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설명 4월 14일(현지시각) 주요 7개국(G7)은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화상회의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책으로 최빈국 모라토리엄(채무 상환 유예)에 뜻을 모았다. 이들은 공동 성명에서 “주요 20개국(G20)과 채권국 협의체인 파리클럽이 동의한다면, 세계은행의 무상 차관을 받는 모든 국가를 상대로 한시적인 모라토리엄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아프리카·중남미 등 신흥 개도국의 대외 부채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세계 경제 위기가 현실화한 가운데, 이 국가들에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국가 부도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곳은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에 참여한 아프리카 대륙이다. 가디언에 따르면 아프리카 국가들의 대중국 부채는 1450억달러(약 177조원)에 달한다. 이 중 올해 상환해야 할 자금만 80억달러다. 가디언은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보고서를 인용해 “저개발 국가들이 막대한 대출 상환을 감당하지 못하면 중국에 자산 통제권을 넘겨야 하는 ‘부채 함정 외교’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파키스탄과 스리랑카가 군사 기지와 항구 운영권을 중국에 양도한 바 있다. 라인하트 교수와 로고프 교수는 이번 칼럼에서 신흥 개도국의 채무 상환 유예에 미국과 중국의 참여는 필수라고 주장한다.
카르멘 라인하트(Carmen M. Reinhart) 하버드대 교수, 미국 컬럼비아대 경제학 박사, 베어스턴스 투자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왼쪽)케네스 로고프(Kenneth Rogoff) 하버드대 교수, 예일대 경제학, 매사추세츠공대 박사, IMF 수석이코노미스트(오른쪽)
카르멘 라인하트(Carmen M. Reinhart) 하버드대 교수, 미국 컬럼비아대 경제학 박사, 베어스턴스 투자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왼쪽)
케네스 로고프(Kenneth Rogoff) 하버드대 교수, 예일대 경제학, 매사추세츠공대 박사, IMF 수석이코노미스트(오른쪽)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세계적으로 확산하면서 경제 마비와 실업이 잇따르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에서 팬데믹(pandemic·감염증 대유행)의 경제적 여파는 중국과 유럽, 미국에서 목격한 그 어떤 상황보다 훨씬 심각하다. 지금은 신흥국과 개도국에 채무 상환을 기대할 때가 아니다.

신흥국과 개도국은 인도주의적 위기뿐만 아니라 1930년대 이후 가장 심각한 재정위기의 정점에 서 있다. 이 국가들의 경제에서 지난 몇 주 동안 자본이 이탈했고, 연쇄 국가부도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모든 채무 상환을 일시적으로 유예해야 한다는 주장을 일관되게 해 왔다. 곤경에 처한 채무국에 대한 모라토리엄(채무 상환 유예)은 가계, 중소기업, 자치단체의 모라토리엄과 유사한 점이 많다.

사안의 긴급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개도국의 상황이 극명하게 다르다는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 브라질 상파울루, 인도 뭄바이, 필리핀 마닐라 등의 광활한 빈민가에서 ‘격리’란 음식이나 물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임금 체불에 대한 보상도 없이 10명이 작은 방에서 함께 사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팬데믹에는 늘 식량 부족이 이어졌다.

이미 ① 90여 개국이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에 긴급 자금을 요청했다. 더 심각한 것은 이제부터다. 개도국들에 있어 팬데믹에 따른 최악의 상황은 올해 말쯤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미 많은 신흥국을 강타한 세계 무역 감소와 원자재 가격 급락 현상 말고도 새로운 인도주의적, 경제적 영향이 나타날 것이다. 세계무역기구(WTO)는 2020년 세계 교역량이 13~32% 감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대다수 산유국(및 더 많은 1차 상품 생산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간 유가 전쟁의 피해를 보고 있으며 이에 따라 국가신용등급도 하락하고 있다.

세계 지도자들은 감염병이 암울한 행진을 계속하는 한 ‘정상’으로의 복귀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채권국들이 코로나19와 싸움에서 벗어나야 할 국가들로부터 채무 상환을 기대하는 것은 근시안적이다.

물론 이런 제안은 세계적인 불황을 심화시키고 연장시키는 것으로 매우 위험한 것이 사실이다. 세계 국내총생산(GDP)에서 신흥국과 개도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980년대 중반 18%에서 2020년 41%(구매력 조정 시 60%)까지 증가했다.

‘AAA’ 등급을 제외한 모든 국가에 대한 외부 채무 상환을 즉시 일시 유예할 것을 권고한다. ‘외부’란, 일반적으로 뉴욕이나 런던에서 외국 법원의 관할하에 발행되는 부채를 의미한다. 국내법에 따라 발행되는 부채는 각국이 자체적으로 처리할 것이다. 이런 종류의 부채 탕감이 효과를 거두려면 IMF와 세계은행, 채권국(② 파리클럽 회원과 중국), 개인 투자자 등 다자간 대출자에게 진 빚을 포함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대다수 국가의 부채는 구조조정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법원과 대출 기관들은 채무 불이행을 일괄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그래서 일시적 채무 상환 유예는 이런 상황을 해결할 연결 고리가 될 수 있다. 채무 상환 유예로 얻을 수 있는 베스트 시나리오는 채무 불이행을 피할 수 있다는 점이다.


4월 14일(현지시각) 열린 G7 재무장관 중앙은행장 화상 회의에서 브뤼노 르메르 프랑스 재정경제부 장관이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부 장관의 발언을 듣고 있다. 사진 로이터연합
4월 14일(현지시각) 열린 G7 재무장관 중앙은행장 화상 회의에서 브뤼노 르메르 프랑스 재정경제부 장관이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부 장관의 발언을 듣고 있다. 사진 로이터연합

불확실 시기 상환 강제는 비극 초래할 뿐

IMF와 세계은행은 채무 위기에 처한 국가들과 많은 경험을 쌓아왔다. 특히 이들은 ③ 부분 채무 불이행만이 유일하면서도 현실적인 선택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유로존(유럽연합에서 유로화를 쓰는 회원국)이 그리스뿐만 아니라 남유럽 전체의 부채를 구조조정할 수 있는 길을 찾지 못한 것은 큰 비극이다. 매우 불확실한 시기에 정기적인 채무 상환 시행을 강제하는 것은 필요 이상의 깊고 긴 경기 후퇴를 초래할 뿐이다.

물론 모라토리엄에는 미국의 참여도 필요하다. 미국은 IMF 내에서 실효적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나라다. 또 중국도 이 계획에 반드시 동참해야 한다.

지난 20년간 많은 개발도상국이 중국에 손을 벌렸다(일반적으로 ④ 담보 대출 형식으로 차관이 이뤄졌고, 시장 금리를 적용받았다). 현재 중국은 약 40여 개국의 주요 채권국이지만, 지금까지 파리클럽 가입을 ⑤ 거부하고 독자적인 양자 간 비공개 접근법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IMF와 세계은행은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들이 자국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결론 내릴 경우 모라토리엄 유예를 조정할 수 있는 역량과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 민간 채권자들은 단기적으로 협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계 지도자들은 이제 문제 앞에 나설 필요가 있다.


Tip

최근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IMF에 긴급 자금 지원을 요청한 신흥국이 90개국이 넘는다고 보도했다. 전체 신흥국(189개국)의 절반에 달하는 수준이다. 특히 이 국가들이 어려운 것은 선진국보다 방역도, 경제도 취약한 데다, 교역 감소와 원자재 가격 하락, 관광 수입 급감으로 디폴트(채무 불이행) 위기에 몰렸기 때문이다. 

파리클럽은 세계 22개 채권국 비공식 그룹이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개도국을 지원하는 것이 목적이다. 미국·프랑스·영국 등 선진국을 비롯해 아시아권에서는 한국과 일본이 회원국이다. 파리클럽 회원국은 해외에 빌려준 자금 규모와 채무 조건 등을 의무적으로 공개해야 한다.

부분 채무 불이행(partial default)은 부채 상환을 연장하거나 이자를 낮춰 실제 가치보다 훨씬 싼값에 채권 일부를 사주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 구제금융 당시 유로존 일부 채권국들은 자발적인 헤어컷(부분 채무 불이행) 형태로 지원하는 방안을 고려하기도 했다.

중국의 일대일로 차관은 담보 대출 성격이 짙다. 이 경우 채권자 간에 일종의 ‘서열’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담보 대출 성격의 중국 차관이 일반적인 양자 간 대출보다 (상환에) 우위를 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파리클럽 회원국이 아니다. 그래서 중국과 개도국 간 채무 조건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