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설명 애플, 퀄컴, 테슬라 등 세계적인 제조회사는 특정 국가가 아닌 전 세계 곳곳에 공급과 제조, 유통망을 구축해 사업을 운영한다. 애플이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본사에서 아이폰을 디자인한 뒤, 메모리와 디스플레이 등 주요 부품은 한국과 일본에서 공급받아 중국에서 아이폰을 조립, 전 세계에 판매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세계의 공장’ 중국에서 2019년 12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시작된 뒤 일부 부품 공급이 중단되면서 완성품 제조에 차질이 빚어졌다. 이렇듯 코로나19는 원가 경쟁에 기반해 전 세계를 하나의 생산 체계로 묶었던 글로벌 분업화의 약점을 드러냈다. 일부에선 해외에 뒀던 제조공장을 자국으로 유턴시키는 리쇼어링(reshoring)도 포착되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 이후 중국에 생산 시설을 둔 다국적 기업의 80%가 리쇼어링을 검토하고 있다. 비용을 우선해 공급망을 짜던 기존 방식 대신 높은 비용을 감수하고서라도 비상시 부품 조달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는 방향으로 돌아서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글로벌 공급망을 붕괴시키기보다 특정 국가에 집중된 글로벌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셀레스탱 몽가(Celestin Monga)세계은행 선임 경제고문, 전 아프리카 개발 그룹 부사장 겸 최고 이코노미스트, 전 UN산업개발기구 전무이사
셀레스탱 몽가(Celestin Monga)
세계은행 선임 경제고문, 전 아프리카 개발 그룹 부사장 겸 최고 이코노미스트, 전 UN산업개발기구 전무이사

대부분의 국제 무역과 투자는 각각 다른 나라에 분산된 단계가 결합해 하나의 네트워크에서 이뤄진다. 기업은 국경을 초월한 공급망을 이용해 투입과 산출을 복잡하게 교환한다. 이렇게 기업 또는 지역 사이를 넘나드는 ① 글로벌 가치 사슬(GVCs·Global value chains·이하 글로벌 공급망)은 2017년 기준 세계 무역의 3분의 2 이상, 일부 제조업 분야에선 80% 이상을 차지한다.

그러나 세계무역기구(WTO)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올해 세계 무역량은 전년보다 최소 13%, 최대 32%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은 제조 네트워크와 공급망을 마비시켰다. 특히 전 세계 제조업 생산의 28%를 담당하는 중국이 멈춰서면서 필수 식품과 서비스, 의약품, 수술 가운과 마스크를 포함한 의료 관련 제품, 전자 및 자동차 부품, 금속 및 기타 제조 제품의 납기가 지연됐다.

경제 지도자들은 코로나19로 피해를 보고 경제적 혼란이 발생하자, 자국 기업이 하나의 외국 공급 업체에 의존하고 있던 상황을 재평가하고 이로 인한 취약점을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② 부유한 생산 구조와 무역 정책을 변화시켜 달라고 요구하는 중이다.

서방 일부 국가는 자국에서 기초 생필품을 생산토록 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들 국가의 평균 임금과 생산성이 높다는 것을 고려하면 자국에서 노동 집약적인 상품과 일부 서비스를 생산할 경우 큰 비용이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일부 선진국은 중요 상품과 서비스를 공급하는 기업과 관련 있는 ③ 외국인 직접 투자(FDI·Foreign direct investment)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 이런 정책은 코로나19가 유행하는 동안 ④ 중국 투자자들이 자국의 기업을 인수하려는 시도를 막으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론 머스크(가운데)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1월 7일(현지시각) 중국 상하이 테슬라 공장에서 열린 행사에 참여했다. 사진 블룸버그
일론 머스크(가운데)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1월 7일(현지시각) 중국 상하이 테슬라 공장에서 열린 행사에 참여했다. 사진 블룸버그

그러나 글로벌 공급망을 해체하고 외국인 직접 투자에 장벽을 세우는 것은 옳지 않다. 만약 이런 생각을 실행에 옮긴다면 보호무역주의와 경제 분야의 국수주의가 횡행해 세계 번영과 안정, 평화를 해칠 수 있다. 또한 이런 정책은 저소득 국가에 사형 선고를 내리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에 국가 간 불평등을 악화시키고 세계 총수요를 감소시킬 것이다. 세계 경제 성장이 한국, 일본, 중국 등 한때 빈곤했던 나라를 성장시켜 지금은 믿을 만한 국가로 만들었다는 것을 되새겨야 한다.

대체로 부유한 나라들은 글로벌 공급망을 통해 이익을 얻는다. 운송비 절감과 포장 기술 혁신은 많은 상품이 최종 소비 시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생산될 수 있도록 도왔다. 그 결과 고부가가치 상품은 노동력이 저렴한 곳에서 제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동안 선진국 기업은 국경을 초월한 글로벌 공급망을 이용해 비용을 절감했다.

글로벌 공급망에 참여한 회사는 생산력이 높다. 이들 기업은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이동하면서 직원에게 더 높은 임금을 지급하고 기술 혁신을 이뤘다. 또한 글로벌 공급망은 정교한 부품 생산을 하도급 공장에 맡길 수 있도록 했고, 전문 지식이 필요한 제조 공정을 관리하고 수요에 맞게 생산을 조정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개발도상국 역시 글로벌 공급망의 혜택을 보고 있다. 개발도상국이 세계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 20%에서 2000년 30%로 늘었고 현재는 40% 수준이다. 극빈국도 글로벌 공급망에 점차 참여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자국 산업을 발전시키는 긍정적인 효과를 낳았다.

또한 글로벌 공급망에 참여하면 외국인 직접 투자를 통해 외부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외국인 직접 투자는 비교 우위가 있는 분야에서 장기적으로 이뤄지는 경향이 있다. 개발도상국이 외국인 직접 투자를 받을 경우 고용 증가, 기술과 경영 노하우 이전 기회 획득 등의 효과를 볼 수 있다.

따라서 코로나19 때문에 글로벌 공급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오히려 문제를 키우는 일이 될 것이다. 물론 부유한 나라는 핵심 부품과 재료를 중국이나 여타 단일 국가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을 걱정할 수 있다. 그렇다고 글로벌 공급망을 해체하거나 국제 무역을 줄이기보다 공급망의 취약점을 파악하는 것이 위험을 완화할 수 있는 길이다.

코로나19는 세계 경제를 갑자기 멈춰 세웠고 글로벌 공급망의 취약성을 부각했다. 국제 무역과 투자의 원천인 글로벌 공급망을 무너뜨리는 것은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며 특히 개발도상국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 글로벌 공급망 문제점의 해결 방안은 글로벌 공급망 해체가 아니라 공급망을 좀 더 폭넓고 다양하게 만드는 것이다.


Tip

상품의 설계, 생산부터 유통, 판매에 이르기까지 각 과정이 여러 국가에 걸쳐 이뤄지는 국가 간 분업화를 뜻한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 원료를 수입해 한국에서 중요 부품을 가공한 뒤 중국에서 완성품을 만들어 전 세계에 판매하는 식이다. 코로나19가 시작된 중국 우한은 중국에서 네 번째로 큰 자동차 생산 중심지로 완성차 공장뿐만 아니라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와 전기자동차 주요 생산시설이 다수 자리 잡고 있다. 이 때문에 코로나19 발병 초기 중국 현지 협력업체들이 생산을 중단하자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는 한때 부품 부족으로 한국 내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미국, 유럽 등 주요국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자국 산업이 위기에 처하자 무역 장벽을 높이고 있다. 미국은 자국 물자 우선 구매 정책인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 정책을 강화했다. 물자나 서비스를 조달하거나 구매할 때 미국산 제품을 우선 구매하도록 하고, 미국 업체의 입찰 가격이 외국 업체보다 높아도 일정 한도 내에서 미국 업체에 우선권을 부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미국 정부는 석유 수요가 줄어들어 국제 유가가 폭락하면서 자국의 에너지 기업이 파산 위기에 처하자 수입 원유에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다. 유럽 철강 업계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에 수입 제한 조치를 요구했다. 코로나19 이후 철강 수요가 감소하자 해외 수입 물량을 줄여달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외국인이 경영 참가와 기술 제휴 등을 통해 국내 기업의 경영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며 지속적인 관계를 수립할 목적으로 투자하는 것을 뜻한다. 증권 시장에서 국내 기업의 주식이나 채권을 사는 외국인 간접 투자와 차이가 있다.

중국이 막대한 현금을 동원해 ‘기업사냥’에 나서자 미국, 유럽을 중심으로 차이나머니 경계령이 내려졌다. 미국 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외국인 투자 규제를 이미 강화한 상황이다. 유럽은 이를 반대해왔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 중국 자본이 유럽 기업을 인수·합병(M&A)하려는 시도를 제지하려는 움직임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EU는 올해 10월부터 시작하려던 외국인 투자를 감독하기 위한 정보 공유 강화 체계 시행 시기를 앞당길 예정이다.