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갑고려대 외교학, 강원대 부동산학 박사, 스피드뱅크 부동산연구소장
박원갑
고려대 외교학, 강원대 부동산학 박사, 스피드뱅크 부동산연구소장

4·15 총선이 집권당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다. 서울 강남을 비롯한 인기 지역 부동산 시장은 규제가 계속될 것이라는 불안감으로 움츠러들고 있다. 일부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 급매물, 급급매물이 속속 늘고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금융시장과 실물경기가 불안한 가운데 총선 결과까지 겹쳐 부동산 시장은 약세장이 불가피할 것 같다. 코로나19의 불확실성이 워낙 엄중한 상황이어서 추가로 강력한 규제 드라이브를 걸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미 발표된 대책은 입법화돼 예정대로 추진될 가능성이 큰데, 그 자체가 고강도여서 시장 냉각은 불가피하다. 요즘 부동산 시장에는 지난해처럼 ‘지금이라도 집을 사야겠다’는 초조감과 불안 심리가 사라졌다. 오히려 부동산 시장을 기웃거리던 부동자금이 주식시장으로 옮겨가는 양상이다. 이런 추세라면 서울 주택 시장의 약세 기조는 좀 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강남 재건축, ‘총선 쇼크’에 움찔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강남권 주요 재건축 추진 단지 시세가 총선 이후 닷새 만에 1000만~5000만원 하락했다.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용면적 84㎡(34평형)를 19억원에 팔겠다는 급매물이 나왔다. 총선 직전 19억5000만원에 비하면 5000만원 하락했고, 지난해 12월 실거래가(23억5000만원)보다 거의 20% 떨어진 것이다.

또 송파구 재건축 대장주인 잠실주공 5단지 전용면적 82㎡ 급매물은 19억6000만원에 나와 있다. 지난해 12월 최고가 24억3400만원보다 20%가량 하락했다. 강남구 개포동 주공7단지, 압구정동 신현대 아파트 등도 고점보다 10% 이상 하락했으나, 거래는 뜸한 편이다. 강남권 재건축은 그동안 공시가격 급등에 따른 보유세 부담 증가, 코로나19에 따른 실물경기 위축으로 하락세를 보였던 곳으로, 이번 총선 이후 실망 매물이 나오면서 추가로 더 떨어진 것이다.

시세보다 싼 급매물은 양도세 절세매물인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과 같은 조정대상지역에서 다주택자가 10년 이상 보유한 주택을 양도세 중과 배제 기한인 6월 말까지 팔기 위해 급히 내놓는 것이다. 장기보유특별공제(최대 30%)와 일반세율을 적용받으려는 목적에서다. 7월 이후 매각하면 양도세 부담이 곱절가량 늘어난다.

절세매물이 많지는 않지만 소화되지 않고 부동산중개업소에 적체되다 보니 추가로 하락세가 나타나고 있다. 아마도 이런 매물은 5월 말까지 나오다가 이후에는 다소 주춤해질 것이다. 6월 말까지 잔금을 받기 위해서는 적어도 한 달 전에는 계약이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매물이 팔린다고 해도 시장이 곧바로 반등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강남발 하락세, 다른 지역으로 확산하나

강남권 재건축은 부동산 시장의 풍향계 역할을 한다. 재건축 약세는 기존 부동산 규제책이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는 실망감이 반영됐다고 본다. 강남 재건축은 시장을 선도하는 지표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강남 일반 아파트나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과 강북권 등도 시차를 두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종로구 경희궁자이나 마포구 래미안푸르지오 등의 아파트값도 지난해 말보다 5000만~1억원 하락했다. 이뿐만 아니라 강남과 동조화 현상이 나타나는 분당과 판교, 과천 등 수도권 인기 지역도 서서히 영향권에 들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규제가 덜한 9억원 이하 중소형 아파트의 하락세는 덜할 것으로 보이나, 거래 위축은 불가피하다.

매수세 위축은 일종의 현장 지수로 볼 수 있는 매수 문의 지수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KB부동산 리브온 집계를 보면 4월 셋째 주 전국 매수 문의가 58.1(기준점 100)을 기록하는 등 전반적으로 부동산 시장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100을 기준점으로 지수가 100 미만이면 수요보다 공급이 많음을, 100을 초과하면 공급보다 수요가 많음을 뜻한다.

특히 서울의 매수 문의는 지속해서 하락해 71.5까지 내려가면서 지난해 12·16 부동산 대책 이후 최저 수준으로 낮아졌다. 아파트를 시장에 내놔도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아, 거래 두절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4·15 총선 이후 서울 강남권 아파트 시장에 호가를 낮춘 급매물이 증가했다. 4월 20일 오후 서울 서초 일대 아파트단지. 사진 연합뉴스
4·15 총선 이후 서울 강남권 아파트 시장에 호가를 낮춘 급매물이 증가했다. 4월 20일 오후 서울 서초 일대 아파트단지. 사진 연합뉴스

총선 공약을 살펴보니

더불어민주당은 총선 공약으로 ‘청년·신혼 맞춤형 도시’를 통해 주택 10만 호를 공급한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청년과 신혼부부만을 위한 전용 주택 공급을 대폭 늘리는 것이다. 서울 용산 코레일 부지 등에 청년·신혼 주택 1만 호 신규 공급 방안도 포함됐다. 따라서 총선 이후 이 공약을 이행하기 위한 세부 계획이 가시화할 것으로 보인다. 또 주민 반대로 난항을 겪던 고양 창릉지구 등 수도권 3기 신도시 건설도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시행 시기는 3개월 더 늦춰졌다. 조합 총회로 많은 사람이 모일 경우 코로나19가 번질 위험이 있어 4월 28일에서 7월 28일로 연기된 것이다. 하지만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도입이라는 기조 자체는 변함이 없어 시장을 자극하기는 어렵다.

이번 총선에서는 전·월세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은 핵심 공약이 아니었으나 추진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이 제도들은 대통령선거 공약 사항이다. 최근 전세 시장이 다소 불안해지고 있다. 코로나19 여파에 따른 조정기대심리로 주택을 사지 않고 전세로 눌러앉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다만 올해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이 10년 평균보다 30% 이상 많아 전셋값이 크게 오르긴 힘들다. 하지만 내년에는 입주 물량이 크게 줄어든다. 사금융인 전셋값은 급등락하는 특징이 있어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의 최종 도입까지는 의견 수렴 과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고령 장기 1주택자 종부세 감면할까

‘12·16 부동산 대책’ 당시 정부는 공시가격 9억원 초과 주택 등 고가 부동산 보유자에게 부과되는 종합부동산세(종부세) 세율을 0.1~0.8%포인트 인상키로 했다. 다만 60세 이상 고령자와 5년 이상 장기 보유자에 대해서는 감면 폭을 최대 70%에서 80%(단독 명의만 가능하며 부부 공동 명의는 제외)로 늘리기로 했다. 이번 총선 유세 과정에서 1주택자 종부세 감면이 거론되었으나 12·16 대책에서 발표한 원안대로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설사 1주택자에게 종부세 감면 혜택을 준다고 하더라도 공시가격이 급격히 올라 보유세(재산세+종부세) 부담이 줄기는 어렵다. 일반적으로 1주택자가 부담하는 보유세는 종부세보다 재산세가 훨씬 더 많다. 올해 전국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지난해보다 5.99% 상승한 가운데 서울은 14.75%, 강남구는 25.57%로 큰 폭으로 올랐다.


서울 집값 하락세, 언제까지 갈까

서울과 수도권 핵심 지역을 중심으로 부동산 시장이 적어도 연말까지는 위축될 것으로 보여 신중한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다만 고점보다 20~30% 하락한 급매물은 선별적으로 관심을 가져 볼 만하다. 매물이 소화된다고 해도 회복 탄력을 갖기 어렵다. 이에 비해 주식 등 금융시장 회복은 예상보다 빠를 수 있다. 미국에서는 한계 기업 채권까지 매입할 만큼 유동성을 무차별적으로 퍼붓고 있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은 실물경기에 더 영향을 받는다. 코로나19로 실물경기가 침체되고 있으므로 부동산 시장 회복 속도는 주식시장보다 많이 늦을 것이다. 대부분의 부동산 전문가가 총선 이후 연말까지 서울 아파트값이 하락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한다. 회복세는 내년 이후에나 내다볼 수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