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창서울대 산업공학과, 미 프린스턴대 금융공학 박사, SSCI 학술지 ‘Quantitative Finance’편집장
김우창
서울대 산업공학과, 미 프린스턴대 금융공학 박사, SSCI 학술지 ‘Quantitative Finance’편집장

‘동학개미운동’이 뜨겁다. 3월 초 모 유튜브 채널에서 처음 언급된 동학개미운동은 개인투자자(개미)와 외국인의 매수·매도 공방을 조선시대 말기에 발생한 반외세적 사회개혁운동 ‘동학농민운동’에 빗댄 말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처음 발생한 시점부터 4월 초까지 외국인이 19조원을 순매도하며 주식 시장에 강력한 하방 압력을 가했다. 이에 맞서기라도 하듯 주식시장이 본격적으로 폭락하기 시작한 3월 초부터 개인투자자들이 순매수 행렬을 이어 갔고, 국내외 시장을 합쳐 총 23조원을 순매수하며 증시를 떠받치는 역할을 했다.

동학개미운동은 우리 증시에 새로운 기록을 실시간으로 써가고 있다. 역대 최고 일평균 거래 대금, 역대 최대 개인 순매수 금액, 역대 최대 투자자 예탁금 등이 그 예다. 이 중 눈여겨볼 것은 증시에 들어오기 위해 대기 중인 자금으로 해석되는 ‘투자자 예탁금’과 빚을 내서 주식에 투자한 금액인 ‘위탁매매 미수금’이다.

지난 수년 동안 20조원 중후반 수준이었던 투자자 예탁금은 동학개미운동이 시작된 지난달 40조원을 처음으로 돌파했고, 4월 1일에는 47조원 선마저 넘어섰다. 불과 3개월 사이에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같은 기간 위탁매매 미수금 역시 증가하긴 했다. 하지만 상승 폭은 겨우 20% 수준으로 2000억원에서 2400억원으로 늘어난 정도다. 개인투자자의 폭풍과도 같은 순매수가 빚이 아닌 개미들의 순자산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는 의미다.

이 많은 돈이 어디서 왔는지에 대한 의견은 아직 분분하다. 기존 예·적금 등 금융상품에 있던 자금이 왔다는 의견도 있고, 부동산을 매수하려고 했던 대기 자금이 대거 들어왔다는 의견도 있다. 혹은 그간 많이 오른 부동산의 차익 실현 자금이라는 설도 있으며, 퇴직연금 자금이 많이 들어왔다는 소식도 있다. 구체적인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려면 시간이 걸리겠으나 한 가지는 명확하다. 이 놀라운 규모의 자금은 다름 아닌 평범한 우리 중산층의 여윳돈이며 잉여자산으로 증시에 오랫동안 머물 수 있는 장기 자금이라는 것이다. 필자는 이 지점에서 한국 경제의 희망을 본다. 평범한 사람이 이 정도의 잉여자산이 생긴 것, 그리고 그 잉여자산이 드디어 자본시장으로 이동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이제까지 우리 사회에서 자산 증식의 수단은 부동산, 특히 아파트였다. 다소 부침은 있었으나 아파트는 그 어떤 투자 상품보다 안정적이고 높은 수익을 제공했다. 이에 반해 주식시장은 수년간 소위 ‘박스피(박스권에 갇힌 코스피지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으니 시중의 모든 자금이 부동산에 몰리는 것은 필연이었다. 하지만 급격하게 올라버린 아파트 가격은 더는 평범한 사람에게 부동산을 통한 자산 증식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 최소 수억원은 있어야 투자 자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부동산을 소유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세대에게는 상대적 박탈감과 무력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또한 부동산 가격의 상승은 수출을 늘리지도, 일자리를 만들어내지도 않는다.

하지만 주식은 부동산과 다르다. 강건해진 주식시장은 기업의 자본 조달을 용이하게 한다. 생산의 주체인 기업의 경쟁력을 직접적으로 강화시키는 것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새로운 고용을 창출한다. 경제에 직접적인 기여를 하는 셈이다. 또한 아주 큰 돈이 있어야 투자 자체가 가능한 부동산과는 다르게 소액으로도 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 사회적 관점에서 볼 때 잉여자산이 부동산보다는 주식시장에 흘러 들어가는 것이 더 나은 이유다.

그간 우리 자본시장은 외국인에 의해 좌우돼 왔고, 약간의 외부 충격에도 크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왔다. 상대적으로 국내 자본의 규모가 작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학개미운동이 성공해 우리의 우량 기업들을 우리 국민이 소유하게 된다면 외국인 투자자의 움직임 때문에 주식시장이 요동치는 일은 없어질 것이다. 자본주의가 성장하면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양극화와 그로 인한 갈등은 주식시장이 건강하게 유지된다면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다. 동학개미운동이 성공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이유다.


이중과세 폐지로 동학개미운동 ‘마중물’ 마련해야

하지만 동학개미운동의 성공에 주식세금 제도가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가 든다. 정부는 주식 거래와 관련해 양도소득세와 증권거래세를 모두 부과하고 있다. 하지만 자본시장이 발달한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거래세를 걷지 않는다. 이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원칙에 충실해 양도차익과세만을 할 뿐이다. 반대로 국내에서는 주식을 팔 때 매도 금액의 0.25%를 세금으로 내고, 종목별로 10억원 이상(2021년부터는 3억원)을 소유하고 있으면 양도소득세 역시 추가로 부과받게 된다. 어떤 기준으로 봐도 이중 부과이며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 주식시장의 매력이 떨어지는 이유 중 하나다.

사실 역사적 맥락을 살펴보면 현재의 주식에 대한 이중과세를 아주 이해 못 할 것은 아니다. 자본시장의 역사가 오래된 서구 선진국과는 다르게 아시아의 신흥국들은 주식양도차익에 대한 과세를 처음엔 도입하지 않았다. 자본시장의 힘이 약하니 투자금을 유인할 인센티브를 제공할 필요가 있었고,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 없이 소액의 증권거래세만을 부과하는 정책을 편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아시아 신흥국들의 경제력이 강화돼 비정상적인 거래세를 폐지하고 양도세를 도입하게 됐다.

한국 역시 다른 아시아의 신흥국들과 비슷한 길을 가고 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양도세는 자꾸 범위가 커가고 있지만 거래세 인하나 폐지는 굼뜬 모양새다. 정치권에서 기껏 분위기를 띄워도 세수가 줄어들 것을 걱정한 기획재정부가 번번이 막기 때문이다.

정부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그래도 우리 자본시장의 체질 변화라는 큰 가치 앞에 통 큰 의사 결정을 하면 어떨까. 실패로 끝난다면 언제나 그랬던 외국인에게 털린 토종 개미투자자의 사례가 하나 늘어날 뿐이지만, 동학개미운동이 성공하면 한국 경제, 나아가 사회가 좀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화하는 역사적 사건이 될 수 있다. 동학농민운동은 실패로 끝났지만, 이중과세 폐지를 마중물로 내세운다면 동학개미운동이 성공할 가능성은 획기적으로 커질 것이다. 길게 보면 거래세 폐지로 인한 세수 감소분보다 자본시장의 체질 강화를 바탕으로 양도세 수입이 더 늘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동학개미운동의 성공을 위해 정부가 전향적으로 사고를 전환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