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2일 서울 시내 한 영화관에 좌석 간 거리 두기 시행으로 전체 좌석 절반의 예매 가능 좌석 수가 표시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3월 22일 서울 시내 한 영화관에 좌석 간 거리 두기 시행으로 전체 좌석 절반의 예매 가능 좌석 수가 표시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극장이 문을 닫았다. 1998년 11개의 상영관을 갖춘 강변 CGV가 등장한 이래 극장은 매번 진화를 거듭했다. 극장은 영화 산업의 부침 속에서도 2D에서 3D로 그리고 IMAX란 새로운 틀을 제공하면서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넷플릭스가 극장 동시 개봉이란 파괴적 행위를 했을 때도 극장은 완강하게 결속을 과시했다. 디지털이 세상을 바꾼다고 포효했지만, 극장이란 경험은 완고했다. 그랬던 극장이건만 3월 28일 CGV 피카디리 1958은 공식적으로 영업 중단을 선언했다.

극장은 영화를 담는 그릇이다. 극장이 문을 닫았으니, 영화는 갈 길을 잃었다. 극장-비행기-PPV(Pay per view·프로그램 건당 요금제)-PPM(Pay Per Month·월정액)-영화 채널-일반 채널-지상파로 이어지는 유통 경로 중 최상위 유통 창구인 극장이 문을 닫자 영화사는 셈법을 달리할 수밖에 없게 됐다. 북미에서는 자국의 극장을 통해서 영화 제작비를 건지고, 해외 시장에서 마진을 가져가는 것이 일반적인 수익 모델이었다. 해외 판매 수익이 적은 한국은 자국 극장을 통해서 제작비와 최소 운영 마진을 벌고, IPTV(인터넷TV)의 VOD(주문형 비디오) 등을 통해서 영업 이익을 확보해 왔다. 극장은 수익의 60~70%를 차지할 만큼 비중이 컸다. 영화를 제작하고 유통하는 일을 생업으로 삼고 있는 이들에게 극장은 생명줄에 진배없었다. 그런 극장이 문을 닫았다.

지난 수 세기 동안 알게 모르게 들어왔던 ‘콘텐츠는 왕’이란 경구는 부질없는 소리다. 사업이란 차원에서만 보면 존속했던 콘텐츠 사업자보다 명멸했던 사업자의 수가 더 많고, 아주 극소수를 제외하곤 시장 내에서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콘텐츠를 만들 수 없었다. 진입 장벽이 없는 만큼 수없이 많은 콘텐츠 사업자들이 등장했지만, 디즈니 등 아주 소수만 살아남았다. 그 ‘살아남았다’조차도 창업 초기의 가치를 존속시킨 회사는 디즈니 정도다. 97년의 역사를 가진 워너브러더스는 주인이 서른 번이 넘게 바뀌었을 정도다. 오드리 햅번이 사라졌어도 ‘로마의 휴일’은 남아 있다는 면에서 콘텐츠는 왕일 수 있으나, 콘텐츠 사업이 왕이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수익성이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차’ 떼고 ‘포’ 떼고 하면 남는 것이 별로 없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규모와 유통이었다. 영화나 TV 프로그램을 만들어도 배급권은 소수의 몫이었다. 이란 등에서 90%의 시청률을 기록했던 ‘주몽’이지만 제작사가 이란에서 벌어들인 수익이 겨우 3000만원 남짓했다거나, 지금도 어디선가는 방송을 하고 있는 ‘대장금’으로 제작사가 손에 쥔 건 몇백만원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는 결국 배급권과 유통권을 넘겼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왜 배급권과 유통권을 넘겼냐고 쉽게 비난하겠지만, 초기에 손실을 줄여야 하는 제작사들로서는 적은 금액이나마 구매해 주는 유통권자가 반갑기만 했다. 콘텐츠를 만들던 사업자들이 어느 정도 자금을 모으면 콘텐츠 그 자체에 투자하기보다는 배급권이나 유통권을 확보하는데 집중한 탓이기도 하다.

오늘날 디즈니가 콘텐츠 산업에서 여전히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도 대본을 먼저 볼 수 있는 권리나 마지막에 거절할 수 있는 권한 등 배급과 유통에 대한 권한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건 이 동네에서는 다 알지만 따라 할 수 없는 비급(祕笈)이다. 배급은 소수가 차지하고 있었고, 제작은 다수가 차지하고 있었으니, 시장의 주도권을 배급사가 쥐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콘텐츠는 왕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허울 좋은 소리일 뿐이다.


미래의 희망이 없는 도시를 배경으로 한 추적 스릴러 ‘사냥의 시간’ 포스터. 사진 네이버영화
미래의 희망이 없는 도시를 배경으로 한 추적 스릴러 ‘사냥의 시간’ 포스터. 사진 네이버영화

배급과 유통 거래 비용 줄여준 ‘디지털’

어느 틈엔가 다시 콘텐츠는 왕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과거와는 다른 ‘찐’이라는 해석도 나오기 시작했다. 바로 디지털 덕분이다. 디지털은 배급과 유통이란 중간 단계를 넘어서서 고객과 콘텐츠를 바로 이어줄 수 있다. 과거에는 하나의 콘텐츠를 만들어서 글로벌로 유통하려면 각 지역 유통권자와 일일이 협상하고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당연히 거래 비용이 높아진다. 심지어 어디에 어느 유통권자가 있는지를 몰라 거래 자체를 못 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글로벌 가입자 2억 명이 넘는 HBO나 글로벌 마켓을 관리할 수 있었던 디즈니조차도 기껏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서 각 지역의 유료방송 사업자와 지난한 협상을 벌여야 했다. 개별 국가의 규제에 맞춰 지역화하는 작업은 덤이었다. 그러니 작은 채널 사업자들이나 콘텐츠 사업자들은 이중 삼중으로 이를 처리해 주는 사업자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태생이 디지털인 넷플릭스와 유튜브가 등장했다. 넷플릭스에 콘텐츠를 유통시킬 것이냐 마느냐만 결정하면 되는 일이다. 적정 가격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겠지만, 수많은 로컬 사업자와 협상하지 않아도 된다. 원칙적으로는 좋은 콘텐츠를 가지고 있기만 하다면 거래 비용 제로(0)에 도전할 수도 있다. 2억 채널 가입자를 확보한 HBO보다도 적은 1억7000 정도의 가입자를 가진 넷플릭스에 콘텐츠를 넣으면 그것 자체로 글로벌 유통을 달성하게 되는 것이다.

더는 지역 판권은 의미가 없게 된 것이고, 손발은 물론 머리까지 고생시켰던 글로벌 유통이 너무도 평범하고 일상화된 조어가 돼 버렸다. 지역 유통권자의 재무적 이익을 보장해 줘야 하기 때문에 때론 불리한 계약 조건을 감수해야 했기에, 외형적 성장과는 달리 재무적 성과가 작을 수밖에 없어, 콘텐츠 총제작비의 증분을 만들기가 쉽지 않았던 과거와는 ‘이젠 안녕’을 선언할 수 있게 됐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미스터 션샤인’이었고, ‘킹덤’이었다. 글로벌 가입자를 염두에 두고 한 방에 질러준 자금으로 수백억원 규모의 TV 시리즈 콘텐츠가 등장했다. 지역 유통망인 방송사를 먼저 고려하지 않고 넷플릭스 선판매 후유통망 사업자와 거래하는, 지역 유통 사업자보다 콘텐츠 사업자가 우위에 서 있는 시장으로 처음으로 바뀐 것이다.

TV 시장의 변화가 극장 시장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커졌다. 셈법은 단순하지만, 감정은 복잡하다. TV와 TV의 싸움에서 콘텐츠는 글로벌 유통을 선택했지만, 영화는 그렇지 않았다. 여전히 극장을 앞세운 영화는 넷플릭스와 선협상을 불편해했다. 극장과 협상하고 해외 유통 사업자와 협상한 이후에야 비로소 넷플릭스와 이야기할 테이블이 만들어졌었다. 하지만 이젠 이 관행마저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극장이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극장을 찾지 못한 ‘사냥의 시간’은 넷플릭스를 찾았다. 극장을 전제로 해외 유통권을 샀던 ‘콘텐츠 판다’와 넷플릭스에 유통하기로 결정한 ‘리틀빅쳐스’는 서로 고성을 질렀다. 극장이 문을 닫지 않았으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다. 디지털 이행으로 물리적 조건은 만들어졌지만 심리적 저항을 넘지 못했던 영화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발생한 이 기막힌 상황에서 관행은 부질없어졌다. 관행 때문에 박차고 나가지 못했던 디지털이 드디어 자신의 본질적 가치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길이 나면 뒤는 따른다. 불확실한 국내 극장 수익보다는 확실한 넷플릭스의 수익이 더 강하게 견인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코로나19를 만나 디지털이 또 하나의 시장을 파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