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훈유튜브채널 ‘Gadget Seoul’ 운영, 한국 외국어대 졸업, 한화 갤러리아 상품총괄본부 기획팀
장지훈
유튜브채널 ‘Gadget Seoul’ 운영, 한국 외국어대 졸업, 한화 갤러리아 상품총괄본부 기획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터지고 난 후 정보기술(IT) 시장에 가장 먼저 제기됐던 우려는 공급 부족이었다. 특히 IT 제품들의 생산 공장 역할을 하는 중국의 코로나19 확산 추세가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빨랐기 때문에 공급 부족 우려가 언론을 통해 자주 흘러나왔다. 설상가상으로 해당 시기인 2월 중순 중국은 춘절 연휴를 보내고 있었고, 이후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중국 정부는 춘절 연휴 연장을 결정하면서 중국 공장들의 가동률은 꽤 오랜 시간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다행히도 2개월여가 지난 현재 상황을 보면 공급 부족으로 전체 시장이 심각하게 악화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우선 블룸버그 경제 분석팀은 승객 운송과 건설 원자재 거래, 지방 정부들이 발표하는 기업 가동률, 지역 언론들의 노동자 복귀 보도 등을 토대로 후베이성을 제외하고 현재 중국의 공장 가동률이 85% 이상 확보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여기에 중국 입장에서 코로나19 사태 이후 공장 가동률 제고를 위해 선제적으로 역량을 쏟았을 영역이 상대적으로 부가가치가 큰 IT 관련 시설이었을 것이라는 점, 디램·낸드플래시 등 반도체 영역의 경우 지난 몇 분기 동안의 다운사이클을 지나며 시장에 충분한 수준의 재고가 축적돼 있는 상황이라는 점을 함께 고려해보면 생산 차질로 인한 피해가 현재 시장이 예상할 수 있는 수준을 크게 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번 코로나19 사태의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공급이 아니라 수요 부분을 살펴봐야 한다.


본질은 수요 감소에 있다

코로나19 사태 발발과 비슷한 시기에 출시된 갤럭시 S20의 판매 부진, 도쿄 올림픽 연기 등 수많은 근거가 수요 부족에 대한 우려를 자아낸다. 비대면 생활양식의 확산으로 오프라인 채널을 통한 판촉이 어려워지면서 PC, 스마트폰, 생활가전 등의 판매 감소는 이미 피할 수 없는 부분이 되었고 리서치 펌들이 내놓는 2020년 스마트폰 예상 판매량은 이러한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음을 실감하게 한다.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스마트폰은 5세대 이동통신(5G)과 폴더블(foldable·접을 수 있는)이라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등에 업고 올해 적어도 3% 수준의 판매량 신장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2분기에 접어든 현재, 시장조사 기관들은 지난해보다 10%대의 판매량 역신장을 예상한다.

더욱 걱정되는 것은 겨우내 회복 조짐을 보이던 반도체 산업에 코로나19 불똥이 튀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결국 완성품 시장의 판매가 위축되면 IT 기기를 이루는 디램․낸드플래시 등 반도체의 수요도 함께 감소하기 때문에 1년여의 기다림 끝에 상승 반전한 반도체 가격이 다시 내려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하나둘씩 흘러나오고 있다.

하지만 다음 몇 가지 이유는 공급과 마찬가지로 수요 측면에서도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관론에 잠겨 있을 필요가 없다는 확신을 갖게 한다.


펜트 업 효과에 설비 투자도 늘 것

우선 사태의 심각성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특수성을 고려하더라도 코로나19 사태는 수년간 지속될 장기적 악재라기보다 단기적 악재에 더 가깝다. 물론 백신 개발이나 확진자 증가가 멈추는 시점이 정확히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연기된 올림픽은 결국 열리게 되고, 잠시 얼어붙었던 수요도 머지않아 풀릴 것이다. 무조건적인 비관론에 잠겨 있을 필요가 없는 첫 번째 이유, ‘펜트 업(pent-up·밀린 수요가 한 번에 몰리는 현상)’ 효과에 대한 이야기다. 코로나19 사태의 종식과 함께 억눌렸던 수요가 시장에 쏟아지고 충격의 크기만큼이나 클 펜트 업 효과가 위축됐던 시장의 빠른 회복을 도울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코로나19 사태가 불러온 사회의 양태 변화에서 찾을 수 있는데, 온라인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은 코로나19 사태를 지금보다 덜 비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의견에 중요한 논거를 제시한다. 우선 비대면 생활양식의 확산이다.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재택근무와 온라인 회의가 늘어나고 학생들의 수업은 온라인 강의로 대체됐다. 또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유튜브 이용 시간과 전자상거래 이용이 늘면서 온라인 트래픽은 서비스 제공자들이 대응책을 고민했어야 할 만큼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미 통신사, 게임 온라인 플랫폼 제공자들은 데이터센터 업체들과 망 증설에 대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고, 눈치를 보며 시기를 가늠하던 데이터센터 기업들은 이제 더욱더 적극적으로 설비 투자를 늘려야 할 분명한 이유가 생겼다.


코로나19가 만들어낸 ‘비가역적’ 변화

설비 투자는 반도체 시장의 추가적인 성장을 견인할 것이다. 그리고 트래픽 폭증에 의한 부분이 온전히 반영되기 전인 3월, 이미 전월보다 5% 증가한 서버용 디램의 가격은 앞으로 비대면 생활양식의 확산이 가져올 반도체 업계의 추가 성장이 예상보다 큰 규모로 진행될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더욱 중요한 부분은 이러한 생활양식 변화가 비가역적인 성격을 띤다는 점인데, 기존에 설비가 없었거나 설비가 있어도 활용이 익숙지 않아 온라인 회의를 하지 않던 조직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설비를 확충하고 활용법에 대해 숙지하게 됐을 것이고, OTT 플랫폼을 아예 모르거나 회원제에 가입하지 않았던 이들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기존  VOD 서비스들과는 완벽히 차별화된 OTT의 진가를 경험했을 것이다.

이제 더 많은 사람이 온라인 플랫폼을 온전히 사용하고, 이로 인해 넘치는 트래픽은 반도체 시장에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나갈 것이다. 비록 지금은 우리 사회가 공포에 사로잡혀 있지만 모든 것이 그렇게 나쁘게만 돌아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오히려 코로나19 사태가 없었다면 온라인으로의 패러다임 전환, 데이터센터 시장의 본격적인 성장은 훨씬 더 오랜 시간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혼란 속에서도 우리가 품을 희망이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