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의 재원은 과세 대상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결국은 증세를 통해 마련될 수밖에 없다.
기본소득의 재원은 과세 대상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결국은 증세를 통해 마련될 수밖에 없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연일 맹위를 떨치는 가운데 국내 경제는 회복 경로를 이탈해 더블딥(경기 침체 후 회복기에 접어들다가 다시 침체에 빠지는 현상)이 확실시되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더군다나 코로나19가 세계적 대유행 즉, 팬데믹(pandemic·전염병 대유행) 현상으로 발전하면서 외환시장은 물론 주식시장이 요동치는 등 한국 경제가 위기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는 적신호가 여기저기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슈퍼 추경에 대한 공감대는 어느 때보다 커져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국내 정치권에서는 기본소득(basic income) 도입을 놓고 논란이 한창이다. 이미 일부 지자체는 취약 계층에 한해 코로나19 긴급 생활 안정을 위한 재난 기본소득이라는 명목으로 긴급 추경 예산안을 마련해 의회 심의를 요청했다고도 하니, 해당 지자체 주민은 귀가 솔깃할지도 모르겠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기본소득은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토머스 페인의 ‘토지 분배의 정의’를 거쳐 최근에는 토마 피케티의 ‘자본과 이데올로기’에 이르기까지 많은 학자가 각기 다른 형태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기본소득은 통상 국가가 국민에게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무조건 지급하는 소득(unconditional basic income)을 말한다.

그 재원은 투기 소득에 대한 중과세, 소득세나 법인세 인상, 토지세 등 다양한 명목으로 마련된다. 과세 대상과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 증세를 통해 마련될 수밖에 없다. 여하튼 찬반을 떠나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이라면 고통받는 저소득층, 소상공인 등 소위 사회적 약자나 코로나19 피해가 심각한 지역에 기본소득을 지급함으로써 이들의 고통을 완화함과 동시에 경기 방어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논의는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를 국민 전체로 확대하고, 올해 빚으로 지급한 기본소득만큼 내년에 증세를 통해 보충하면 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그 적절성을 좀 더 따져 봐야 한다.

우선 이번 위기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공포감 때문에 사람의 이동이 극히 제한적인 상황이란 뜻이다. 당연히 개개인의 사회 활동이 잦아드니 소비가 위축될 수밖에 없고, 수요가 줄어드니 가뜩이나 감염병 확산 우려 때문에 움츠러든 산업 생산 활동도 크게 위축되는 것이다. 즉, 공포감이 사라지지 않는 한 극복하기 힘든 난관에 봉착해 있는 것이 바로 우리 경제다.

더군다나 총선이 코앞이다. 감염병을 핑계로 전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고 하면, 포퓰리즘 논란으로 국론 분열을 야기해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위기 극복의 동력을 잃을 수도 있다.

당장 표심을 얻고자 하는 후보들 입장에서도 기본소득 뒤에 숨어 있는 증세를 생각해보면 결코 현명한 선택일 수 없다. 이것이 조삼모사(朝三暮四)인지 아닌지 잘 아는 납세자들의 표심이 어디로 갈지는 명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장기적인 논의는 있을 수 있지만, 기본소득이 이번 위기 극복에 있어서 크리티컬 포인트(critical point)가 될 수는 없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기본소득이 아니라 위기 극복을 위한 전방위적인 거시경제 대책이다. 슈퍼 추경이 조속히 국회를 통과해 적재적소에서 위기 안전판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함은 물론이고 중앙은행의 0%대 초저금리에 대한 각오와 민간자산 매입 등 비전통적인 금융 정책에 이르기까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쏟아부을 수 있다는 정책 당국의 강력한 의지와 실천이 필요하다. 모쪼록 정부와 국민이 ‘악마의 손짓’에 현혹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