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안전망(global financial safety net)이란 위기 시 국제 거래에 필요한 모든 재원 조달 수단의 합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는 4개 층으로 구성되는데 자기방어수단이라고 할 수 있는 외환보유액, 양자 간 통화스와프(swap·맞교환), 지역 내 통화스와프, 국제통화기금(IMF)과 계약한 신용조달가능액 등이다. 글로벌 금융안전망은 2008년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모든 나라가 관심을 가지게 된 이슈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에서는 2010년 한국이 국제 협력 이슈로 제안한 이후 지속해서 그 개선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겪었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시 환율이 위험한 수준까지 간 경험을 했기 때문에 글로벌 금융안전망은 한국의 중요 정책 과제 중 하나다. IMF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기축통화를 발행하는 국가들을 제외하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동원 가능한 외화 규모를 기준으로 글로벌 금융안전망이 가장 우수한 국가로 평가된다.

한국의 글로벌 금융안전망이 이처럼 우수한 평가를 받게 된 기반은 2012년 2월부터 올해 3월까지 무려 98개월간 계속된 무역 흑자다. 그동안 서비스수지와 소득수지는 자주 적자를 보여왔으나 무역수지의 압도적인 흑자로, 이를 종합한 경상수지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꾸준히 흑자를 유지해왔다.

경상수지 흑자가 8년 넘게 지속하면서 세 가지 중요한 변화가 발생했다. 첫째, 외환 시장의 공급 능력 향상이다. 경제 규모가 성장하면 외환 시장도 커지게 되지만 무엇보다 경상수지 흑자로 외환 조달 규모가 지속해서 확대됐기 때문이다.

둘째, 우리나라가 순 채권국으로 전환됐다. 한국은 무역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대외 투자를 확대해 2014년에 순 채무국에서 순 채권국으로 전환됐다. 대외 금융자산은 계속 늘어나서 2019년 말 총규모가 1조6997억2840만달러에 달했고 대외 채무를 제외한 순 대외 금융자산은 5009억4590만달러를 기록했다.

셋째, 무역 흑자 지속으로 대외신인도가 높아져 외국인의 주식 및 채권 시장 투자가 증가했다. 주식시장에서는 무역 흑자로 원화의 평가절상 기대가 해외 투자를 자극했고 채권 시장에서는 외환 공급에 대한 부도 위험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2019년 12월 기준 외국인의 국내 주식 보유 규모는 593조2000억원으로 상장 주식의 38.1%, 채권 보유 규모는 123조7000억원으로 6.79%를 차지한다.


우리나라 글로벌 금융안전망의 강화를 떠받쳐온 무역수지 흑자가 올해 4월 적자로 돌아섰다. 2012년 1월 23억2000만달러 적자를 보인 이후 99개월 만의 일이다.
우리나라 글로벌 금융안전망의 강화를 떠받쳐온 무역수지 흑자가 올해 4월 적자로 돌아섰다. 2012년 1월 23억2000만달러 적자를 보인 이후 99개월 만의 일이다.

수출 기업 생태계 보전해야

그런데 우리나라 글로벌 금융안전망의 강화를 떠받쳐온 무역수지 흑자가 올해 4월 적자로 돌아섰다. 2012년 1월 23억2000만달러 적자를 보인 이후 99개월 만의 일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으로 주요 수출 시장들이 경제 활동을 중단한 것이 무역 적자의 원인이다. 해외 시장이 정상화하기까지 무역 적자는 더 지속할 전망이다. 수출 시장이 다시 열릴 때 수출이 회복되고 무역수지가 개선되려면 국내 수출 기업들이 그때까지 살아남아야 한다. 특히 부품이나 중간재를 공급하는 중소기업이 도산하지 않아야 한다. 코로나19 사태로 수출 기업의 공급망이 위협받고 있다.

국제 통화를 찍어서 쓸 수 있는 기축통화국과 달리 한국은 외화를 벌어서 써야 한다. 수출로 돈을 벌어올 수 있는 능력을 지켜야 거시경제적 안정이 가능하다. 무역수지 흑자가 회복되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글로벌 금융안전망도 다시 약화할 가능성이 크다. 수출 기업의 생태계가 보존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