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대선과 총선 등 큰 선거 때마다 정치권에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우선 큰 선거가 있을 때마다 정당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구조조정을 반복한다. 특히 이전 선거에서 실패한 야당들의 변화가 매우 크다. 새로운 정당이 만들어지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정당이 인수·합병(M&A)을 통해 거품처럼 사라진다. 정상적인 정당정치가 자리 잡은 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종의 ‘쇼’가 벌어진다. 조직이 결정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 권한을 스스로 포기하는 일도 자주 발생한다. 정당의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 중 하나인 공천을 결정하는 공천위원장과 일부 공천위원을 대부분의 정당이 외부에서 영입한다.

왜 이럴까? 정당의 지배구조가 고장 났기 때문이다. 기업은 주주들이 소유주이고 이들의 권한을 위임받은 이사회가 집행 임원들을 통제하는 구조다. 그런데 선거 때만 되면 집행 임원인 정당 지도부 간의 싸움이 벌어진다. 이를 통제할 이사회도 없고, 더더욱 정당의 주인이 돼야 할 주주총회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한국 정당의 현주소다. 그런데 한국 정당들은 주주들을 주인 대접해 본 적도, 주요 의사결정에 의미 있게 참여시킨 적도 없다. 주주들에게 이사회를 구성할 권한도 주지 않았다. 그래서 집행 임원 간의 경영권 싸움으로 조직이 쑥대밭이 될 것 같으면 타협 또는 정치투쟁의 결과로 외부인에게 경영을 위임하는 척한다.

선거에서 이겨보겠다고 각 정당은 영입 경쟁을 한다. 그런데 선거를 몇 달 앞두고 하는 영입 경쟁이란 결국 지명도 있는 인사들을 영역 없이 ‘모시는’ 것이다. 시간이 없으니 품질은 둘째고 브랜드 지명도가 우선이다. 경쟁에 의한 스타 탄생이 안 되고 위에서 내리꽂아준 사람 중에 선택을 강요하는 선거가 계속된다. 이는 기득권 정치 지도자들이 독과점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진입장벽을 막아 놓은 탓이다.

한국 정치권은 ‘벤처 신상품’ 브랜드를 알릴 기회도 주지 않는다. 정치 신인들이 정치권에 진입하려면 마케팅을 해야 하지만, 예비 후보 등록 전, 즉 선거 2~3개월 전에나 가능하고 사전에 정치자금을 모을 수도 없다. 선거 기간이 몇 달 되지도 않는다. 그래야 기존 정치인들의 독과점 지위가 유지된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힘으로 정치 혁명을 하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같은 정치권 벤처 신상품이 출시될 수 없다.

아울러 어떤 조직의 의사결정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조직의 목표와 구성원의 이해가 일치할 때도 있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 조직과 의사결정권자의 목표가 불일치하는 경우 별도의 조직 목표와 다른 의사결정을 하게 되고 이들의 도덕적 해이로 조직은 상당한 피해를 볼 수 있다. 정당은 이기는 후보를 내는 게 목표이고 정치인들은 무조건 자신이 선거에 나가는 것이 목표다. 원천적으로 이해가 충돌한다. 이 경우 여당은 권력이 있어서 탈락자를 달랠 수 있는 수단이 존재한다. 하지만 야당은 야당 지도자가 미래 권력에 얼마나 가까이 있는 사람인가에 따라 탈락자를 달랠 수 있는 수단이 다르다.

그래서 야당에서 경선 불복 사태가 일어나 자중지란에 빠질 위험도, 당의 지도자에게 반기를 들 가능성도 크다. 그래서 야당일수록 욕먹고 자신의 리더십에 흠이 될 일을 외부 공천위원장에게 위임하는 꼼수를 둔다. 지금 야권의 김형오 공천위원장은 1976년 파국의 위기에 이른 크라이슬러 자동차를 회생시키기 위해 영입했던 리 아이아코카 회장과 유사한 입장이다. 그는 7년 만에 35명의 기존 임원 중 33명을 경질하는 구조조정 끝에 부채를 털어내고 7억달러의 순이익을 넘기는 신화를 창조했다.

4월 총선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지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한국의 정치 시스템은 낙후됐다. 시장에서는 독과점이 아니라면 이러한 기업들은 설 자리가 없어 바로 퇴출당할 것이다. 우리 정당의 공천 드라마는 기업에 지배구조의 안정성, 조직 및 인사관리, 마케팅과 전략의 중요성을 다시 새겨보는 좋은 반면교사다. 그러나 이런 부실기업의 제품 소비를 강요당하는 소비자는 화가 나고 이들에게 전환기 나라의 운영을 위임해야 하는 국민은 불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