를 통해 공개됐다. 사진 연합뉴스

정보통신 기술서도 미국 앞서는 한국

2000년대 초반 지속 가능한 성장을 나타내는 지수를 만들었다. 이 지수는 지배구조와 제도의 강도, 교육 부문 투자, 무역과 투자 개방도, 기술 채택과 침투 등 생산성을 구성하는 수많은 변수로 구성돼 있다.

연구 과정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특정 변수와 평균 소득 간의 강한 상관관계였다. 한국은 생산성 전체 20위 안에 드는 경우가 많았을 뿐만 아니라 기술 활용 등 핵심 지표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일찌감치 컴퓨터 시대에 들어선 한국이 그 결실을 본 것이다.

당시 나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정책 입안자들에게 한국을 연구하고 그 모델을 모방하라고 권고하곤 했다. 이 제안을 다시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아프리카 최대 인구의 나이지리아에 말이다. 나이지리아는 음악과 영화 부문에서 세계 문화의 뿌리가 되기도 하는 국가다.

한국이 다른 많은 부국을 능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이유가 또 있다. 현재 한국은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여러 도전에 가장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국가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응은 최근까지 경제 성공 스토리의 표본으로 여겨졌던 독일보다 더 효과적인 것 같다. 물론 한국도 몇 가지 주요 도전 과제에 직면해 있다. 중국의 경제 둔화와 기후 변화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는 다른 국가의 주요 당면 과제이기도 하다. 초점은 누가 가장 잘 적응할 것인가다. 또 세계는 지금 신기술과 씨름하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5세대 이동통신(5G)에 대한 접근과 채택 그리고 정보통신 기술의 물결에서 한국은 이미 미국을 앞서는 것처럼 보인다.

앞으로 수십 년간 어떤 국가가 가장 잘 운영될지 예측하기는 어렵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오스카와 별개로 앞으로 세계가 한국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Tip

한국의 1인당 GDP는 3만1362달러로 스페인(3만370달러)을 웃돈다. 반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의 1인당 GDP는 1585달러에 불과하다.

소득 분배의 불평등도를 보여주는 지수로 숫자가 클수록 불평등하다. 2018년 기준 한국의 지니계수는 0.345로 미국, 유럽 등 다른 선진국보다 낮다. 다만 연도별 한국의 지니계수는 높아지는 추세다.

한국에서도 최근 생산성 향상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최근 분석 자료에서 2001년 이후 5개년 기준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단계적으로 둔화(5.0%, 4.3%, 3.1%, 2.7%)했다고 주장했다. 이 기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3.8%, 3.7%, 3.5%, 3.3% 수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